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35일 만에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집값 급등에 놀란 정부와 서울시가 초강수를 던졌다.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 전체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면서 부동산 업계가 시끌시끌하다.
정부가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면서 논란이 뜨겁다. 사진은 잠실 아파트 전경. (매경DB) |
정부, 강남 3구·용산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관계기관 회의를 열고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구 아파트 2200개 단지, 40만여가구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확대 지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잠실, 삼성, 대치, 청담을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전격 해제하겠다고 발표한 지 불과 35일 만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기간은 3월 24일부터 9월 30일까지 6개월이며, 필요하다면 기간 연장을 검토하기로 했다. 3월 24일부터 체결된 아파트 신규 매매 계약분부터 적용된다.
집값 급등을 차단하기 위해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특정 구역이나 동이 아닌 구 단위로 한꺼번에 지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지정으로 서울 내 토지거래허가구역은 52.79㎢에서 163.96㎢로 3배 확대된다. 서울시 전체 면적(605.24㎢)의 27% 수준이다. 서울시는 잠실, 삼성, 대치, 청담 등 토지거래허가구역 14.4㎢를 해제했다 집값이 불안해지자 이보다 훨씬 넓은 110.65㎢를 새로 지정한 꼴이 됐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 영등포구 여의도, 양천구 목동, 성동구 성수동 등 현행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시장 과열 우려가 완전히 해소되기 전까지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유지한다.
토지거래허가제는 투기가 우려되는 지역에서 일정 규모 이상 집이나 땅을 거래할 때 관할 기초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규제다. 주택은 2년 이상 실거주 목적 매매만 허용해 ‘갭투자’가 불가능하다. 주택 매수자는 가구원 전원이 무주택자이거나 보유 주택을 1년 이내 모두 팔아야 한다. 사실상 무주택자만 아파트 매수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정부는 강남 3구, 용산구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 이후에도 집값 과열 양상이 가라앉지 않는다면 추가 조치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현재 강남 3구와 용산구만 포함된 조정대상지역과 투기과열지구도 마포, 성동, 강동구 일대로 더 넓힐 수 있다.
조정대상지역에 편입되면 주택 구입 시 받을 수 있는 대출 규모가 줄어든다. 비규제 지역에서 70%까지 허용되는 담보인정비율(LTV)이 무주택자는 50%, 유주택자는 30%로 제한된다. 세제도 양도소득세 비과세 요건에 실거주 2년이 포함되고, 취득세는 다주택자 중과가 적용된다.
정부와 서울시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대거 지정한 배경은 뭘까. 탄핵 이슈에 휘말린 국정 혼란기에 부동산 시장 불안이 길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빠른 안정세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지난 2월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를 분석한 결과 전용 84㎡ 평균 매매가는 14억3895만원에 달했다. 서초구는 31억4043만원으로 월간 기준 처음으로 30억원을 돌파했다. 강남구(27억634만원), 송파구(20억2813만원)도 20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일례로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전용 76㎡는 최근 31억7700만원에 거래돼 신고가를 기록했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10·13·14차 전용 84㎡도 50억원에 주인을 찾으면서 최고가를 다시 썼다. 아파트값이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다 보니 집을 보지 않고 바로 계약하는 매수인도 적잖다는 게 현장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이 전하는 분위기다. 한동안 감소세를 보이던 아파트 거래도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올 2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지난해 8월(6537건) 후 6개월 만에 다시 5000건을 넘어섰다.
집값 급등에 외지인 매수뿐 아니라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도 급증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2월 강남 3구 아파트 매수인 중 강남 3구에 거주하지 않는 외지인 비중은 62.4%로 1월(55.3%)보다 크게 늘었다. 강남 3구 아파트를 갭투자로 매입한 이들 비중도 1월 35.2%에서 2월 43.6%로 뛰었다.
당분간 매수 심리 위축되겠지만
오락가락 정책 실효성 의문
전문가들은 정부와 서울시가 강남 3구와 용산구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면서 당장 집값 급등 흐름은 막을 것으로 내다본다. 정부가 “주택 시장 불안이 지속된다면 금융, 세제, 정책 대출 등의 대응 방안을 제약 없이 검토해 특단의 추가 조치를 강구할 계획”이라고 밝힌 만큼 당분간 매수 심리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효과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통상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은 1년 단위로 하는데 이번에는 6개월 단위로 단축했다.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려는 조치라지만 서울시가 오는 9월 이후 또다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워낙 광범위한 지역을 지정하다 보니 토지거래허가구역 약발이 더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양천구 목동신시가지단지는 토지거래허가구역에 묶여 있지만 여전히 신고가 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풍선효과’도 우려된다. 곧장 마포·성동·강동구 등 인기 지역 아파트에 매수 수요가 몰릴 수 있다는 의미다. 앞서 잠실, 삼성, 대치, 청담동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이후에도 주변 지역 아파트값이 오히려 뛰면서 부작용이 나타났다. 양지영 신한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 수석은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후폭풍으로 마포·성동·강동구 등 인근 지역 집값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구축이나 나 홀로 아파트처럼 집값이 오히려 떨어지거나 매매가 안 되는 단지까지 규제가 확대된 점도 논란거리다. 불과 한 달 만에 뒤집힌 ‘오락가락’ 정책에 실수요자만 피해를 본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잖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 정책은 일관되고 예측 가능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짧은 기간 내 번복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당장 강남권 거래를 억제하더라도 규제를 한없이 지속하기 어려운 만큼 장기적으로 집값 안정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도심 주택 공급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이번 대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같은 지역별 규제에만 의존하지 말고 수급 불균형을 막기 위한 재개발, 재건축 규제 완화 등 공급 활성화 대책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목소리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2호 (2025.03.26~2025.04.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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