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 복귀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4일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에서 정계선 재판관은 홀로 한 총리를 파면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한 총리가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것이 위헌·위법하다는 판단은 기각 의견을 낸 재판관들과 같았지만, 이를 파면할 만큼의 잘못이라고 본 점과 ‘내란 특검’ 후보자 추천을 의뢰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본 것은 정 재판관이 유일했다.
그는 한 총리가 ‘여야 합의’를 내세웠으나 실은 “소수여당의 의도나 계획에 부합하는 일방적인 국정운영”을 했고, “수사권 논란으로 인한 혼란과 갈등을 증폭했다”고 비판했다.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박덕흠, 박대출 의원이 앉아 있다. 뉴시스 |
정 재판관이 재판관 중 유일하게 위헌·위법 판단을 내린 부분은 ‘내란 특검’이라 불린 특별검사에 대한 후보자 추천 의뢰를 하지 않은 점이었다. ‘추천 의뢰’는 특검 임명을 위한 첫번째 절차로 대통령 또는 권한대행이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특검이 출범할 수 없다.
정 재판관은 이를 짚으며 “대통령이 특검 후보자 추천 의뢰를 지연한다면 자칫 ‘수사대상 사건 발생 시 곧바로 특검을 임명해 최대한 공정하고 효율적인 수사를 보장하기 위한’ 특검법의 제정이유를 몰각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재판관은 특히 한 총리의 특검 임명 ‘거부’로 혼란이 가중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검 수사요구안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된 주요 사건을 수사대상으로 하여 특검의 수사를 통한 철저한 진상 규명으로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고 공공질서를 회복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당시 논란이 시작됐던 해당 사건의 수사권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고 짚었다.
한 총리 자신도 특검 수사대상에 포함된 것에 대해선 “중립적인 특검에 의한 수사를 방해 또는 지연시키기 위한 목적 또는 의사로 후보자 추천 의뢰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조한창, 정계선 헌법재판관이 올해 1월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헌법재판관 취임식 및 시무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
한 총리가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된 당시 정계선·조한창·마은혁 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을 두고도, 정 재판관은 결국 여당인 국민의힘이 원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끌고 가기 위한 것이라고 강도 높게 지적했다.
정 재판관은 재판관 인선 절차가 진행 중이던 지난해 12월 재판관 3인이 공석이었고, 올해 4월 나머지 6인 재판관 중에서 2인이 추가로 퇴임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 피청구인이 재판관 3인을 임명하지 않으면 헌재가 헌법질서 수호라는 본연의 임무를 계속해 나가지 못하고 무력화되는 결과가 초래됐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이뤄진 상황에서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아 탄핵심판이 진행되지 않았다면 “국정 최고책임자의 공백 상태가 언제 해소될 것인지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고 이로 인한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타격이 걷잡을 수 없이 극대화됐을 것”이라며 한 총리의 헌법과 법률의 위반 정도가 무겁다고 판단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재판관 후보자 3인 중 2인을 임명한 것을 ‘기각’ 의견에서 한 총리에게 유리한 사유로 삼은 것을 두고는 “최 부총리가 한 행위를 피청구인의 위반 행위의 중대성 내지 국민의 신임을 배반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유리한 사유로 삼을 수는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 부총리가 여전히 마은혁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것도 “피청구인의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일갈했다.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 연합뉴스 |
한 총리가 ‘여야 합의’를 내세워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것이 “여소야대의 정치상황에서 소수의 절차적 보호를 통한 실질적 대의제 실현을 강조하는 듯한 발언”이지만 실상은 여당을 위한 국정운영에 불과하다고도 꼬집었다. 대통령이 탄핵심판을 받게 되자 한 총리가 “사건 진행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하고자 하는 여당의 의사를 고려”해 재판관 공석으로 심리조차 하지 못하는 “헌재의 내부적 상황을 이용”했다고 본 것이다.
그 근거로 한 총리가 비상계엄 선포 이후 △‘공동 국정운영’ 담화를 발표한 것 △특검 후보자 추천 의뢰를 하지 않은 것 △야당 단독처리 법안에 모두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한 것 등이 모두 여당의 요구와 일치했던 점을 들었다.
그러면서 “이는 결국 피청구인이 형식적 명분으로 내세우는 ‘여야의 합의’나 ‘실질적 대의제 실현’이 아닌 소수여당의 의도나 계획에 부합하는 일방적인 국정운영”이라고 했다. 한 총리가 재판관 임명을 거부하고 국회 법률안은 거부한 것도 “모순적 국정운영”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정 재판관은 이런 점을 종합했을 때 “헌법·법률 위반 행위로 인해 논란을 증폭시키고 혼란을 가중시켰으며 헌재가 담당하는 정상적인 역할과 기능마저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만드는 헌법적 위기상황을 초래하는 등 그 위반의 정도가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하다”고 밝혔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