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에서 시작된 산불이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경계 지점까지 번져 불타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제공] |
[헤럴드경제=안효정·이용경 기자] 봄철이면 찾아오는 대형산불이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됐다. 이번 산불은 동해안을 중심으로 건조한 날씨가 극에 달하면서 영남지역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로 낮아진 실효습도가 화재의 규모와 빈도를 키운다고 지적했다.
24일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지난 21일부터 경남 산청, 경북 의성, 울산 울주, 경남 김해, 충북 옥천 등 5개 지역에서 연이은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전국에서 발생한 이번 산불로 산림 피해 규모는 8732ha(헥타르)에 이르렀다. 당국은 산청 산불에 대해 풀베기 작업 중 불씨가 튀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의성 산불에 대해서는 성묘객이 묘지 정리를 하던 중 실수로 불을 낸 것으로 보고 있다. 울주와 김해 산불 역시 인재로 추정된다.
지난 10년간 산불 발생 현황 [산림청 제공] |
헤럴드경제가 찾은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5∼2024년) 연평균 산불 발생 건수는 546건으로 나타났다. 이중 봄철(3∼5월)에 발생한 산불은 303건으로, 절반 이상(56%)을 차지했다. 산불 발생 면적도 2000년대 3726ha, 2010년대 857ha에서 2020~2024년 6721ha를 기록하는 등 계속 확대되는 추세다.
산불 ‘왜’ 번졌나?…강풍·건조한 대기·비화 현상
경북 의성군 대형 산불 발생 이틀째인 23일 의성군 산불 현장에서 산불이 확산하고 있다. [연합] |
영남지역을 강타한 대형산불은 봄철 강한 바람과 건조한 날씨, 적은 강수량 등의 기상 악조건이 겹친 데 따른 것으로 파악됐다.
우선, 이번 산불은 ①‘푄 현상’으로 빠르게 확산했다. 푄 현상은 산을 타고 넘어간 공기가 그 전보다 온도가 올라 산 아래 지역에 고온 건조한 바람을 불어넣는 것으로, 봄철 강원 양양과 간성(고성) 또는 강릉 사이에선 ‘양간(강)지풍’이라고도 불린다. 실제 양간지풍은 2023년 4월 강릉 산불 등 봄철 동해안에서 대형 산불이 반복되는 이유로 꼽힌다. 앞서 성묘객의 실화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북 의성 산불도 야산 정상부터 초속 5.6m의 강풍을 타고 동쪽으로 번졌다.
예년보다 영남지역에 ②비가 덜 내린 점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올해 들어 이달 22일까지 전국 누적 강수량은 77.6㎜로 평년(104.5㎜)의 76.1% 수준에 그쳤다. 산불이 일어난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은 강수량이 예년 대비 67.4%(61.3㎜)와 54.2%(73.5㎜)에 불과했다.
③‘비화(飛火) 현상’이 산불 확산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화는 마치 도깨비불처럼 불똥이 바람을 타고 수십~수백m까지 날아가 새로운 산불을 만드는 현상으로, 산불 진화에 가장 큰 장애물로 여겨진다. 국립산림과학원 실험 결과 산불이 났을 때 바람이 불면 확산 속도가 26배 이상 빨라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산불 발생 당시 영남 내륙 곳곳에는 순간최대풍속 10m/s 안팎의 강한 바람이 불었다.
고온·건조 봄…지구온난화로 산불위험 ‘적신호’
경북 의성군 대형 산불 발생 이틀째인 지난 23일 의성군 안평면 신안리 운람사가 산불에 불타 폐허로 변해 있다. [연합] |
문제는 산불이 더 확산할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이날 강풍이 예고된 데다 당분간 비 예보도 없어 동해안 일대의 건조도가 최고조에 이를 전망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부터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순간 풍속 시속 55km 내외의 바람이 부는 가운데, 일부 산지에서는 시속 70km가 넘는 강풍이 예상된다.
