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 공항에 에어포스원을 타고 도착하고 있다. 그의 손에는 '마가' 모자가 들려 있다. AP=연합뉴스 |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다음 달 2일 발효할 관세의 범위를 좁히고 있다”며 “자동차와 반도체 등 산업 부문별 관세는 해당일에 발표되지 않겠지만, 주요 무역 파트너에 대한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산업 부문별 관세 발표에 앞서 대미 무역 흑자 규모가 큰 국가들을 타깃으로 한 고율의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WSJ는 상호관세 부과 대상은 소위 ‘더티 15(Dirty 15)’로 명명된 국가들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함께 관세 인상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WSJ 역시 이날 관세 부과 대상 리스트에 주요 20개국(G20), 유럽연합(EU), 호주, 브라질, 캐나다, 중국, 인도, 일본, 멕시코, 러시아, 베트남 등과 함께 한국이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에 부과될 관세는 지난 수십 년간 보지 못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 미국의 무역 적자 8위국에 올라 있다.
관세 부과는 발표와 동시에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긴급 경제 권한을 사용해 관세를 발표와 동시에 발효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관세의 예외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WSJ에 따르면 백악관과 부문별 관세에 대해 논의했던 업계 관계자들은 예외 조항에 대한 작은 정보도 얻기도 어려웠다며 비관적 예측을 내놨다고 한다.
미국 무역적자액 상위 10개국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 상무부] |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많은 사람이 예외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고 있지만, 한 명에게 해주면 모두에게 해줘야 한다”며 예외를 최소화할 뜻을 밝힌 상태다. 그는 이날도 소셜미디어에 “4월 2일은 미국 해방의 날”이라는 글을 올리며 관세 조치를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이와 관련, 정부 소식통은 “미국 정부와 관련 사안에 대해 면밀히 논의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한국이 상호관세 타깃 국가에 포함될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변을 얻지 못하고 있다”며 “미국이 계량화하기 어려운 비관세 장벽을 문제 삼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리더십 공백이 길어지면서 대응에 어려움이 가중된 상태”라고 전했다.
실제 미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하와이를 거쳐 일본, 태국, 인도, 프랑스 등 4개국을 방문하면서 한국을 방문하지 않은 사실이 이날 NHK 보도를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역시 이번 주 하와이, 필리핀, 일본을 방문하면서 한국 방문 일정을 제외해 ‘한국 패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4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대국민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이 때문에 이날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으로 직무에 복귀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현실로 닥쳐온 통상 전쟁에서 우리나라의 국익을 확보하는 데 모든 지혜와 역량을 쏟아붓겠다”며 리더십 공백 속에 진행되는 통상 문제를 시급한 현안으로 꼽았다.
정부 관계자는 “한 총리의 복귀로 그동안의 ‘대행의 대행’ 체제에 비해 대표성을 회복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초반 경제가 아닌 정치 논리로 통상 문제를 다루고 있다”며 “이미 정상간 대화를 진행한 일본과 캐나다 등 미국의 동맹국들도 통상에선 실질적 이득을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 총리의 복귀만으로 한국에 대한 예외 인정 등으로 당장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NCAA 레슬링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와이어트 헨드릭슨과 포옹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한편 백악관은 이날 JD 밴스 부통령의 배우자인 우샤 밴스 여사가 미 대표단과 함께 오는 27일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방문한다고 밝혔다. 대표단에는 마이클 월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의 미국 편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세컨드 레이디’를 앞세워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린란드는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무테 에게데 그린란드 총리는 이날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린란드에 국가안보보좌관이 오는 유일한 목적은 힘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도 “이번 방문은 (트럼프의) 공식적인 발언과 분리할 수 없다”며 “우리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지난 22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에서 열린 집회에서 한 캐나다 시민이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를 미국의 주로 편입한다는 주장에 반대하며 시위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 편입에 대한 욕심을 반복적으로 드러내왔다. 그는 지난 4일 의회 연설에서 그린란드 주민을 향해 “부유하고 안전하게 해주겠다”고 말했고, 지난 13일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을 만나서는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해 그린란드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나토가 어떤 식으로든 관여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