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국회예산정책처 김경수 경제분석관은 이런 내용을 담은 ‘일본화 지수를 이용한 주요국 장기 저성장 리스크 비교’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생산연령인구 감소, 민간부채비율 급등, 자산가격 하락 등 10개 항목으로 구성된 일본화 지수는 각국의 장기 저성장 리스크를 평가하기 위해 2019년 개발됐다. 이 지수는 각 항목의 기준에 해당할 때 1점을 부여하고, 기준에 해당되지 않으면 0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집계된다. 이 기준에 따라 1998년 일본의 거시경제 상황은 10점이었으며, 지수가 높을수록 일본화 리스크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에서 시민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연합뉴스 |
분석 결과 지난해 기준 주요 30개국 중 일본화 지수는 태국(7점), 중국(7점), 한국(6점), 홍콩(6점) 순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미국(1점), 유로존(1점), 스페인(0점) 등은 일본화 지수가 낮았다.
한국은 민간부채비율 항목 기준도 충족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이 160%를 넘으면 1점이 부여되는데, 한국의 민간부채비율은 2024년 3분기 기준 201.9%에 달했다. 주요국 중 프랑스(214.4%)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보고서는 “코로나19 이후 미국과 유럽 주요국의 민간부채 비율이 하락하면서 장기 저성장 리스크를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중국과 한국은 높은 민간부채수준을 유지하면서 장기 저성장 리스크를 높이는 요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민간부채 비율은 주택가격 폭등과 더불어 2019년 이후 2023년까지 급증했고, 중국(199.5%) 역시 코로나19 이후 경기 침체와 글로벌 경쟁 심화로 민간부채 비율이 크게 상승했다.
주택과 주식 등 자산가격의 하락도 한국 경제의 위기를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자산가격의 하락은 소비 부진을 일으키고, 이는 다시 경기둔화로 이어져 경제를 추가적으로 위축시킨다. 1990년대 일본의 장기 저성장 역시 자산가격 급락에서 시작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1998년 기준 일본의 주택가격은 정점 대비 47.4% 급락했고, 주식가격은 53.6% 줄어든 바 있다.
최근 5년간 주택과 주식가격이 정점 대비 5% 이상 하락하면 기준이 충족된다. 한국의 주택가격지수는 2018~2024년 정점이 128, 지난해 평균은 118로 나타나 등락률은 -7.4%였다. 또 2019~2024년 한국의 주가지수 정점 대비 하락률은 주요국 중 가장 큰 –21.6%로 나타났고, 중국(-17.3%), 미국(-6.6%) 순이었다.
잠재성장률 항목의 경우 기준(최근 10년간 연평균 1% 이하)을 충족하진 않았지만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잠재성장률은 모든 생산 요소를 동원해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치로 한 나라의 기초 체력에 비유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11~2015년 3.46%, 2016~2020년 2.8%, 2021~2025년 2.19%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의 경우 생산연령인구 감소, 높은 민간부채비율, 잠재성장률 하락 등으로 2019년에 비해 2024년의 일본화 지수가 상승했다”면서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여 생산연령인구 감소에 대응하고, 민간부채 비율을 낮추며 생산성을 높여서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등 장기 저성장 리스크가 커지지 않도록 중장기적 대응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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