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에 의한 문명의 발달은 사회를 급격히 변화시킨다. 그 전형적인 예가 인쇄술의 발달이다. 15세기 독일의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가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하자 책이 광범위하게 보급되었고, 성서는 더 이상 성직자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평민들도 성서를 집에 두고 읽게 되면서, 그들은 면죄부 판매 등 당시 구교의 행태가 성서와 맞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인쇄술의 발달은 서구사회에 종교개혁의 바람을 일으켜, 16세기 프로테스탄트(신교도)의 출현을 가능케 한 사회 변화의 한 원인이 되었다.
인쇄술에 이어 개신교의 출현은 세상을 다시 크게 변화시켰다. 서양에서 개신교 이전의 신앙에 따르면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은 죄악이었고, 부자는 가난한 자보다 천국에 들어가기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개신교는 노동과 절약을 강조하며, 열심히 일해서 또는 자본가로서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은 구원을 받기 위한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니얼 퍼거슨 교수 또한 이에 동감하며, 프로테스탄트의 직업윤리 때문에 북유럽과 미국 등 개신교 국가의 시민이 정통 카톨릭 국가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잘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 그는 개신교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지칠 줄 모르는 노동’을 강조하였으니, 개신교 융성 지역은 구교 지역보다 노동시간이 길고 노는 사람이 적다고 분석했다. 이제 구교의 유럽인들은 미국인보다 노동 시간도 적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 기도 또한 덜한다고 한다. 재미난 분석이다.
실제로 개신교가 번성한 미국은 19세기까지 주당 평균 60시간 이상의 노동이 일반적이었다. 20세기 들어와서도 미국은 같은 업종에서 지금보다 50% 이상 노동시간이 길었다. 우리나라가 2018년부터, 주당 62시간에서 최대 52시간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통제하는 법을 시행 중이지만, 미국에는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노동시간을 길게 하였다고 사용자를 처벌하는 법 또한 당연히 없다. 주당 40시간 이상의 근로에 대해서는 시간당 정규임금의 1.5배를 시간외 수당으로 지급하면 끝이다. 시간외 근무 시, 휴식시간은 법적으로 부여해야 하지만 식사를 무료로 제공할 의무는 없다. 노동자 또한 이런 사회적 전통에 전혀 불만이 없다. ‘남들과 똑같이 40 시간만 일하면서 어떻게 아메리카 드림을 실현하며 부자가 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제조업을 부활하여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GA)’고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 또한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일체 말이 없다.
더군다나 미국에서는 주당 40시간 이상 일하더라도 시간외 수당조차 못 받는 직원이 있다. 1938년 제정된 공정노동법(Fair Labor Standards Act)에서 규정하고 있는 ‘Exempt Employee(시간외수당 제외 직원)’이다. 반대로 시간외 수당을 꼭 줘야하는 직원은 ‘Non-Exempt Employee(시간외수당 지급 직원)’라 한다. 경찰, 소방서, 응급실 같이 근무 시간이 불규칙한 기관이 아닌 일반 기업에서 Exempt Employee와 Non-Exempt Employee의 구별과 조건은 공정노동법에 상세히 규정되어 있다.
Exempt Employee가 되기 위해서는 두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첫째, 급여를 시급(Hourly Wage)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월급(Salary)으로 받고, 연봉이 U$35,568 이상이어야 한다. 둘째, 업무상 조건도 만족해야 한다. 인사, 재경 등 관리분야에서 어느 정도 재량을 가지고 사용자를 위해 일하는 일반 행정직이거나, IT 직종 종사자, 지적 능력과 창의성을 가지고 연구 및 발명 등을 하는 전문직군, 외부 판매 종사자 또는 임원 등이 업무상 조건이다. 바이든의 민주당 정부 시절에 Exempt Employee의 첫 번째 요건인 연봉에 대하여 ‘U$58, 656 이상 직원’ 이라고 개정하였으나, 올해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서 법원에 의해 없었던 일로 원상회복 되었다. 즉, 시간외 수당을 꼭 줘야 하는 직원의 수를 최소한으로 유지하겠다는 사고가 아직도 우세하다고 해석된다.
