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1일 방북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와 만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푸틴 특사’인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가 지난 21일 당일치기로 방북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미-러-우크라이나의 종전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북한군 파병에 대한 반대급부를 둘러싼 양국이 미묘한 밀당이 진행된 것으로 관측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21일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와 만나 “조로(북러) 두 나라의 안전(안보) 이익과 국제적 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중요 문제들, 지역 및 국제정세에 관한 양국 지도부의 견해와 의견들”을 폭넓게 교환하고 “완전일치한 입장을 확인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2일 보도했다.
이날 발표를 보면 논의의 초점은 우선 북한군 파병 문제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국가주권과 영토완정, 안전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러시아의 투쟁을 변함없이 지지하려는 것은 북한의 확고부동한 선택이며 견결한 의지”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원하는 북한군 파병이 계속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발언이다.
지난해 9월 이후 6개월 만에 북한을 방문한 쇼이구 서기장은 21일 하루 동안 김 위원장과의 면담 등 방북 일정을 소화한 뒤 곧바로 귀국했다. 그렇다면 왜 이 시기에 쇼이구 서기가 급하게 북한을 방문했을까. 러시아 전문가인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파병에 대한 러시아의 반대급부가 충분하지 않은 데 불만을 표하자,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달래기 위해 쇼이구 서기를 특사로 급하게 파견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두 연구위원은 “북한은 우크라이나가 점령해온 쿠르스크를 러시아가 탈환해가는 과정에서 파병된 북한군이 큰 희생을 하고 의미 있는 기여를 했는데도 군사기술협력 등 러시아의 반대급부 제공이 지연되고 있는 데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고, 파병 축소 철수 등의 카드로 러시아를 압박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이 평양을 방문했는데, 그로부터 며칠 만에 쇼이구 서기가 평양에 간 것은 북한이 루덴코 차관을 통해 전달한 이런 불만을 러시아가 달래야 할 급박한 필요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전 전선에서 북한군의 활약이 크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북한이 조만간 파병 축소나 철수에 나설 경우 러시아의 상황도 어려워지기 때문에 북한의 몸값이 높아진 상황이다. 북한 파병에 대한 반대 급부로 러시아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 기술이나 군사정찰위성, 핵추진 잠수함 등의 첨단 군사 기술을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어 왔는데, 이번 방북에서 이와 관련해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러시아가 한미연합연습 자유의방패(프리덤실드·FS)가 시작된 다음날인 지난 11일부터 20일까지 8차례에 걸쳐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군용기를 무단 진입시킨 것도 북한의 불만을 달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특히 20일에는 러시아 항공우주군 및 장거리항공사령부 소속 전략 폭격기 및 전투기 등이 사전통보도 없이 한국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해 한국 영공 20㎞ 인근까지 근접 비행했고, 우리 군의 통신에도 대응하지 않았다. 두 연구위원은 “그동안 러시아는 중러 연합비행정찰 계기에 한국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해왔는데, 이번에는 러시아가 독자적·반복적으로 진입했다는 것은 북러가 새로 맺은 동맹 조약에 따른 북한 안전보장을 위한 맞춤형 군사행동”이라고 평가하면서, 지난해 6월 북러가 체결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에 따라 유사시에는 개입을 하겠다는 의지를 우회적으로 보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 위원장과 쇼이구 서기의 면담에서는 조약의 조항을 “무조건적으로 실행해나갈 두 나라 지도부의 용의가 피력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은 전했다.
다음으로 최근 우크라이나전쟁 종전 협상과 미-러 관계의 급속한 개선 와중에 북한이 ‘소외’되지 않도록, 정보를 공유하는 대화도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쇼이구 서기와 “안전(안보) 분야를 포함한 다방면적인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더욱 확대·강화해나가기 위한 전망적인 사업들에 대해 중요하고도 유익한 담화를 나눴다”고 통신은 소개했다. 타스 통신 등 러시아 매체들도 두 사람이 러시아와 미국의 대화 초기 단계, 우크라이나 상황, 다른 지역과 특히 한반도의 안보 문제 등 여러 주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쇼이구 특사의 이번 방문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오는 5월9일 러시아의 전승전 80주년을 전후해 러시아를 방문할 가능성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쇼이구 서기는 김 위원장에게 보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친근한 인사와 중요 친서”도 전달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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