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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 참가자가 동의하면 괜찮나?”…‘언더피프틴’ 방영 취소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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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언더피프틴’ 방송 영상 갈무리




“저는 교사로서 15살 전에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 가혹한 기준에 자신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고, 오히려 맞서 비판하고 저항하라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김지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위원장)



2009~2016년에 태어난 여성 아동들이 참여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언더피프틴’(MBN) 방영 여부를 놓고 사회적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여성계뿐 아니라 언론·교육·청소년·노동·인권 관련 시민단체가 한 데 모여 재차 방송 중단을 촉구했다. 9살 아동을 비롯한 어린 여성들을 성인처럼 보이게 하는 한편 바코드를 넣은 이미지로 아동을 성적 대상화·상품화한다는 비판뿐 아니라, 참가자들 간 경쟁과 심리적 압박을 유발하는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에 어린 아동을 참여시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민주언론시민연합·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129개 시민사회단체는 26일 오전 서울 중구 엠비엔(MBN)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화제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쟁 구도로 여성 아동·청소년을 이용하는 방식은 결국 상업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는 상품화에 다름 아니며, 아동의 권리와 존엄을 침해한다”며 “언더피프틴 방송 계획을 즉각 철회하고, 방송통신위원회와 여성가족부는 여성 아동 대상 콘텐츠 전반에 대한 기준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이 프로그램 제작사인 크레아스튜디오는 25일 제작보고회를 열어 “참가자들과 보호자들이 프로그램의 명과 암에 대해서 모르지 않는다. 제작 과정과 그 이후 과정에서도 긴밀하게 소통을 했다”며 “방송이 안 될 경우 아이들이나 부모님이 받을 상처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라며 방영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제가 된 티저 영상과 이미지에 대해서는 “제작 의도와 다르게 오해를 받아 삭제했고, 바코드는 학생증 콘셉트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사단법인 탁틴내일 석희진 활동가(이현숙 상임대표 발언 대독)는 “제작진은 바코드를 학생증 콘셉트라고 했지만, 개인이 소지한 학생증의 바코드와 선정적으로 꾸며진 아동의 이미지에 바코드를 부착해 전시한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이런 차이를 인지하지 못한 해명은, 인권 감수성 부족을 다시 한 번 명확하게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또 “15살 이하 아동은 신체·정신적으로 균형 있게 성장할 수 있도록 보호와 지지가 필요한 시기”라며 “같은 연령이라도 기획사에서 연습생으로 훈련받아 준비된 상태로 대중 앞에 서는 것과 방송을 통해 공개적으로 외모, 실력, 성격까지 평가받는 상황에 놓이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고 짚었다. 방송을 통해 대중으로부터 우호적인 반응을 얻을 수도 있지만 현재 수많은 여성 아이돌이 겪고 있는 악성 댓글과 비교, 조롱, 딥페이크 성범죄 등 감당하기 어려운 반응에 노출될 위험성 또한 크기 때문이다.



한겨레

한국여성단체연합·민주언론시민연합·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129개 시민사회단체는 26일 오전 서울 중구 엠비엔(MBN)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언더피프틴’ 방송 중단을 촉구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제공




김지연 전교조 부위원장도 “어린이·청소년 (스스로 프로그램에 참여) 의사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문제가 아닌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그동안 얼마나 어린이·청소년을 성적으로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 착취해왔는지를 따지는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나서 온라인 괴롭힘·성폭력에 노출되더라도 참가자 의사를 확인했으니 괜찮다고 할 것인지 제작진에게 묻고 싶다”고 짚었다.



노새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활동가는 “세계 각지에서 ‘15살 이하 아동’만 모아 연예인이 되기 위한 경쟁을 프로그램으로 만들겠다는 발상은, 자본이 ‘아동들의 꿈을 응원한다’는 선의로 포장하여 우리 공동체가 합의하고 있던 최소한의 상식선을 ‘글로벌 최초로’ 저 아래로 추락시키겠다는 선언, 그래서 아동 인권을 퇴행시키는 데 미디어가 나서겠다는 공표나 다름 없다”며 “아무리 프로그램의 만듦새가 매끄럽고, 출연자들의 꿈과 열정과 의지가 대단하고, 제작 과정 중에 출연 아동들에 대한 배려와 보호자의 ‘동의’가 넘쳐난다고 한들 이런 방송이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라고 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아동이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고유한 속도로 자랄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스쿨미투 대응팀장은 “자아 정체성과 자존감이 형성되는 어린이·청소년기에는 사회적 평가에 두뇌가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진로를 빨리 선택하기를 기대받고, 안정적이며 성공적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불안과 강박이 한국 사회를 잠식하는 가운데, 방송이 출연자는 물론 (시청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미칠 해악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자료를 보면, 미디어에서 여성 아동은 남성 아동에 견줘 더 빈번하게 성적인 방식으로 묘사되며, 사회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미적 기준을 내면화해 불안·수치심·섭식 장애·자존감 저하 등의 문제를 유발한다고 돼 있다.



프로그램을 편성한 엠비엔에 대한 비판도 컸다. “방송사 내부에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승인하는 결정권자들이 존재하는데 의사 결정 과정에서 ‘여성 아동·청소년을 성적 대상화 할 위험이 있는가’라는 기본 질문조차 되지 않은 점은 매우 심각하다”는 취지다. 김수정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는 “종합편성채널 엠비엔이 아동·청소년의 건강하고 안전한 성장을 위한 환경 조성에 이바지하기는커녕 공적 책무를 내팽개친다면 언론으로서 존재할 명분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한편 ‘언더피프틴’ 제작진이 제작보고회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는 발언에 대해 방심위는 보도자료를 내어 “심의규정 위반 여부에 대한 의견을 전달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달라 제작사 쪽에 항의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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