근면, 검소, 다양성 그리고 노동에 대한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중요시하는 미국에서 노동시간의 상한을 두는 것은 프로테스탄트 직업윤리와 어울리지 않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거기에 미국의 많은 주는 노동법에 개인의 ‘일할 권리(Right to Work)’를 보장한다. 현대제철 미국 공장 입지로 최근 발표된 루이지애나를 비롯하여 텍사스, 앨라배마, 조지아, 사우스 캐롤라이나 등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한 중남부의 대부분 주는 ‘일할 권리’가 보장된 곳이다. 즉, 미국 50개 주 중 26개 주가 개인에게 노동조합 가입할지 여부 결정권을 주고, 회사에 취직하려면 노조에 필수적으로 가입해야 한다는 Union Shop이나 Closed Shop을 금지하는 ‘Right to Work State’이다. ‘일 하기 위해 산다’는 프로테스탄트의 기본 정신이 아직도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AI, 반도체 그리고 조선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한국 기업이 주 52시간 족쇄에 갇혀 갈수록 경쟁력이 떨어져 가는 현실은 안타깝다. 52시간 규제의 피해는 AI나 반도체 연구개발만이 아니다. 한국의 금형 산업은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금형 업계는 몰려오는 주문을 거절하기 바쁘다는 보도가 최근 나왔다. 52시간 때문에 납기를 맞출 수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이런 시점에, 왜 미국에서는 Exempt Employee에게는 시간외 수당을 안 줘도 된다고 특별히 법으로 규정하는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 볼만하다. 특히, 업무 수행에 높은 지적 수준과 창의성이 요구되는 연구개발(R&D) 직종의 월급제 직원에 대해서는 시간외 수당을 안 줘도 될 뿐만 아니라, 그 근무시간에도 상한이 없는데 그 이유를 새겨 봐야한다. 사실 그것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경쟁력의 숨은 요소이다.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는 신제품 개발에 있어서는 아주 빡빡한 비현실적 목표 기한을 정해 놓고, 광적인 긴장감을 주면서 해당 연구개발 인력을 밀어 부치는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일론 머스크는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잠을 자며 개발 일정을 독촉하며 챙긴 것으로 그의 평전에 나온다. 사실 산업계에서 신제품 개발은 시간 전쟁이다. 느긋한 개발 일정은 어느 산업에도 없다. 시간이 곧 돈이고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근로자는 약자이고 기업은 그들을 착취하여 성장한다’는 옛날식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근로자는 촘촘한 노동 관련법으로 보호 받고 있고, 그들은 또한 충분한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살기 위해 일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일에서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고, 일을 자아실현의 방편으로 삼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추세이다. 특히 시간외 수당이 없는 Exempt Employee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공권력으로 Exempt Employee까지 포함하여 근로시간의 획일적 상한을 정하는 것보다, 그것에 대해서는 각자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해 주는 것이 더 인격적 대우를 해주는 것이 아닐까? 내 직장, 나의 일이 ‘소중한 이유’는 한정되고 짧은 근로시간 때문이 아니라, 내가 거기에 쏟아 부은 나의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나의 장미꽃, 아니 나의 일이 소중한 이유’를 ‘어린 왕자’처럼 다른 행성인 지구에 와서 비로소 알게 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각자의 직장에서 모두가 깨달었으면 좋겠다.
노동시간의 상한이 없는 미국이지만, 40시간 이상 근무와 토요일이나 공휴일의 근무는 근로자의 자유로운 선택이고 경영자는 그것을 존중한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소프트랜더스㈜ 고문/ ㈜삼기 북미법인장/ 前 현대자동차 중남미권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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