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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크라, ‘흑해 휴전’ 합의…러 ‘제재 완화’ 요구에 시점은 불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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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미국과 개별 회담을 하는 방식으로 휴전 방안을 논의한 뒤, 흑해 해상 휴전에 합의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완전한 휴전을 위한 첫 단추로 꼽히지만, 정확한 휴전 조건과 시점 등에 관해선 이견이 노출돼 실제 휴전까지 난항이 예고된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 23∼25일(현지시각)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와 각각 나눈 고위급 실무 회담 결과를 25일 두 개의 보도자료로 발표했다. 미국은 양국과 흑해에서 안전한 항해를 보장하고, 무력 사용을 배제하며, 흑해에서 상업용 선박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에 대한 믿음은 없다”면서도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회담 결과를 이행하기 위해 우리의 역할을 다 할 것”이라며 합의에 동의했음을 밝혔다.



미국과 러시아는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평화 달성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란 점과 더불어, 에너지와 흑해 협정 관련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제3국에 사무소를 설치하는 방안도 합의했다.



하지만 흑해에서의 휴전 및 세 정상이 사전 합의했던 에너지 시설과 관련한 구체적인 합의 수준은 불분명해 보인다. 러시아 크렘린은 같은날 흑해 해상 휴전을 두고 ‘조건부’ 휴전안을 발표했다. 러시아는 국영 농업 은행을 비롯한 국제 식량 무역에 관여하는 금융 기관에 대한 제재 해제가 이뤄지고, 이들이 다시 국제 결제 시스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연결되는 조건 등이 이행된 뒤 흑해 휴전이 시작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항만 서비스에 대한 제한과 식품, 비료 무역 거래를 하는 러시아 선박 제재 해제, 러시아에 공급되는 농기계와 식품, 비료 관련 상품에 부과되는 제재 해제도 조건에 포함됐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휴전 협정을 위해선 “명확한 보증이 필요하다”며 이를 미국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제대로 명령해야 할 것이라고 이날 페르비카날(채널1) 인터뷰에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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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내 분리 독립 국가인 압하지야 공화국의 수도 수후미를 따라 펼쳐진 흑해. EPA 연합뉴스


미국은 보도자료에서 “러시아의 농산물 비료 수출을 위한 세계 시장 접근성을 회복하고, 해상 보험 비용을 낮추며, 이러한 거래를 위한 항만 및 결제 시스템 접근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지만, 이를 휴전의 조건으로 설명하진 않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미국과 논의한 결과 흑해 해상 휴전은 25일 즉각 시작돼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또 러시아가 제시한 휴전 완화 조건에 “우리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저녁 연설에서도 “러시아는 이미 합의를 왜곡하고, 우리의 중재자와 전 세계를 속이고 있다”며 러시아를 비난했다.



서방 전문가와 언론은 내용을 뜯어보면 러시아의 요구는 수용하되 양보는 끌어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애초 우크라이나는 흑해에서 막대한 드론 공격으로 러시아 함대에 큰 타격을 가해 2년여간 군사 활동이 거의 없었다. 여기에 미국의 지원으로 러시아가 원하던 제재 완화까지 이뤄진다면, 휴전 이행까지 갈등의 불씨가 남을 수 있다. 특히 미국은 러시아 금융 기관과 수출 제재에 관여하는 유럽을 설득해야 하는데, 유럽이 여기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방어를 위해 흑해에 배치했던 군함을 크림반도 항구로 이전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루스템 우메로프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은 페이스북에서 “러시아가 흑해 동부 이외 지역 바깥으로 군함을 이동시킨다면 이는 협정의 정신을 위반하는 것으로, 흑해의 안전한 항해 보장 약속을 어기는 것이다. 이 경우 우크라이나는 자위권을 행사할 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협정의 효과적인 이행을 위해 추가적인 기술 협의를 개최해야 한다”며 합의의 세부 사항에 대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 중단도 이번에 합의했지만, 세부 내용에 차이를 보였다. 앞서 지난 18일 미국이 모든 ‘에너지와 기반 시설’(energy and infrastructure)에 대한 즉각적인 휴전에 러시아와 합의했다고 밝혔고 우크라이나도 이를 수용한다고 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서로 상대방이 합의를 어기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백악관은 25일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 금지에 대한 양국 대통령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조처를 개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정확한 중지 시점이나 대상 시설을 공개하진 않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흑해와 마찬가지로 25일 즉각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휴전도 발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에너지 시설 전투 중지는 지난 18일부터 30일간 시작된 것이라고 명시했다. 앞서 또 협정 기한은 상호 동의 하에 연장될 수 있지만 한 쪽 당사자가 약속을 파기하면 상대방은 협정을 준수할 의무가 없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공격 중단 대상이 되는 양국의 에너지 시설 목록도 러시아만 공개했다. 여기엔 정유소와 석유 및 가스 파이프라인, 전력 생산과 송전 관련 시설, 원자력 발전소, 수력발전 댐 등이 포함됐다.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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