26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가 포탄을 맞은 듯 불에 탄 모습. 주성미 기자 |
동해 바다를 품고 살아온 경북 영덕군의 작은 마을이 화염에 녹아내렸다.
26일 낮 찾아간 영덕군 영덕읍 석리는 그야말로 무너져 내렸다. 닷새 전 산불이 난 경북 의성에서 70여㎞나 떨어진 곳이다. 바다를 향해 선 가파른 절벽에 자리 잡은 집들은 폭격이라도 맞은 듯했다. 탈 때까지 타버린 지붕은 폭삭 주저앉았다. 깨진 창에서 떨어진 유리 조각들이 사람 하나 겨우 지나는 길바닥에 쏟아졌다. 길옆 난간 구조물은 튕겨 나갔고, 철골 구조물은 저마다 구부러졌다. 집의 한 부분이었을 플라스틱은 흘러내렸다. 무엇이었는지도 모를 것들이 건어물처럼 오그라들어 주렁주렁 매달리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해안절벽의 집이 따개비를 닮았다고 해 ‘따개비마을’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 멀쩡한 집을 찾는 게 더 어려웠다. 한쪽이 버티고 서있다 싶으면, 반대쪽은 여지없이 흘러내렸다. 밤새 집을 시커멓게 태운 불은 악착같이 열기를 토했다. 숯더미가 된 마을 곳곳에 남은 불씨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매캐한 공기는 한숨도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26일 ‘따개비마을’로 부르는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가 불에 탄 모습. 주성미 기자 |
지난해 10월 경북 영덕군 석리의 모습. 주성미 기자 |
지난해 10월 이 마을은 대나무와 소나무 등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바싹 메마른 수풀이 간밤에 불쏘시개가 됐다. 불은 미처 대피하지 못한 어르신의 목숨도 앗아갔다.
26일 ‘따개비마을’로 부르는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가 불에 탄 모습. 주성미 기자 |
26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매정1리가 산불로 폐허가 됐다. 주성미 기자 |
영덕읍 매정1리도 폐허가 됐다. 마을 주민 3명이 새카맣게 탄 집 곳곳에 물을 뿌려댔다. 집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집은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선 채 시커먼 속에서 뿌연 연기를 내뿜었다. 미처 꺼지지 않은 불씨가 혹여나 다시 번질세라 참지 못한 이들이 마을 들머리에 있는 소방호스를 꺼내 들었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였지만 바싹 마른 마을에서 물 한방울도 구하지 못했다. 전날 밤부터 끊긴 전기와 물은 이날 정오께가 돼서야 돌아왔다.
26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매정1리 들머리에 불 탄 집에 이웃주민이 물을 뿌리고 있다. 주성미 기자 |
이 마을 주민 윤외생(78)씨는 “(25일) 저녁에 해 다 지고 불이 넘어온다는 마을 방송을 듣고 나왔는데 불티가 펄떡펄떡 날아서 저 바닥에 뒹굴뒹굴 굴러다니더라”며 “이웃 차를 타고 대피했다가 돌아와서 집에 문을 열어 슬 봤는데 전 신에(전부 다) 끄슬림(그을음)이라. 열어보기도 싫다”고 했다.
이 마을 주민 2명도 목숨을 잃었다. 강풍을 타고 넘나드는 불씨가 포탄처럼 집 위로 떨어졌단다. 불탄 집은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불씨만큼이나 어지러웠다. 흔적도 없이 타버린 집 마당에 개 한마리가 짖었다. 털이 새카맣게 그을린 개는 밤새 짖은 듯 마른 울음소리를 냈다.
전날 영덕군 주민들의 대피 행렬이 이어졌다는 7번 국도를 거슬러 올라가는 차들은 희뿌연 연기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왕복 4차선의 도로 양쪽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고, 곳곳에 전깃줄이 끊겨 바람에 흔들렸다. 불씨는 여전히 건물과 산, 공장 곳곳을 태웠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나무를 태워 타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방차는 한참 동안 오지 않았다. 넓게 퍼진 불씨에 비해 손이 부족한 탓이다.
26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의 한 도로가에 불씨가 남아 타고 있다. 주성미 기자 |
영덕군은 이날 헬기 15대와 소방차 등 장비 27대, 인력 850여명을 동원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번 산불로 전날까지 주민 942명이 대피했다. 미처 불을 피하지 못한 주민 7명이 사망했고, 1명이 다쳤다. 이날 낮 1시까지 주택 800여채, 버스 1대와 승용차 2대가 불탄 것으로 확인됐다. 영덕군 전 지역에는 전날 밤 9시께부터 전기가, 밤 10시께부터 통신이 끊겼다. 군은 이날 새벽 2시께 복구했다고 밝혔으나 휴대전화 전화와 무선인터넷 등이 불안정하다.
주성미 기자 smoo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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