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기와 미국 성조기 ⓒ 로이터=뉴스1 ⓒ News1 이지예 객원기자 |
(런던=뉴스1) 이지예 객원기자 = 유럽이 깨어났다. 자체 국방력 강화를 통해 5년 뒤인 2030년까지 서둘러 다시 갑옷을 갖춰 입는다. 냉전 이후 안보를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며 '평화 배당금'(군비 지출 축소에 따른 경제적 이익 창출)에 안주한 유럽에 엄청난 각성이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 세월을 의지한 미국을 끊어내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재무장을 둘러싼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사이 계산법도 제각각이다. 러시아를 자극해 더욱 살벌한 군비 경쟁을 촉발할 위험도 도사린다.
"앞으로 5년이 관건" 미국도 러시아도 위험하다
유럽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동맹 이탈 조짐을 보이는 미국이 서구권 집단안보 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를 실제로 탈퇴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트럼프 대통령의 친러시아 행보는 이런 우려를 더욱 키웠다.
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중심부의 랭커스터 하우스에서 열린 긴급회의에 모인 정상들이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 프랑스, 독일 및 북유럽 국가들은 향후 5~10년에 걸쳐 나토에서 미국이 맡고 있는 책임을 넘겨받는 방안을 비공식적이지만 꽤 체계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나토를 탈퇴할 경우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러시아발 위험도 실재한다. 덴마크 국방정보국(DDIS)은 지난 2월 보고서에서 러시아가 나토의 군사적 약화나 정치적 분열을 감지하고 미국의 비개입을 예상할 경우 5년 안에 유럽에서 '대규모 전쟁'을 벌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EU 외교 사령탑인 카야 칼라스 외교·안보 고위 대표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냉전이 아니라 열전(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유럽 영토에서 이미 치르고 있다. 위협이 실존하며 이보다 현실적일 수 없다"고 말했다.
80년 안보 의존한 미국, 단숨에 끊어낼 수 있을까
마음은 바쁘지만 지난 80년 안보를 의존한 미국으로부터 단기간에 홀로서기는 어려운 과제다. 미국은 그동안 전력과 예산 등 나토의 모든 측면에서 대체 불가한 역할을 해 왔다.
미국의 방위비는 8600억 달러 상당으로 나머지 나토 회원국의 국방비 총액보다 2배가량 많다. 게다가 EU 회원국 대부분은 여전히 나토가 제시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2% 방위비 지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 도착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 회담 중 서로를 외면하고 있다. 2025.03.01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
이코노미스트는 "철의 장막이 무너진 이래 유럽에 가장 암울한 시간"이라며 "낡은 세계는 무법의 시대에 하드 파워를 휘두르는 방법에 대해 '집중 강습'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신세계의 무질서에 희생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의 재무장이 성공한다면 대미 군사 의존도가 획기적으로 줄면서 전후 시대 미국이 이끌어 온 대서양 관계가 새롭게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실패 시에는 유럽의 독자적 방위 역량에 대한 미국의 의구심만 키워 동맹 균열과 안보 불안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
재무장 뜻은 모았지만 EU 회원국들 계산법 제각각
EU 회원국들 사이 재무장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EU 집행위원회와 프랑스, 독일 등 주요국들 주도 아래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대륙 전체의 경기 둔화 속에 회원국마다 계산법이 다르고 유럽 동쪽과 서쪽의 입장도 상이하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EU 집행위가 당초 내건 '유럽 재무장'(Europe ReArm)이라는 구호가 '군국주의적'이라며 반기를 들었고, 집행위는 결국 명칭을 '대비 태세 2030'으로 바꿨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자국민들은 러시아군이 머지않아 유럽 남서부에 위치한 피레네산맥을 넘을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며 EU가 소프트 파워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산업·기업인 연맹 회의에 참석해 “러시아를 떠난 일부 기업의 복귀에 대한 특혜나 선호는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2025.03.19 ⓒ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을 놓고도 러시아의 위협이 즉각적이라고 느끼지 않는 일부 서유럽 국가들은 직접적 개입보다 장기적 관점의 방위력 향상을 선호한다. 러시아와 인접한 동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공격 시 가장 취약한 만큼 EU 재무장을 환영하지만 비용 기여가 얼마나 가능할진 미지수다.
EU 전반적으로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경기 혼란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서 완전히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방위 부문에 막대한 재정 투입은 경제 회복과 사회복지 관련 기금을 지키려는 회원국들로부터 저항을 야기할 수 있다고 독일 매체 블리츠는 분석했다.
러시아는 이미 반발 "유럽 군사화 두고 보지 않겠다"
러시아는 EU의 재무장이 자국을 겨냥한다고 보고 반발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대통령궁) 대변인은 "유럽이 군사화의 길로 접어들었고 일종의 전쟁 파티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유럽의 재무장은 의도대로 러시아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러시아의 군사화를 더욱 촉진할 수도 있다. 이에 따른 군비 경쟁과 역내 추가적인 긴장 고조 가능성도 변수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EU가 경제 동맹에서 군사 동맹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며 유럽의 국방 강화는 러시아에 잠재적 위협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러시아 역시 대응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z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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