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경북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 한 야산 아래 민가에서 강풍을 타고 산불이 번지자 현장에 출동한 경상북도 119산불특수대응단이 진화하고 있다. 뉴스1 |
2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번 산불이 북한 간첩의 소행이라는 글이 무분별하게 퍼지고 있다.
누리꾼 A씨는 “산불이 이렇게 빠른 시간 동안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적이 있었나”라며 “지금 누가 작정하고 전국에 불 지르는 중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B씨도 “지금 정치적으로 혼란한 상황에 북한이 지령을 내려 전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난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다른 누리꾼들도 북한 간첩뿐만 아니라 중국인, 민주노총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이번 산불의 배후라고 앞다퉈 주장했다.
이에 대통령실은 언론공지를 통해 “명백한 허위 주장”이라며 “(해당 유튜버 등에) 책임을 묻고 법적 조치 검토 등 강력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의심에는 산불가해자가 검거되지 않은 사례가 많다는 사실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산불가해자 검거율은 33.3%로 3명 중 1명은 잡히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전국에서 비슷한 시기에 동시다발적으로 화재가 발생한 것도 음모론에 힘을 더하고 있다. 다만 이번 산청, 의성, 울주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의 원인이 각각 예초기, 묘지 정리, 용접 작업 등 입산자의 실화로 이미 밝혀진 만큼 음모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경북 의성군 대형 산불 발생 사흘째인 24일 산불 현장에 인접한 의성군 옥산면 입암리 한 마을 강변에 불씨가 옮겨붙어 불이 나고 있다. 연합뉴스 |
봄철 산불이 새로운 현상도 아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10년간 발생한 피해면적 100ha 이상의 대형 산불은 32건 중 27건(85%)이 3∼5월에 발생했다.
산림당국도 근거 없는 유언비어라고 일축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방화를 했다면 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사안”이라면서도 “이번 산불은 대부분 실화로 밝혀졌다. 특정한 목적에 의한 소행으로 볼 만한 근거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문현철 전 한국산불학회장(호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이번 산불을 두고 “정보당국에선 당연히 점검을 해봐야 한다”면서도 “테러, 방화 가능성은 작다”고 단언했다.
한국테러학회 감사를 맡고 있는 문 전 회장은 “이 시기 건조하고 강풍이 많이 부는 기후는 전국 어디에서나 나타난다”면서 “이 시기엔 평소에는 문제가 안 될 만한 사소한 행동이 어마어마한 참사로 이어지게 된다”며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이어 “이번 산불은 과거 산불 발생 사례와 비슷하고, 산불야기자도 대부분 밝혀졌다”며 “(음모론 같은) 상상을 할 시간에 왜 사람들이 산불 위험시기에 위험한 행동을 계속하는지, 행정기관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되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처럼 대형 국난이 발생할 때마다 음모론은 기승을 부린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에선 반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음모론이 더 활개를 치는 경향을 보인다.
2022년 이태원 참사 당시 극우 진영에서 북한 개입설을 주장해 논란이 된 바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침몰 원인을 놓고 보수와 진보진영에서 현재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다양한 음모론을 생성했다. 최근에는 지난 1월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가 가짜라고 주장하며 영상을 올린 유튜버가 구속기소 된 사례도 있다.
임명호 단국대 교수(심리학)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혼란할수록 개인이 평소에 적대감을 갖고 있던 세력에게 책임을 지우는 투사 심리가 강하게 나타난다”며 “여기에 유튜브나 SNS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음모론이 더 파급력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구윤모 기자 iamky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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