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할 땐 연무, 개면 강풍 탓 진화 난항
문화유산 잿더미 위기...청송군도 위협
'완진' 하늘에 달렸는데 27일 찔끔 비 소식
25일 경북 안동시 남선면 마을에서 주민들이 야산에 무섭게 타오르는 산불을 바라보고 있다. 안동=연합뉴스 |
경북 의성군에서 나흘째 타오른 산불이 25일 강풍을 타고 인근 안동시, 청송군, 영양군에 이어 동해안 영덕군까지 확산했다. 의성군 등운산 자락의 천년 고찰 고운사를 완전히 태운 산불은 세계문화유산인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까지 집어삼킬 태세다. 고온건조한 날씨에 연일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진화 속도가 산불 전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피해 확대가 우려되고 있다.
안동시는 이날 오후 5시쯤 전 시민을 대상으로 "관내 산불이 우리 시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으니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는 내용의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앞서 안동시는 "의성 산불이 강한 바람으로 급속도로 확산 중"이라며 하회마을 주민들을 낙동강변 풍천면 광덕리로 대피하도록 했다. 이날 오후 3시쯤 안동 일부 지역에는 강풍주의보가 발령되며 의성에서 넘어온 거센 불길이 동남풍을 타고 북상해 하회마을과 직선거리로 불과 10㎞ 거리까지 접근했다. 산불과 하회마을 사이에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지만 이번 산불이 강풍에 올라탄 불씨가 수백 m를 날아가며 확산한 만큼 국가유산청과 소방 당국, 지자체들은 초긴장 상태다.
25일 경북 의성군 고운사 주차장에서 바라본 주변 산들이 시뻘건 화염에 휩싸여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이자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사찰 고운사는 산불에 완전히 소실됐다. 경북도 제공 |
산림청 중앙사고수습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전 11시 24분 안평면 괴산리에서 발화해 나흘째 진화하지 못한 의성 산불은 계속 규모가 커졌고, 24일 하루에만 다시 두 배가 됐다. 직간접적 피해가 예상되는 산불영향구역은 전날 오전 7시 6,861㏊에서 이날 오전 1만2,565㏊로 넓어졌고, 산불이 타오르는 전체 화선(火線)도 125.9㎞에서 214.5㎞로 늘었다.
산불은 거침없이 확산하는데 연무와 강풍에 막혀 진화는 속도가 안 나고 있다. 의성 산불 진화율은 오전 7시 55%에서 오후 6시 기준 68%로 상승하는 데 그쳤다. 설상가상 산불영향구역은 1만5,185㏊, 전체 화선은 279㎞로 더 커지며 청송군, 영양군, 영덕군까지 덮쳤다.
오전에 잔잔하던 바람이 오후 2시를 전후해 강해지면서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이날 오후 의성 일대에는 순간최대풍속이 초속 10~20m인 강풍이 불었다. 성인이 순간적으로 휘청거릴 정도의 바람이다. 바람이 잠잠할 때는 연무로, 개였을 때는 강풍으로 진화에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완전히 꺼지지 않고 낙엽층 깊숙한 곳에 남아 있던 불씨가 강풍에 계속 재발화하고 있다.
경북 의성군 산불이 청송군으로 확산한 25일 청송문화예술회관에서 바라본 산들이 불타고 있다. 독자 제공·연합뉴스 |
산림청과 소방 당국은 의성 산불을 끄기 위해 헬기 77대, 인력 3,708명에 전날 국가소방동원령 추가 발령으로 대구 부산 광주 대전 전남 등 전국 각지에서 끌어모은 70여 대를 더해 진화차량 530대 등 가용 자원을 총동원했지만 결과적으로 역부족이었다. 한 진화대원은 "목요일에 비소식이 있다지만 강수량이 많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안동시와 청송군, 영양군, 영덕군까지 삼키려고 하자 경북도는 오후 6시쯤 도내 전 시군에 '비상대응 행정명령'을 발령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의성, 안동, 청송, 영양, 영덕에서는 즉각 주민을 대피하고 안전조치를 취해 달라"고 말했다.
의성 산불 이외에 산불 대응 3단계가 발령된 경남 산청군 산불도 5일째, 울산 울주군 산불은 4일째 꺼지지 않고 있다. 오후 6시 기준 산청 산불 진화율은 87%다. 울주군 온양읍 산불은 진화율이 90%를 넘었지만 이날 울주군 언양읍에서 또 다른 산불이 발생해 진화 중이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바람으로 인해 군데군데 산불이 계속 살아나고 있다"며 "강풍과 연기로 발화점 근처 진입이 어려워 진화 작업에 애를 먹고 있다"고 밝혔다.
의성= 정광진 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울산= 박은경 기자 chang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