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출토된 의례용 추정 유물 일괄. 1번은 옻칠 두형 그릇, 2~4번은 옻칠 두형 그릇 배신 및 대각, 5번과 8~9번은 칠 뚜껑, 6번은 항아리 모양 목제춤, 7번은 새 모양 목제품, 10번은 점뼈(복골), 11번은 소형 토제품(모형 토기). [국가유산청]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최고급 옻칠 그릇이 금관가야 왕궁터로 추정되는 경상남도 김해 봉황동 유적 일대에서 무더기로 나왔다. 국가유산청은 지난해 진행된 김해 봉황동 유적 10차 발굴 조사 결과, 목이 긴 형태의 옻칠 굽다리 그릇 15점이 발견됐다고 24일 밝혔다.
이번에 출토한 유물들은 큰 마을 터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구상유구(溝狀遺構·배수로나 도랑으로 사용됐던 흔적)와 함께 땅속 깊이 약 0.7m의 유기물층에서 확인됐다. 조사 구간은 약 109㎡(33평)의 비교적 좁은 공간인데, 1~4세기 제작·사용된 최고급 옻칠 목기를 포함해 다채로운 목제품 300여 점이 집중적으로 발굴된 것.
김해 봉황동 유적 원경. 빨간색 선으로 표시된 영역이 유물 출토 지점. [국가유산청] |
김해 봉황동 유적이 출토된 남벽과 동벽 토층(패각성토층 아래 2중 구상유구). [국가유산청] |
김해 봉황동 유적 출토 직기용 추정 목제 부속구 및 방추차. [국가유산청] |
이 중에서도 목이 긴 옻칠 굽다리 그릇 15점은 이 일대가 이미 1세기부터 독자적인 대규모 생활 유적지로 여겨졌고, 변한의 수장급 거처에서 점차 성장해, 이후 금관가야의 중심지인 왕궁지로 자리매김 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제사나 각종 의례를 지낼 때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릇들은 목 부분 지름이 1cm로, 기존 출토품들에서 확인된 지름인 3~4cm 보다 훨씬 가늘고 정교하다. 바닥부분에 녹로(물레)를 고정한 흔적도 있다. 이 점은 그릇을 만들 때 돌려가며 작업하는 ‘회전 깎기’ 기술이 변한 시기부터 존재했다고 볼 수 있게 한다.
김해 봉황동 유적 출토 옻칠 두형 그릇. [국가유산청] |
이번에 발굴된 유물 중에는 칼집형 칠기와 원통형 그릇, 뚜껑 등 칠기류도 여럿 포함됐다. 점치는 용도로 쓰인 점 뼈(卜骨·복골), 크기가 2~3㎝인 작은 토기도 나왔다. 이밖에도 주걱·잔 등의 목기류, 물레와 베틀로 추정되는 직기용 부속 용품, 목재를 가공하는 연장인 자귀 자루처럼 보이는 유물 등이 출토됐다.
발굴 조사를 담당한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는 측은 “변한 지역의 생활 유적으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다양한 종류와 형태의 칠기와 목기가 양호한 상태로 출토된 사례는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연구소는 출토 유물을 추가로 조사·분석할 계획이다.
24일 개관한 ‘영남권역 예담고(庫)’. [국가유산청] |
24일 ‘영남권역 예담고(庫)’ 개관식에서 인사말하는 최응천 국가유산청장. [국가유산청] |
한편 국가유산청은 국가에 귀속되지 않은 유물을 보관하고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영남권역 예담고(庫)’를 이날 개관했다. 1700여 상자에 달하는 유물을 기반으로 한 개방형 수장고도 함께 운영된다. 개관을 맞아 아라가야의 주요 유적 발굴 조사 성과를 소개하는 특별전도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