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부 장관 지난달 방미 전 결정… 방미 선물 논란
미국 11개 주 감자 수입도 진행… 통과 시 농가 피해
사과 등도 수입 요구 커질 듯... "전면 봉쇄는 어려워"
지난 17일 인천 남동구의 한 농장에서 작업자들이 밭에 씨감자를 심고 있다. 뉴시스 |
정부가 미국산 유전자 변형 생물체(LMO) 감자에 대해 지난달 '수입 적합' 판정을 내린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판정 시기가 공교롭게도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미국 방문 직전이어서 ‘방미 선물’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LMO 감자 외에도 미국 11개 주에서 생산한 일반 감자의 추가 수입도 검토 중인데, 일각에서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압력에 다른 미국산 농축산물까지 확대 개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농촌진흥청은 지난달 21일 미국의 감자 생산업체 심플로트가 개발한 ‘SPS-Y9’ 품종에 대한 환경 위해성 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내렸다고 24일 밝혔다. 심플로트가 2018년 수입 허가를 신청한 지 7년 만이다. 환경 위해성 검사는 수입 농산물이 국내 환경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평가하는 절차로 △유전자 이동성 △잡초화 가능성 △주변 생물체에 미치는 영향 등을 검토한다. 농촌진흥청이 적합 판정 결과서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보낸 시점은 지난달 17일로, 같은 달 26~28일 안 장관의 방미 일정에 맞춰 '미국에 선물을 준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농민단체 등은 즉각 반발했다. 'GMO반대전국행동' '농민의 길' '전국먹거리연대' 등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달 산업부 장관이 미국 상무부 장관을 만나 상호관세 면제를 비롯한 통상 현안을 협의한 것과 때를 같이해 국내에선 답보 상태였던 미국산 유전자변형 감자의 수입승인 절차가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국민을 위한 건강한 식탁을 보장하고 농민들이 지속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라"며 수입 심사 절차 중단을 촉구했다.
그래픽 = 김대훈 기자 |
문제는 정부가 미국 11개 주 감자에 대한 수입 허용 절차도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2019년 미국이 미국산 감자 수입 허용을 요청한 데 따른 것으로, 국내 검역 절차를 모두 통과하면 대량 유입이 불가피하다. 현재 검열 절차 총 8단계 중 6단계(수입요건 확정·협의)가 진행 중인데, 모두 통과해 국내 수입이 허용되면 미국에서 감자를 생산하는 지역 가운데 약 90% 이상이 한국 수입 가능 범위에 들어온다. 미국산 감자는 현재 22개 주에서 수입되는데, 수입 규모가 더 확대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연간 감자 생산량은 2023년 기준 1,905만 톤으로 한국과 비교하면 국내 감자 농가가 35년간 생산할 양과 맞먹는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송옥주(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통상압력으로 인한 미국 GMO 감자 수입 승인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
일각에서는 감자를 필두로 미국 정부가 상호관세를 앞세워 다른 농축산물 시장 개방 압력도 높일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감자 외에도 현재 수입을 검토 중인 미국산 사과, 배, 복숭아, 블루베리, 라즈베리 등 15개 품목을 비롯해 쇠고기 등까지 수입 확대를 요구할 것이라는 것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비관세 장벽을 이유로 한국 농산물 수입 절차 간소화 및 속도 개선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며 "30개월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허용 등 농산물 전반에 대한 압박이 커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권 초기 단계에서 미국의 압력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거나 봉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미국산 농산물을 정부가 일정 부분 구매하고 국내 농가 피해는 무역조정 지원제도를 통해 보상하는 방향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세종= 이성원 기자 support@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