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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죽음의 100분 레이스…오페라 '아모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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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랑포룸 빈과 니드컴퍼니 협업한 메타오페라…달리고 얽히고 외치는 연주자들
연합뉴스

오페라 'Amopera'
(대구=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지난 22일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한 오페라 'Amopera'의 커튼콜 모습. 2025.03.22.


(대구=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한 남자가 무대에 등장해 객석을 향해 박수를 유도한다. 그러나 그는 곧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바닥에 쓰러지고, 다른 남자가 다가와 그에게 광대 옷을 입힌다. 곧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보라 등 온갖 빛깔의 양말을 신은 검은 옷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무대에 등장하더니 보면대와 악기들이 빼곡한 무대의 가장자리를 빙빙 돌며 달린다. 관객들은 이제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지 호기심과 기대에 차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2022년 오스트리아 초연 후 전 세계에서 찬사를 받으며 공연 중인 '아모오페라'(Amopera)의 한국 초연이 지난 22일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이뤄졌다. 오페라 장르의 핵심 주제인 사랑과 죽음을 다루며 중간휴식 없이 100분간 진행된 이 공연은 무대 위에서 쉴 새 없이 내달리고 충돌하고 포옹하는 오케스트라 연주자들 덕분에 한순간도 시선을 돌리거나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는 숨 가쁜 무대였다. 이 공연은 오페라라는 장르의 형식과 내용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고 비판하는 '메타오페라'다. 작품 제목인 'Amopera'를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초기에 '암오페라'라고 한글로 표기했다가 '아모오페라'로 바꿨지만, '오페라 사랑'과 '나 자신이 오페라'라는 중의를 담은 이 제목을 하나의 뜻으로 번역하기가 애매해서인지 거의 모든 곳에서 원어 제목 'Amopera'로 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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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Amopera' 리허설
지난 22일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오페라 'Amopera' 리허설에서 지휘자 팀 앤더슨이 지휘하고 있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이 공연은 현대음악의 독창적 해석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는 연주단체 '클랑포룸 빈'과 장르 간 소통과 융합을 표방하며 연극, 춤, 시각예술 등 다양한 예술 분야를 아우르는 벨기에의 니드컴퍼니가 협업했다. 페터 폰 마트의 '배신당한 사랑'(Liebesverrat)에서 영감을 얻어 열애의 어두운 면인 불신과 배신, 실망과 파국의 감정을 음악으로 풀어냈다. 두 단체 모두 성공적인 내한 공연 이력이 있어 일찍부터 예술계의 관심을 모은 공연이다. 20세기와 21세기에 초연한 현대오페라 16편에서 주요 부분을 발췌해 몽타주 기법으로 결합하고 편곡하고 각색한 뒤 각 작품의 핵심적 의미를 서로 연결해 하나의 극으로 만들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배경의 몽환적, 유희적 영상은 음악의 효과를 더욱 강렬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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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Amopera' 리허설
지난 22일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오페라 'Amopera' 리허설에서 무대 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기를 선보이는 무대 뒤편으로 영상이 비치고 있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크세나키스의 '카산드라', 쳄린스키의 '난쟁이', 베르크의 '룰루', 브리튼의 '루크레티아의 능욕' 등 현대오페라의 유명한 걸작들과 함께 베리오, 버트휘슬, 베르트뮐러, 샤리노, 손더스 등 현대음악사 주요 작곡가들의 작품들이 포함됐다. 연주자들은 현악기와 성악의 연속적인 고음 트레몰로(한 음을 빠르게 반복적으로 연주하는 기법)로 불안감과 속도감을 부각하는가 하면 민속적인 리듬을 사용한 타악기와 독특한 주법의 관악기 연주 등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분위기를 창조해냈고, 사람의 목소리가 텍스트 전달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악기처럼 음향 생성의 기능을 갖는 현대 오페라의 특성을 참신하게 구현했다. 루치아노 베리오의 '리사이틀'에서는 여러 전통적인 오페라 아리아의 음악적 주제들이 잠깐씩 얼굴을 비췄다. 베른하르트 랑의 '난 모차르트가 싫어'에서는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의 가장 감동적인 아리아로 꼽히는 여주인공 파미나 공주의 '아, 난 느껴요'를 소프라노가 철저히 해체하고 분절해 노래했다. 무대를 종횡무진 내달리며 천재적인 연기력과 카멜레온의 변신 능력으로 이 많은 오페라의 연인 역할을 해낸 소프라노 사라 마리아 선과 바리톤 홀거 팔크는 이탈리아어, 독일어, 영어 등 각 오페라의 다양한 언어 교체에도 능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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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Amopera' 리허설
지난 22일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오페라 'Amopera' 리허설에서 소프라노 사라 마리아 선과 바리톤 홀거 팔크가 크세나키스의 '카산드라'를 노래하고 있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남자가 한 여자와 키스한 뒤 무대 주위를 달리다가 금방 다른 여자를 만나 키스하고, 그를 지켜본 첫 번째 여자가 배신감에 슬픔과 분노를 표현하는 등 한없이 역동적이고 격정적이었던 이 공연의 진행은 죽음이라는 주제를 부각하는 결말로 다가가면서 점점 진지해진다. 자신의 실체를 깨닫고 절망적인 죽음에 이르는 쳄린스키의 '난쟁이'는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에 의한 룰루의 강렬한 죽음과 룰루를 향한 백작 부인의 비가(悲歌)로 이어지며 작품 간의 탁월한 연결고리를 찾아냈다. 마지막에는 브리튼의 '루크레티아의 능욕' 중 '그녀는 장미처럼 잠들어'의 감동적인 서정과 고요로 마무리됐다.

관객의 반응은 갈렸다. 신선한 공연 형식에 환호하는 관객들도 있었지만, 전통적인 오페라 갈라콘서트를 기대하고 왔다는 관객들은 "너무 어려웠다"며 이런 현대적인 공연에 앞서 충분히 예습할 수 있는 교육의 기회를 대구오페라하우스에 청했다. 공연단은 대구에서 23일 공연을 마친 뒤 도쿄 분카 카이칸 극장에서 아시아 투어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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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Amopera' 리허설
지난 22일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오페라 'Amopera' 리허설에서 소프라노 사라 마리아 선과 바리톤 홀거 팔크가 연기하고 있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rosina03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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