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022년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위원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사무실에서 과 인터뷰하고 있다. ⓒ News1 류정민 특파원 |
(워싱턴=뉴스1) 류정민 특파원 = "트럼프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일희일비해서는 안 됩니다. 탄핵 정국인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탓하고만 있어서도 안 되고, 실무선부터 차분하게 상호관세에 대비하되,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위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과민반응하기보다는 차분한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 전 본부장은 트럼프 1기(2016~2021년) 때 주미한국대사관에서 상무관으로 근무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 참여했다.
지난 20일 워싱턴DC PIIE에서 <뉴스1> 과 만난 그는 "트럼프가 재선된 이유를 잘 헤아려, 한국의 대응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특히 여 전 본부장은 "상호관세는 한국에만 부과하는 것이 아닌, 미국과 교역하는 국가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만큼, 상대성을 따져보고 기회 요인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여 전 본부장과의 일문일답.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60여일이 지났다. 관세정책 기조를 평가한다면.
▶크게 3가지 갈래로 정리되고 있는 흐름이다. 첫 번째는 오는 4월 2일로 예고한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s)로, 이는 일반 관세 측면이 있다. 두 번째는 지난 12일부터 부과한 철강 및 알루미늄을 비롯해,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등 중요한 산업에 대해 부과하는 업종별·섹터별 관세다. 세 번째는 캐나다·멕시코 관세에서 보듯, 경제적 측면보다는 펜타닐 문제나 불법 이민자와 결부해, 정치적·지정학 목적에 초점을 맞춘 관세가 있다.
▶얼마 전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이 상호관세와 관련해 '더티(dirty) 15'를 얘기했다. 먼저 관세를 부과해야 하는 국가들을 지칭하는 것 같고, 결국 미국 입장에서 무역적자 규모가 큰 나라들은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트럼프 정부가 워낙 예측불가이긴 하지만, 예를 들어 등급별로 A등급 국가는 10%, B등급에 묶인 국가는 25%, C등급 50% 이런 식으로 발표하고 추후 2~3개월 사이 국가별로 협상할 시간을 줄 수 있다. 협상은 상무부보다는 산하 무역대표부(USTR)가 주도할 가능성이 좀 더 높을 거 같다.
―한국은 어떤 협상 전략이 필요한가.
▶한국 입장에서는 상호관세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미국의 입장에서 관심을 끌 만한 협상카드를 준비해 관세를 최대한 낮추거나, 일부 예외를 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국은 정치적으로 탄핵 심판을 앞두고 있다. 탄핵소추안을 기각하면 현 정부의 전열을 재정비해 미국과 협상하면 된다. 탄핵이 인용돼 2개월 뒤 대선을 치르면 인수위 없이 곧바로 새 정부가 출범한다. 새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상호관세 등을 놓고 미국과의 협상에 임할 가능성이 높은데, 새 정부이니 나름의 정치적 동력이 생길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거나 실무 차원에서는 지금부터 협상 준비를 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취임 선서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
―트럼프 1기 때도 한국은 탄핵 정국이었다. 그때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때는 한국이 가장 먼저 타깃이 됐다. 당시 5월 초 대선 후 문재인 대통령이 6월 중순 워싱턴DC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했다. 그때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카메라를 불러들여 그 앞에서 '지금 한국과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하고 있다고 선언했는데, 사전 협의가 없었던 사안이었다. 이후 캐나다, 멕시코 그다음에 중국으로 관세 타깃을 넓혔었다.
그러나 지금은 15개 국가가 될지는 확실하진 않지만, 훨씬 범위가 넓다. 결국은 상대적인 게임이다. 지금은 우리만 관세를 부과받는 것도 아니고, 최소 십여 국가에 관세가 부과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우리만 궁지에 몰린 것처럼 반응할 필요가 없다. 트럼프가 대선 과정에서 관세를 앞세웠고, 관세로 인해 미국이 상대국들에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소위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를 지지하는 일반 국민들에게 어필하는 측면이 있다. 그 때문에 트럼프가 하는 말을 과대 해석하지 말고, 상호관세 부과가 된다고 보고 협상 카드를 준비하는 등의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중국에 대해서는 벌써 20%의 추가 관세가 발효됐다.
