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미사일 시스템은 타격 대상에서 최대 1900㎞ 떨어진 곳에서도 발사 가능해 흔히 ‘전략적 중거리 발사 시스템(SMRFㆍStrategic Mid-range Fires System)’이라고 불린다. 중국은 미국과 필리핀의 타이폰 시스템 배치에 대해, 이 지역에서 군비 경쟁을 유발한다고 격렬히 비판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5일 “미군이 이렇게 먼 거리를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지상 발사 시스템을 미국 밖에 배치한 것은 냉전 이후 처음”이라며,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이 시스템을 이 지역에 계속 유지해 아시아 동맹국들에 대한 중국의 침략을 억제할지 여부가 관심이라고 보도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 신문에 타이폰의 필리핀 배치는 이 지역에서 중국이 중ㆍ장거리 미사일을 증강한 것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미군이 취한 ‘전략적 재배치’의 일부라고 말했다.
◇미 육군의 첫 중거리 미사일 ‘지상 발사’ 시스템
타이폰 미사일 시스템은 최대 사거리 464㎞인 스탠다드 미사일(SM)-6과, 2000㎞에 가까운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토마호크는 남중국해와 대만 해협을 따라 중국 남동부의 대부분 지역을 타격할 수 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토마호크는 중국 해안의 방공(防空)ㆍ레이더 시스템과 광저우ㆍ난징에 있는 중국군 지휘ㆍ통제 센터를 표적으로 삼게 된다.
필리핀 루손 섬 기지에 배치된 미 육군의 중거리 미사일 지상발사 시스템 '타이폰'의 사거리. 바깥 큰 원은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 작은 원은 SM-6를 '타이폰'으로 발사했을 때 도달하는 거리를 뜻한다. |
사거리가 짧은 SM-6는 중국 해군이나 다른 적의 전함ㆍ항공기, 미 군사자산을 겨냥해 발사된 크루즈ㆍ탄도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 미 육군 측은 또 SM-6는 현재 미군 자산 중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극초음속 미사일을 비행 후반 단계에서 요격할 수 있는 유일한 미사일이라고 말한다.
이전까지 미국은 지상 발사 중거리 미사일을 금지하는 러시아와의 중거리 핵미사일 금지조약(IRNF)에 따라, SM-6와 토마호크 미사일을 주로 전함과 같은 해상 플랫폼에서 발사하는 운용 체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미국ㆍ러시아 간 IRNF 조약 당사국이 아닌 중국은 이 허점을 악용해, 지상 발사 중거리 미사일을 막대하게 축적했고, 트럼프는 결국 1기 행정부 때인 2019년 IRNF 조약에서 탈퇴했다. 이후 미 육군은 새로운 중거리 미사일 발사 시스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미 육군은 2022년 말 처음으로 타이폰을 인도 받았고, 인도ㆍ태평양의 덥고 습한 기후에서 테스트하기 위해서 작년 미국ㆍ필리핀 합동 군사훈련에서 처음으로 타이폰 시스템 2대, 작전 센터와 지원 차량을 루손 섬으로 옮겼다.
미 육군이 필리핀 루손 섬에 배치한 것과 같은, 다목적-다종(多種) 미사일 지상발사 시스템인 타이폰. |
이후 미 육군은 타이폰의 루손 섬 배치를 무기한 연장했고, 필리핀군 수뇌부도 자국 군대의 사용을 위해 타이폰 구매 의사를 밝혀 현재 필리핀군이 타이폰 사용법을 익히고 있다.
그러나 타이폰이 제대로 군사적 진가(眞價)를 발휘하려면 모두 4대가 한 세트로 운용돼야 하며, 현재 필리핀에는 이 타이폰이 발사할 중거리 미사일은 없다.
그런데도 중국의 반응은 격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2월 “중국은 우리 안보에 피해를 입거나 위협당하는 상황을 앉아서 보지는 않을 것”이라며 타이폰 제거를 요구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1983년 미국이 당시 서독에 중거리 핵미사일 퍼싱(Pershing)-2와 발사대를 배치했을 때 벌어졌던 논란을 상기시키며 타이폰 제거를 요구했다. 퍼싱-2는 사거리가 1770㎞여서, 소련의 모스크바를 8~10분 만에 타격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시 소련은 미국의 ‘선제 핵공격’ 가능성을 크게 우려했고, 미국은 1987년 소련과 지상발사형 중거리 핵미사일(IRNF)조약을 맺고 퍼싱-2 미사일을 폐기했다. 이 조약으로 미국과 러시아(소련)는 사거리 480~5440㎞의 지상 발사 중거리 탄도ㆍ크루즈 미사일의 보유ㆍ생산ㆍ비행시험이 금지됐지만, 중국은 이 IRNF 조약의 당사국이 아니었다.
트럭 뒷부분의 트레일러에 장착된 타이폰은 군용 수송기로도 이송이 용이하다. 또 항시 이동할 수 있는 지상 기반 미사일 발사 시스템이라, 적의 포착과 제거가 더 어렵다.
미국은 현재 괌과 같은 거대한 중앙집중형 기지 위주를 벗어나 인도ㆍ태평양 지역 곳곳에 회복력이 강한 전력 태세를 분산 배치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타이폰 미사일 시스템을 이 지역 전역에 배치하고 또 동맹국들에게 판매할 수 있다.
◇잠재적 ‘협상 칩’으로 사용될 가능성
타이폰의 필리핀 배치는 바이든 행정부가 필리핀의 전략적 중요성을 크게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전세계 해상 무역의 3분의1이 지나가는 남중국해에서 중국군과 맞서면서, 자국 기지에 대한 미군의 접근성을 확대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새 육군장관 댄 드리스콜은 지난 13일 소셜미디어 X에 “우리는 필리핀에 배치한 자산을 통해서 MRC(중거리 능력)의 억제적 효과를 충분히 증명했다”고 썼다. MRC(Mid-Range Capability)는 타이폰에 대한 미 육군의 기술적 명칭이다.
댄 드리스콜 미 육군장관이 지난 13일 타이폰 발사 시스템의 화력을 확인하고, 필리핀에 배치된 이 시스템의 대(對)중국 억제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트윗./X |
그러나 일부에선 이렇게 강력한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전력을 중국 인근으로 이동하는 것은 유사 시에 우발적인 미ㆍ중 전쟁을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1983년 서독에 배치한 퍼싱-2 논란의 재탕이다.
미 국방부의 남아시아ㆍ동남아 담당 부(副)차관보 앤드류 바이어스는 중국과의 ‘긴장 완화’를 선호한다, 그는 취임 전 남중국해 분쟁 해역에서 중국 해양경비대가 순찰 횟수를 줄이는 대신에, 미군은 중국 근처에서 MRC 자산을 철수하는 안을 제안했다.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도 중국이 침략 행위를 중단하면, 타이폰 시스템을 철수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를 놓고 푸틴과 협상 했듯이, 트럼프와 시진핑 간 거래에서 ‘필리핀의 타이폰’이 흥정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필리핀대 아시아 센터의 국제학 강사인 리처드 헤이다리안은 WSJ에 “이런 협상에서는 종종 필리핀과 같은 소국의 이익은 희생될 수 있다”며 “필리핀과 트럼프 행정부가 타이폰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앞으로 수 년간 이 지역의 억제 게임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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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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