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서울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11차 범시민대행진’이 세종호텔에서 정리해고된 요리사 고진수 노동자의 고공농성장 앞에서 마무리 집회를 하고 있다. 비상행동 정운 활동가 제공 |
이사라 |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행사기획팀·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활동가
“무대 설치 들어갑니다.” 아침 7시 상황실 방에서 울리는 알림음으로 광장 집회 준비는 시작된다. 오전 내내 무대와 음향을 설치하고 낮부터 자원봉사단 교육, 부대시설 설치를 한다. 처음엔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상황실 일꾼들도 석달 동안 숙달되어 덜(?) 뛰어다닌다. 리허설을 진행하고 본집회가 시작되면, 무대팀을 뺀 나머지는 행진을 준비하러 뛰어간다. 행진 시민들이 대회장을 빠져나가면 남은 자리를 정리하고 청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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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동안 문화기획을 하면서 수많은 집회를 기획하고,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는 넉달 보름 동안 광화문 캠핑촌의 이름으로 다양한 공연과 집회를 기획했던 나는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는 지금도 여전히 현장에 있다. 젊은 활동가들에게 많이 배운다. 광장의 목소리를 모으는 과정도 젊은 활동가들과 민주적으로 논의해가면서 준비한다. 아이디어와 경험이 만나면서 대보름 콘서트, 쓰레기 없는 집회, 깃발 행진 같은 다양한 집회가 만들어졌다. 시민들이 즐겁게 참여하고 그 에너지로 사회를 바꿀 힘을 얻고 가는 것, 집회 기획에서 제일 중요하고 보람찬 부분이다.
100명 가까운 상황실 구성원들은 인권, 환경, 노동, 여성 등 각 단체에서 자신의 이슈를 갖고 활동해온 이들이다. 윤석열의 불법 계엄 이후 광장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광장 상황실에 상주하며 행사 전문가가 되었다. 예측 불가의 정세 속에서 집회 기조에 맞추어 콘텐츠를 배치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무대 진행을 위해 주변을 정리하고 배치하는 일부터 행진이 마무리될 때까지의 모든 과정에 세심한 기획이 필요하다. 중요한 사건이 계속 생기다 보니 영상 제작팀은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금요일 밤까지 편집 대기 상태로 있다가 밤샘 작업을 한다. 무대에 올라가 말하고 싶은 시민들에게 신청을 받아 비슷한 발언이 겹치지 않게 선정하고, 음악인을 섭외하고, 사회자가 외칠 구호와 행진에서의 멘트를 준비한다.
무대 위에서는 촘촘한 시간 배분이 필요한데 시간을 넘기는 발언자가 있으면 초조하기도 하고, 마이크를 잡은 이가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을 지키고 있는지 귀 기울인다.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광장은 다양한 사고가 생긴다. 무대 주변 행인에게 통로를 안내할 때 “안내하는 아가씨”, “조끼 입으면 다냐”, “너네가 뭔데”처럼 막말을 하는 이들도 있다. 근접 촬영을 원하지 않는 시민이 있는데도 과도하게 촬영하는 유튜버가 있고, 술 냄새를 풍기면서 무대로 난입하는 이들과 실랑이를 벌일 때도 있다. 무엇보다 극우 보수 세력의 폭력이 점점 거세지는 상황에서 활동가와 시민의 힘으로 광장을 지켜내고 있다.
특히 수어 통역 활동가들은 추운 겨울 무대 위에서 온전히 찬바람을 맞으며 잘 들리지 않는 발언자의 목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발언자가 마스크나 가면을 쓰면 발음이 정확하게 들리지 않아 힘들 수도 있는데 경험이 쌓인 수어 통역 활동가들은 맥락을 잡고 통역을 해낸다. 춥고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 환자가 생기거나 극우 세력과 마찰이 있을 때 보건의료인과 ‘법률 인권 지킴이’들이 항상 대기하고, 밤샘 집회에서는 저체온증 환자가 생길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국민체조를 진행하고 순찰을 해왔다. 지역과 서울의 광장을 연결하고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오는 시민들의 집회 평가에도 귀 기울인다. 쏟아지는 간식과 시민들이 보내주는 푸드트럭을 나누고 배치하는 것은 큰일이지만 연대의 손길은 언제나 힘이 된다.
농민들이 “내란 수괴와 부역자를 갈아엎겠다”며 출발한 상경 트랙터 시위가 서울 남태령에서 멈췄을 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체포영장을 처음 집행했던 1월3일부터 3박4일 동안 ‘키세스 시위대’가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광장을 열었을 때, 3월8일 윤석열 구속 취소로 인한 석방에 분노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 농성장을 열었던 그 순간들에도, 우리는 무대가 멈추지 않도록 쉬지 않고 달려왔다.
광장은 시민이 만들어간다. 새로운 연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응원봉 시민’들과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말벌 동지’들이 윤석열 퇴진만이 아니라 싸우는 이들의 현장으로 광장을 넓혀왔다. 윤석열 즉각 퇴진의 목소리가 우리 일터와 사회를 바꾸는 모두의 목소리가 될 수 있도록 오늘도 형광 조끼를 챙겨 입고 나간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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