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WKBL 제공 |
“여자 감독도 할 수 있어요.”
최초에 최초를 더하다. 박정은 BNK 감독이 또 한 번 굵직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우리은행과의 챔피언결정전서 3전 전승을 거두며 정상을 밟았다. 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BNK는 2019년 창단 후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박 감독은 여자프로농구(WKBL) 사상 최초로 우승을 이끈 여성 지도자로 이름을 남겼다. 박 감독은 “여자 감독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내가 해야만 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선수시절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다. 부산 동주여고 출신으로, 1998년 삼성생명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2012~2013시즌까지 원클럽맨으로 뛰었다. 명품 포워드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정규리그 486경기서 평균 13.5득점 5.5리바운드 3.7어시스트 마크했다. 수집한 반지만 5개다. 1998 여름을 시작해 1999 여름, 2000 겨울, 2001 겨울, 2006 여름까지.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박 감독의 등번호 11번은 삼성생명 영구결번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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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삼성생명 코치로 2015~2016시즌까지 활약, 현장에 힘을 보탰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한 것은 물론이다. WKBL 경기운영부장, 경기본부장직을 맡는 등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뽐내기도 했다. 2021~2022시즌을 앞두고 BNK 2대 수장으로 선임됐다. 유영주 전 감독의 뒤를 이었다. 리그 전체로 보면 이옥자 KDB생명 감독이 먼저 지휘봉을 들었다. 조혜진 우리은행 코치도 2011~2012시즌 중반 감독대행으로 팀을 이끈 바 있다.
크고 작은 고충이 많았을 터. 무엇보다 편견과 싸우는 시간이었다. 사실 이전까지 여성 감독이 여자프로농구 무대서 뚜렷한 성과를 낸 기억은 많지 않았다. 이 전 감독과 유 전 감독은 포스트시즌(PS) 무대조차 밟지 못했다. ‘여성 감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보이지 않는 선입견이 점점 더 팽배해졌다. 더욱이 박 감독은 삼성생명 색깔이 강했던 인물이다. 빠르게 BNK에 녹아들 수 있을지 물음표가 붙었다. 감독 선임 당시 파격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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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실력으로 승부했다. 사령탑 부임 첫 시즌부터 플레이오프(PO) 무대에 섰다. BNK의 창단 첫 봄 농구를 열었다. 이듬해엔 정규리그 2위(17승13패)와 더불어 챔피언결정전 진출하는 쾌거까지 일궜다. 이 또한 최초.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2025~2026시즌까지 3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2023~2024시즌 최하위로 떨어졌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한 시즌 만에 팀을 가장 높은 곳으로 이끌며 포효했다. 박 감독은 “처음엔 PO만 가자는 생각이었다. 스몰 라인업으로 하는 농구는 또 처음이었다. 선수들과 어떻게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꿈꿔왔던 순간, 박 감독은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선수 시절에도 우승을 해봤지만, 그때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의미가 크다”면서 “내가 직접 뛰어서 우승하는 것보다 우리 선수들이 뛰어서 우승하는 것은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하다. 아직도 얼떨떨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개성 강한 선수들이 모였지만, 이기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소통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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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서도 유독 마음이 쓰이는 이가 있다. ‘베테랑’ 박혜진이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우리은행서 BNK로 둥지를 옮겼다. 박 감독은 “(박)혜진이는 내 마음 속 최우수선수(MVP)”라고 강조했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팀을 옮기면서 부담이 컸을 터. 그럼에도 제 몫을 톡톡히 해줬다. 챔피언결정 3차전에선 결정적인 역전 3점포를 터트리기도 했다. 박 감독은 “혜진이는 기량도 기량이지만 팀의 문화나 선수들의 생활, 농구에 대한 자세 등을 만들어줬다”고 밝혔다.
누군가의 발자취는 또 다른 길이 되기도 한다. 여성 감독으로서 새 장을 열었다. 지난 20일 신한은행은 신임 감독으로 프랜차이즈 출신 최윤아 전 여자농구 국가대표 코치를 선임했다. 또 한 명의 여성 감독이 탄생한 것. 박 감독은 평소 “계속해서 여성 감독이 나왔으면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소식을 전해들은 박 감독은 “내가 어린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최 감독이) 많이 어리더라(1985년생)”고 농담하면서도 “여성 지도자가 생겨서 좋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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