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동맹 경시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통한 집단방위의 미래가 불확실해지고 이에 따른 반작용으로 재무장에 나선 유럽이 '바이 유러피안'(Buy European·유럽산 구매)'을 선언하면서 유럽 방위산업체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스웨덴 국방용 인공지능(AI) 기업 아비오니크(Avioniq)의 미카엘 그레브 CEO는 최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대한 불신이 "분명한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공급기반을 더 다변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미국과 신규 계약을 체결할 국가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결정적 계기는 지난달 28일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백악관 정상회담이 파국으로 끝난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지원을 돌연 중단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새 무기의 전달은 물론, 기존에 받은 무기를 계속 운용하기 위한 유지·보수조차 차단되자 우크라이나는 불과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습니다.
이에 미국은 지난 12일 군사원조를 재개했지만 이 사건은 유럽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유럽 국가들도 F-16 전투기와 F-35 전투기, 패트리엇 대공미사일, 조기경보기 등 첨단 군사장비에서 미국 의존도가 절대적인 경우가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유럽에 수출된 미국제 F-35 전투기에 미국 측이 원격으로 비행기 작동을 멈출 수 있는 '킬스위치'가 숨겨져 있다는 의혹이 재차 고개를 든 것도 이런 우려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제조사인 미국 록히드마틴과 유럽 내 F-35 운용국들은 킬스위치의 존재를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능이 없어도 미국 측이 스텔스 도료 코팅과 엔진 등과 관련한 핵심 부품 및 소프트웨어 지원을 중단하면 곧장 성능이 저하되기 시작하다가 조만간 운용이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그런 배경에서 유럽 기업들은 방산시장 점유율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유럽 8위 방산업체인 스웨덴 사브(Saab)는 북유럽 4개국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공중감시 체계 사업에 자사의 공중조기경보통제기 기종 '글로벌아이'(Global Eye)를 주력 기종으로 밀고 있습니다.
미카엘 요한손 CEO를 비롯한 사브 관계자들은 덴마크와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이 "매우 큰 관심을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나토는 지금껏 기술적으로 떨어지는 미국 보잉의 E-7 웨지테일을 써왔으나, 앞으로는 글로벌아이도 함께 사용될 것으로 믿는다고 사브 측은 밝혔습니다.
글로벌아이는 반경 650㎞ 이내의 공중표적과 450㎞ 이내의 지상 표적을 추적할 수 있고, 드론(무인기)도 크기에 따라 100∼600㎞ 바깥에서 포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4.5세대 전투기로 분류되는 JAS 39 그리펜을 생산하는 사브는 유럽 각국이 F-35 의존도를 줄일 태세를 보이면서 잠재적인 차세대 전투기 개발사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독자적으로 전투기를 개발·생산할 역량을 갖춘 유럽 국가가 현재로선 스웨덴과 프랑스 2개국뿐입니다.
이런 기대가 반영되면서 사브의 주가는 지난 한 달 사이 70% 이상 급등했다고 FT는 전했습니다.
프랑스는 이미 차세대 라팔 전투기 증산을 결정했습니다.
싱크탱크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0∼2024년간 유럽 내 나토 회원국들이 수입한 무기의 64%가 미국제로 집계됐습니다.
이어 프랑스와 한국이 각각 6.5%, 독일 4.7%, 이스라엘이 3.9% 순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은 이달 초 8천억 유로(약 1천270조 원)의 자금이 동원되는 '유럽 재무장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 중 상당 부분에 '바이 유러피안' 정책이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U 예산을 담보로 회원국들에 지원되는 1천500억 유로(약 238조 원) 상당의 대출금의 경우 유럽산 무기 공동구매에만 지원하겠다고 예고한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포르투갈 국방부는 최근 미국제 F-35 전투기 구매를 보류할 것이란 입장을 보였습니다.
캐나다도 190억 캐나다 달러 (약 19조 4천억 원)를 들여 F-35 88대를 도입한다는 계약을 재검토 중인 상황입니다.
(사진=AP, 연합뉴스)
김경희 기자 ky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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