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롯데 전준우-한화 안치홍-두산 정수빈. 스포츠조선DB |
프로스포츠 최초로 1000만 관중 시대를 연 2024 프로야구. 2025년은 더 크게 흥행할 조짐이다. 개막 시리즈부터 역대 최초 이틀 연속 전 구장 만원 기록을 세우며 '역대급' 흥행 가도를 시작했다.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스포츠 문화로 자리매김 한 프로야구. 지속가능한 성장과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는 양적 성장 만큼 질적 성장이 동반돼야 한다. 자칫 화려함에 취해 본질적인 부분을 놓칠 수 있다.
[스포츠조선 이종서 기자]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대한민국의 남성이라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병역. 야구 선수 역시 예외는 아니다.
국가대표 활약으로 혜택을 받지 않는 이상 현역병(상근예비역 등 포함) 혹은 국군체육부대(이하 상무) 복무로 해결해야 한다.
군 복무를 마치고 시즌 중 돌아오는 선수도 많다. 문제는 기록의 연속성이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커리어 내내 달성하는 '누적 기록'의 가치도 높지만, 매년 얼마나 꾸준하게 하는지를 증명하는 '연속 기록' 또한 가치가 크다. 매년 발간하는 KBO 레코드북에도 '연속 기록'은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분명하게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기록이지만, 군 복무 탓에 끊기는 경우가 많다. 시즌 중간 등록되면서 앞뒤로 이어졌을 수 있는 '연속 기록'의 행진을 멈추게 되는 경우가 많다.
13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시범경기 롯데와 한화의 경기. 4회 투런홈런을 날린 롯데 전준우. 부산=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5.03.13/ |
롯데의 안타제조기 전준우(39)는 군 복무 이전인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세 자릿수 안타를 기록했다.
하지만 경찰 야구단 복무를 마치고 롯데로 돌아온 2016년 9월에야 1군에 등록돼 25경기에서 25안타를 기록했다.
본격적인 군 복무 이후 시즌이었던 2017년부터 2024년까지 계속 세 자릿수 안타를 쳤지만, 1군 등록이 36일에 불과했던 2016년 기록 탓에 연속 세 자릿수 안타 기록은 현재 8시즌에 그치고 있다. 차라리 2016년 시즌 중 복귀하지 않았더라면 전준우의 세 자릿수 안타 기록은 13시즌째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안치홍(35·한화 이글스) 역시 마찬가지. 전준우와 경찰야구단 동기였던 그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 간 꾸준하게 100안타를 넘겼다. 역시 2016년 가을 1군에 복귀해 10경기 출전에 그쳤고, 8안타로 시즌을 마쳤다. 안치홍 또한 군 복무 후 본격 시즌이었던 2017년부터 2024년까지 8시즌 연속 세 자릿수 안타를 쳤다. 그 역시 13시즌 연속 100안타 이상이 8시즌 연속으로 줄었다.
8일 청주야구장에서 열린 시범경기 두산-한화전. 9회말 1사 3루 안치홍이 1타점 2루타를 치고 있다. 청주=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
정수빈(35·두산 베어스)의 도루 기록도 비슷한 사례.
2009년 입단 이후 2016년까지 8년간 꾸준하게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했던 정수빈은 2018년 9월 경찰 야구단에서 전역한 뒤 곧바로 1군에 등록돼 25경기에서 5도루를 기록했다. 2019년부터는 지난해까지 6시즌 동안 매 시즌 두 자릿수 도루를 성공시키고 있다.
군 복귀 시즌이 없었다면 14시즌 연속 두자릿수 도루 행진중이었을 선수. 그랬다면 정수빈은 전준호 (18시즌 연속) 정수근 박용택 이용규(이상 14시즌)에 이어 역대 5번째 14시즌 연속 도루 기록 달성자가 된다.
한 시즌의 절반도 뛰지 못했던 전역 시즌이 없었다면 이들은 모두 KBO리그 역사에 남는 기록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전준우와 안치홍이 아쉽게 놓친 13시즌 연속 안타는 역대 양준혁 박한이(이상 16시즌 연속) 이승엽 김현수(15시즌 연속) 이대호 손아섭(14시즌 연속) 김태균 정근우 최형우 황재균(13시즌 연속) 등 고작 10명 밖에 못한 기록이다.
문제는 선수가 1군 등록 여부를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기록을 이어가고 싶으니 새로운 시즌에 등록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선수는 없다. 선수는 팀이 정하는 대로 따라야 할 의무가 당연히 있다.
과거 한 선수가 '군 복귀 시즌' 예외에 대한 문의를 KBO에 한 적이 있다. 문의를 받은 직원은 "만약 그 짧은 시즌 동안 20개의 홈런을 치거나 기록이 좋았더라면 어쩔거냐"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누적 기록'과 '연속 기록'의 성격은 분명히 다르다.
선수들 역시 아쉬운 마음은 마찬가지. 선수들은 이구동성으로 "(등록 부분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팀이 필요로 해서 등록을 한다면 그대로 따라야 하지 않나"라며 "그 부분에 있어 기록이 깨진 건 당연히 아쉽다"고 토로했다.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군 전역 시즌 일정 등록 기간에 미치지 못할 경우 일괄로 연속 기록에서 제외하는 방법이 있다.
17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KBO리그 KT 위즈와 두산 베어스의 시범경기. 두산 정수빈이 안타를 날린 뒤 숨을 고르고 있다. 수원=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 |
올 시즌 전준우 안치홍 정수빈은 모두 건재하다. 이들의 연속 기록 행진은 또 하나의 스토리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올시즌만 해도 이대호 손아섭 기록을 넘을지에 대한 관심이 이어질 수 있다.
위대한 기록이 빛나기 위해서는 상식적이고 공정한 기준이 중요하다.
부상이나 경쟁에서 밀린 건 선수 개인의 역량이라 할 수 있지만, 개인 책임이 아닌 '병역 의무'로 인한 피해 사례가 나와서는 안된다. KBO리그에만 있는 '군 복무'로 인한 중단으로 억울한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 군 전역 선수의 연속 기록에 대한 예외조치 명문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종서 기자 bellstop@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