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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산불 불똥 1km 날아가…드라이기 속처럼 뜨거워 진화 난항"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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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23일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태마을의 한 건물이 무너져 내려 마치 폭격을 맞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민가 향하는 불길…“부모님 새 집 탈까 걱정”



23일 오전 8시쯤 경남 산청군 시천면 한 야산. 산림청 소속 산불 전문 공중진화대원 약 8명이 엔진톱으로 수목을 자르며 급경사인 산비탈을 올랐다. 일반인은 두 손 두 발을 모두 써야 오를 수 있을 만큼 가팔랐다. 이 야산에선 불길이 연기를 내뿜으며 산 아래 민가를 향해 내려고 있었다. 군인 약 20명도 산불진화용 등짐펌프를 메고 진화에서 나서고 있었다.

200m 떨어진 곳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마을 주민 몇몇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김모(40)씨는 “영화에서나 보던 현장을 실제로 보니 겁난다”고 했다. 여기서 102㎞ 떨어진 대구 달성군 현풍읍에 사는 김씨는 전날(22일) 밤 이 마을에 왔다. 60대 부모가 사는 이 마을까지 산불이 확산하고 있단 소식을 듣고서다. 정신없이 차를 몰고 온 그는 슬리퍼 차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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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경남 산청군 시천면의 한 마을에서 산불이 민가로 내려올까 김모(40대)씨가 우려하고 있다. 대구에 사는 김씨는 전날 부모가 사는 이 마을까지 산불이 확산한다는 소식을 듣고, 슬리퍼 차림으로 산청을 급히 찾았다. 안대훈 기자


김씨는 “부모님이 작년에 집을 새로 지었다. 고생해서 지으신 집이 불 탈까, 물이라도 뿌려야 하나 싶어 달려왔다”며 “영화에서 보던 산불 같아 겁이 났다”고 했다. 이어 “어제 오전까진 여기에 불이 안 왔는데, 오후부터 불이 강 건너편까지 넘어 왔다”며 “부모님이 인근 마을회관으로 대피하셨고, 저도 그곳에 잠을 잤다”고 했다.



수백m 연이어 틘 불똥…자욱한 연무 속 까맣게 탄 묘지



지난 21일 발생한 경남 산청 산불이 사흘째 이어지면서 조용하던 농촌은 아비규환이 됐다. 불이 난 산청군 시천면과 단성면은 해 뜬 오전 9시쯤에도 불길이 내뿜은 연무(煙霧·연기와 안개)가 자욱했다. 약 50m 떨어진 강 건너 마을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강한 연무로 시야 확보가 어려운 탓에 산림당국은 일출 이후 곧바로 진화 헬기를 띄우지 못했다. 오전 10시부터 차츰 헬기를 투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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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전날 몰아친 강풍으로 불똥이 짧게는 600m 멀게는 1㎞까지 날아갔다. 이런 비화(飛火)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산불 범위가 크게 확산됐다. 이 과정에서 화마가 할퀸 주택은 물론 조상 묘와 과수원, 야산 곳곳이 새까맣게 탔다. 최초 불이 난 시천면 신천리의 야산에서 동남 쪽인 하동군 옥종면까지도 불이 번졌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 산청 344명, 하동 117명 주민들이 13곳의 대피소로 피신했다. 산청에서 산불 진화에 나선 경남 창녕군 소속 진화대원과 공무원 등 사상자 10명이 발생하는 인명피해도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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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경남 산청군 시천면의 한 야산에 있는 묘지가 산불에 새까맣게 그을려 있다. 안대훈 기자


이날 산림청·경남도 등에 따르면 오후 1시 기준, 산림당국은 산청 산불영향구역을 1362㏊로 추정했다. 전체 화선(火線)은 42㎞로 전날보다 2배 넘게 늘었다. 산림당국은 화선 27㎞를 진화했다고 했다. 현재 진화율은 65%다. 오전 9시보다 50%보다 15% 늘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날 오전 진화율이 70%를 넘겼지만, 오후 강풍과 함께 산불이 재확산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산청 진화헬기 수 ↓…전국 산불에 장비·인력 분산



현재 산림당국이 산청 산불에 투입 중인 진화헬기는 총 31대다. 전날 낮 43대와 비교하면 12대 줄었다. 산림청 헬기 8대, 군 헬기 4대가 빠지면서다. 산청뿐만 아니라 경북 의성과 울산 울주에도 대응 최고 수위인 ‘산불 3단계’가 발령, 진화 장비와 인력이 분산됐기 때문이라고 산림청은 밝혔다. 현재 산청에는 진화차·소방차 등 장비 217대와 산림청 공중진화대, 소방·경찰, 산청군 등 2243명의 진화 인력이 투입해 불길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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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23일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태마을의 한 농가가 무너져 내려 마치 폭격을 맞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산림청 관계자는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3·4월은 건조하면서 바람이 가장 많이 불어 대형 산불이 잘 발생한다”며 “(산불 현장이) 건조하고 뜨거워 마치 드라이기 안에 들어와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이어 “산불 구역안에서 꺼진 불이 바람에 다시 살아나기 때문에 내일 바람이 더 불기 전에 가용 재원을 투입해 신속히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청=안대훈 기자 an.dae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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