▶미국에는 중국이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하고, 딜(deal, 거래)을 만들어야 하는 상대다. 트럼프 2기가 출범하면 중국부터 공격하고 그다음 우방국으로 가는 순서를 많은 이들이 예측했는데, 이도 완전히 틀렸다. 지금은 우방국부터 정리한 뒤, 중국에 화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걸 수도 있다. 분명한 점은 중국에 대해서는 심각한 문제의식을 현 집권 여당인 공화당뿐만 아니라 민주당까지 양당 모두 컨센서스로 갖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트럼프가 중국에 가장 '소프트하다'라는 말도 있다. 현재까지는 1기 때와 비슷하게 주변국이나 우방국을 상대로 '빅토리'(victory, 승리)를 선언한 뒤 중국을 겨냥하는 순서를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관세를 통해 무역수지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게 사실 정당한 행위인지 많은 사람이 의아해 한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얼마 전 언론과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 버번 위스키 등 미국을 대표하는 제품들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한 EU(유럽연합)에 대해 '미국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라며 매우 감정적으로 인터뷰한 바 있다. 미국이 무역적자가 심각해서 이를 해결해 보려는 상황에서 이렇게 맞대응하는 것은 트럼프와 미국 국민, 미국을 무시하는 행위라며 격분한 모습이었는데, 이가 굉장히 중요한 힌트라고 본다. 지금은 '왜 한미 FTA를 무시하느냐' 이런 것을 논할 바는 지났다. 무역적자를 해결하겠다는 트럼프가 과반 지지를 받으며 재집권한 미국의 정치적 현실을 감안하고 이에 대응해야 한다.
―트럼프는 상호관세도 '유연성'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주부터 '리세션'(recession, 경기침체) 가능성이 (언론 등에서) 굉장히 많이 언급되고 있다. 재무장관 출신인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도 며칠 전 리세션 가능성을 50대 50으로 언급했다. 트럼프 관세로 인한 극심한 불확실성이 지금 있다고 봐야 하고, 이로 인해 소비 심리도 약화하고 있고, 기업들도 쉽게 투자 결정을 못하고 있다.
트럼프 경제 정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세금감면이다. 우려되는 점은 트럼프 1기 때는 세금감면, 규제완화가 먼저 진행되고, 경제가 활성화될 분위기가 조성된 후 관세를 부과했다는 것인데, 이번 2기 때는 세금감면과 규제완화는 늦어지고, 관세부터 먼저 부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일론 머스크의 정부효율부(DOGE)에서 연방정부 공무원 대량해고와 재정 축소까지 더해져 리세션 우려를 키우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전 조 바이든 행정부의 과도한 정부 재정 의존으로 커왔던 경제의 '디톡스'(detox, 해독) 과정이라고 하지만, DOGE의 정부 슬림화도 현재 리세션 우려를 높이는 요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19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주최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비치에서 열린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프라이오리티 서밋'에 참석한 뒤 마이애미 공항서 전용기를 타고 있다. 2025.02.20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예측치가 1%대로 어려운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이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상호 윈윈의, 협력의 굉장히 좋은 기회로 본다. 중국과 경쟁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핵심 제조업을 리빌딩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고, 이를 혼자서만 할 수는 없다. 한국이 미국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상대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도 미국의 혁신 기업, 벤처 캐피탈에 반드시 투자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실리콘밸리에 일본 기업들의 투자 문의가 굉장히 많다고 한다. 한국 기업이 조선, 자동차, 철강 이런 제조업에 투자 기회를 보는 것은 좋지만,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벤처 기업에 대한 투자는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분야는 AI(인공지능)다. 4년 후를 생각해 볼 때 AI가 기업 및 국가의 경쟁력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실 한국은 AI에서 굉장히 존재감이 없다. 미국은 업종 불문하고 어떻게든 AI를 비즈니스에 적용해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려고 노력한다. 결국 경제 전체가 AI를 통해 큰 성장동력을 얻을 수 있을 텐데, 한국은 핵심기술 개발과 이를 현장에 응용한 애플리케이션 측면에서도 존재감이 없어 매우 우려스럽다. 미국 유수의 대학들과 협력 프로그램을 늘려 인재를 키우는 노력부터 더 적극 나서야 한다.
-기업들 투자여력도 많지 않은데, 트럼프의 투자 확대 요구에 호응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의 수출 주력 업종을 보면 반도체, 자동차, 정유·화학 등 10년 전이나 수출 업종의 변화가 거의 없다. 10년 후 성장동력을 이번에 발굴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경쟁력이 굉장히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새로운 산업을 발굴해야 한다. 향후 10년, 20년 후를 바라보면서 진짜 고통스러운 개혁과 리셋을 통해 성장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로 인해 지금 이렇게 위기의식이 조성되고 있는데, 우리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개혁과 숙제를 해 탄탄해질 수 있는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모든 국가의 철강과 알루미늄에 부과한 25% 관세가 지난 12일 오전 0시(현지시간, 한국시간 12일 오후 1시)를 기해 발효됐다. 미국은 이번 철강·알루미늄을 시작으로 4월 2일부터는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등 한국의 수출 품목에 대한 25%의 관세에 더해 상대국의 관세율 및 비관세 무역장벽까지 고려한 '상호관세'까지 예고하고 있다. 사진은 12일 오후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모습. 2025.3.12/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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