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장제스 증손 ‘中 정착’ 외쳤다… 중국의 회색지대 전술 뭐길래

0
댓글0
조선일보

대만 초대 총통 장제스의 증손 장유칭이 중국 소셜미디어 더우인에서 활동하는 모습. 지난 19일 중국 본토에 뿌리 내리겠다고 선언했고(왼쪽), 작년 9월에는 장제스의 고향을 방문하고(가운데) 같은 해 12월에는 중국 의류 브랜드의 홍보 모델을 맡았다./더우인


양안(중국과 대만) 간 긴장이 날로 고조되는 상황에서 장제스(蔣介石·1887~1975) 대만 초대 총통의 후손이 돌연 중국 본토 정착을 선언해 파장이 일고 있다.

장제스의 증손자인 장유칭(35)이 지난 19일 자신의 더우인(중국판 틱톡) 계정에서 “저장성 항저우에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장유칭의 할아버지는 장징궈 전 총통, 아버지는 장샤오융 전 국민당 중앙위원이다.

조선일보

그래픽=이철원


그는 “오랫동안 방황했지만 이제 정착할 때가 됐다”며 “항저우는 나에게 따뜻함과 치유를 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0일 더우인 계정 운영을 시작한 이후 한 달 만에 9만명의 팔로어를 모았고, 항저우 정착 발표 이후에는 중국에서 ‘장씨 집안의 제4대 적통으로 불리며 애국 열사 대접을 받고 있다.

대만에서는 장유칭의 중국 정착을 중국이 대만을 겨냥해 깊숙하게 개입한 ‘통일 전선 공작(통전·統戰)’으로 본다. 대만 자유시보는 “그가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본토 유명 관광지를 두루 돌아다녔고, 저장성의 장제스 가문 고택도 방문했다”면서 그가 선전 공작에 이용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역대 대만 총통 중 반중국·대만 독립 성향이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라이칭더 총통의 집권 1주년(5월)을 앞두고 대만을 겨냥한 중국의 공세가 보다 다차원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압도적 군사 우위를 앞세운 무력 시위뿐 아니라 대만인의 대적관과 경계 태세를 누그러뜨리려는 은밀한 공작인 통전도 병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뒤 미·중 간 관세·기술 전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국력 소모를 최소화하는 측면에서도 중국이 최근 통전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만의 기틀을 다진 지도자로 평가받는 장제스 혈통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장유칭은 중국 입장에서 통전을 벌이기 적합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작년 9월 더우인에 “(대만은) 중국이 무섭다고 호들갑 떨지 말라” “라이칭더는 대만의 총통이 아니라 성장일 뿐”이라고 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중국 의류 브랜드 ‘룽창샹’ 광고 모델을 맡는 등 친중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할아버지 장징궈 전 총통이 미국으로부터 단교당한 직후인 1980년 중국의 선전 공작에 맞선 반(反)통전 작전을 군부에 지시했는데, 45년 뒤 그의 손자는 반대 행보를 선택한 셈이다.

이달 초에도 대만이 ‘중국의 통전’이라고 규정한 상황이 있었다. 지난 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왕이 외교부장이 양안 정책과 관련해서 “유엔에서 대만을 지칭하는 유일한 명칭은 ‘중국 대만성’”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일부’라는 기존 입장을 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가수나 배우로 중화권에서 인기가 많은 천옌시·자오유팅·왕둥청·천즈펑 등 대만 연예인들이 이 발언 내용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지지를 표했다. 중국 업무를 담당하는 대만 정부 기관 대륙위원회는 규탄 성명을 내고 “대만의 일부 예술인들이 조국을 지워버리려는 중국의 통일전선전술 장기판의 말이 되고자 했다”며 “이들의 위법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대만 정부는 젊고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스타들이 잇따라 현 정부의 대중국 강경 노선을 비판하고 중국에 대해 친근함을 표현하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을 중국의 군사적 위협 못지않게 경계하고 있다.

이와 관련 라이칭더는 지난 13일 중국의 통전에 대한 대응을 골자로 안보회의를 주재하고 “중국은 명백한 해외 적대 세력”이라고 말했다. 대만은 2013년에 폐지했던 군사 재판을 12년 만에 부활하고, 홍콩·마카오 주민의 대만 거주증 발급 절차도 더욱 까다롭게 하기로 했다. 최근 중국에 포섭된 현역 군인과 대만인과 결혼한 배우자 등이 잇따라 간첩 행위로 적발되는 데 따른 조치다.

대만 내정부 산하 이민서(출입국관리소)는 지난 11일 대만인과 결혼해 수년째 대만에서 살던 중국 여성 인플루언서 류전야를 추방했다. 그는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잇따라 올려 대만인들의 심리를 교란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만 정보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간첩 혐의로 기소된 자국민은 64명으로 3년 전보다 세 배가 늘었다. 특히 피고인 상당수는 전현직 정부 관리와 군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정부의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여권 내에서는 ‘친중 분자 색출’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강경한 반중 기조가 뚜렷해지고 있다. 올해 들어 여당 민진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중국에 우호적인 야당 국민당 소속 입법위원(국회의원 격)들을 파면시키자는 운동인 ‘대파면’이 진행되고 있고, 소셜미디어에서는 친중 인플루언서 리스트가 돌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대만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는 중국의 공세는 이어지는 양상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일 사업·취업·여행 등 이유로 중국을 왕래하는 대만 주민에게 비상용 임시통행증을 발급하겠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 정부가 중국 방문 대만인들의 거주증, 은행 계좌, 전화번호 신청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본토를 찾는 대만인들을 ‘같은 중국 동포’로 환대하면서 현 대만 정부와 갈라치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중국이 궁극적으로 대만의 완전한 병합을 목표로 하는 기조만큼은 흔들림 없는 모습이다. 중국의 양안 관계 전문가 왕허팅 쑤저우대 교수는 사회과학원 대만연구소의 학술지 ‘대만연구’ 최근호에서 “평화 통일을 위한 최대의 노력을 하되, 비평화 방식의 선택지도 유지해야 한다”면서 “내전으로 인한 전시에는 중국 정부가 대만에 직접 통치 체제를 수립해야 한다”고 했다.

-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뉴스레터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39

국제퀴즈 풀고 선물도 받으세요!https://www.chosun.com/members-event/?mec=n_quiz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주요뉴스

해당 언론사로 연결

이 기사를 본 사람들이 선택한 뉴스

  • 조선일보중국 코 앞에 ‘지상 발사 중거리 미사일’… 트럼프의 ‘협상 칩’ 될까
  • 파이낸셜뉴스"미국의 최대 위협은 중국… 북한, 7차 핵실험 준비돼있다"
  • 이데일리중국 외교부, 한국 산불 피해 희생자들 향한 애도 표해
  • 동아일보여직원 물병에 몰래 소변 본 美청소부…13명에 성병 옮겨
  • SBS젤렌스키 "미, 대규모 광물 협정 새 제안…원전 개입은 포함 안 돼"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