오는 27일에는 비가 내려 동해안의 건조도가 현재보다 나아질 수 있으나, 만약 강수량이 한반도 서쪽 지역에 집중될 경우 동해안 지역은 또다시 건조해질 수 있다.
이 같은 봄철 산불 위험은 지구 온난화와 맞물려 앞으로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온도가 1.5도 증가할 때 산불 기상지수는 8.6% 높아지고, 2도 올라가면 13.5% 상승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도 지난해 5월 발간한 ‘대형산불의 증가, 진단과 과제’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가 작은 불씨를 대형산불로 확대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며 “기후변화는 초목을 건조하게 해 불이 붙을 수 있는 요건과 대형화로 확대할 환경을 조성한다”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봄철 기온이 가파르게 오르는 반면, 강수일수는 줄고 있어 점차 산불이 나기 쉬운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다. 기상청과 국립기상과학원이 낸 ‘우리나라 109년 기후변화 분석 보고서’는 109년간 봄 기온이 평균 0.26도 올라 사계절 중 가장 큰 변화를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또 강수일수는 모든 계절이 줄었으나 최근 10년 봄과 여름의 감소 폭이 컸다고 봤다. 산림과학원 역시 지난 2월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서 2100년 한국의 산불 위험은 100년 전인 20세기(1971∼2000년) 후반보다 최대 158%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높은 기온과 낮은 습도로 산불 발생 빈도나 규모가 더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경자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는 24일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이번에 산불이 난 곳들은 대체로 실효습도가 낮고 강수가 적었던 지역들로 보인다”며 “토양이 메마른 상태에서는 불티가 튀어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 쉬운데, 이번 산불은 특히나 광범위하게 발생했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매년 온도가 올라가면서 실효습도가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며 “이 때문에 산불이 광범위해지는 경향이 계속 높아지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도 “봄철이 되면 가뭄이 들고, 기온이 올라가면 토양에서 수분이 증발하기 때문에 낙엽이라든가 나무가 바싹 마르게 돼 불만 한 번 붙었다고 하면 예전보다 산불이 세게 번진다”며 “기후변화는 비가 내릴 때 훨씬 많은 비가 내리고, 가뭄이 들 때 훨씬 더 가물어지는 극단의 날씨를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산불 대응 어떻게? 바람 등지고 불보다 아래로
경북 의성군 대형 산불 발생 이틀째인 지난 23일 의성군 산불 현장 인근 마을에서 주민들이 대피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 |
산림청의 ‘산불방지 국민 행동 요령’에 따르면 산불을 발견하면 119 또는 산림관서 및 경찰서로 신고하는 등 빠르게 초동대처에 나서야 한다. 초기 작은 산불의 경우 외투를 사용해 덮거나 두드려서 진화하고, 진화가 어려울 시 바람이 부는 반대 방향으로 피해야 한다.
연기 등을 마실 수 있으므로 불이 난 산보다 높은 곳으로 가면 안 된다. 산과 떨어진 도로를 이용해 지정된 대피소나 산불 발생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논이나 밭, 마을회관, 학교 등으로 대피하는 것이 좋다.
이때는 마스크나 젖은 수건으로 입을 가려 뜨거운 연기를 마시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피할 만한 시간이 부족하다면 낙엽, 나뭇가지 등 연료가 적은 곳을 골라 연소 물질을 긁어낸 후 얼굴 등을 가리고 불길이 지나갈 때까지 엎드려 있는 게 바람직하다.
어린이와 함께 대피할 경우 어린이의 손을 잡은 뒤, 필요한 행동 요령을 말해줘 함께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축을 키우고 있는 경우 충분한 물과 먹이를 준비하고, 가축들도 대피할 수 있도록 축사의 문을 열어둬야 한다.
산불이 주택가로 번질 위험이 있을 경우에는 불이 쉽게 옮겨붙지 않도록 집 주변에 물을 뿌려야 한다. 가스나 장작 등 불이 잘 붙는 물질은 미리 치우고, 모든 문과 창문을 닫고 가스를 차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