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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엉뚱한 결정 내린다면 2차 쿠데타에 준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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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일 서울 광화문 단식농성장에서 만난 송경동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송경동 시인은 3월8일 한국작가회의(작가회의) 정기총회에서 사무총장에 선임되었다. 강형철 이사장과 함께 앞으로 3년간 이 유서 깊은 문인 단체를 이끌어 가게 된 보람과 포부를 챙길 겨를도 없이 그날 오후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이 석방되자, 그는 동료 문화예술인들과 논의를 거쳐 11일부터 서울 광화문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정윤희 블랙리스트이후 디렉터, 최낙용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 대외협력 간사 등이 동참했다. 21일부터는 박수연 부이사장, 김대현 전 비대위원장, 문동만 부이사장 등이 이틀씩 동조 단식을 벌이고 있다. 문인들이 펜을 대신해 몸으로 작품을 쓰고 있는 형국이다. 23일 현재 단식 13일째를 맞은 송 시인을 지난 20일 낮 단식농성장에서 만났다.



“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출범한 게 1974년 11월18일입니다. 박정희 군사 정권의 불법 계엄과 유신 체제에 맞서고자 문인들이 결집한 것인데, 그로부터 반세기 만에 초유의 친위 쿠데타와 내란 사태를 맞게 되었습니다. 태생의 내력도 그러한 만큼, 작가회의가 내란 종식과 헌정 회복을 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생각에서 단식농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송 시인이 사회적 의제와 관련해 단식농성을 벌이기는 이번이 세번째다. 2018년 겨울 서울 목동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2년째 고공농성 중이던 파인텍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27일 동안 이어간 것이 처음이었고, 2020년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김진숙의 정년퇴직을 앞두고 해고 철회와 복직을 요구하며 벌인 47일 장기 단식농성이 두 번째였다. 단식농성뿐만이 아니라,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와 박근혜 탄핵 당시 광화문 캠핑촌 등 투쟁 현장에 빠짐없이 참여해 온 그가 다시 맨몸으로 광장에 나선 것.



“국정농단 박근혜를 퇴진시키자고 광화문 캠핑촌을 만들어서 촌장으로 5개월간 싸워 결국 파면시켰는데,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 또 다시 광화문에 천막 농성장을 꾸리고 단식이라도 해 보자고 앉아 있는 게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윤석열이 최소한의 단죄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는 대한민국의 어떠한 말과 글도 온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헌정을 바로 세우는 것은 한국 사회의 말과 글을 바로 세우는 일이므로 이런 때일수록 작가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단식을 시작할 때만 해도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이 멀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헌재가 아직도 판결 날짜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 등 상황은 매우 불투명하다. 함께 단식농성 중이던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의장단에서는 의료진 진찰을 거쳐 녹색병원에 긴급 입원하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한겨레

20일 서울 광화문 단식농성장에서 만난 송경동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현재의 대한민국은 어떠한 헌정 기관도 정당성을 지니기 어렵도록 온통 무너져 있는 상황입니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파면 결정을 내려서 무너진 헌정 질서를 다시 일으켜 세울 때까지 단식을 계속할 겁니다. 혹시라도 헌재가 탄핵 기각이나 각하 판결을 내려서 주권자 국민의 명령을 뒤집는다면 헌재도 내란 수행 기관이 되는 것이고, 국민은 헌정을 재차 무너뜨린 죄를 헌재에 묻게 될 것입니다. 저는 저희가 있는 이곳 농성장이 지금 대한민국의 유일한 헌정 기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아 보이는 농성장을 기점으로 민주 항쟁에 나서고 있는 전국의 모든 광장이 대한민국의 유일하게 정당한 헌정·주권 기관인 것이죠.”



송 시인은 최근 전두환·노태우 등 내란 세력에 대한 1997년 대법원 판결문을 다시 읽었노라며 헌재 재판관들과 시민들에게 그 내용을 새삼 상기시키고 싶다고 했다.



“대법원 판결문은 1980년 내란에서부터 1987년 6월 항쟁을 거쳐 6·29 선언이 나오기까지 대한민국은 무헌정 상태였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정권에 법적 정통성이 없었다는 것이죠. 오히려 불법 계엄에 맞서 항쟁을 벌인 80년 5월의 광주 시민들, 그리고 6월 항쟁의 광장이 그 시기에 유일한 헌법 기관의 역할을 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판결이 있음에도 지금의 헌재가 엉뚱한 결정을 내린다면 그건 2차 쿠데타에 준하는 일이 되어 주권자 국민의 직접 행동에 부닥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엄중히 경고해 둡니다.”



다행히 윤석열 파면으로 상황이 잘 마무리된다면, 문인 단체 작가회의를 어떻게 이끌어 갈지에 대한 복안도 들어 보았다.



“지난해는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등 한국문학에 일대 경사가 생겼는데, 난데없는 계엄으로 그 의미가 크게 퇴색되고 말았습니다. 한강 작가가 5·18과 4·3 국가범죄 희생자들의 역사를 되새기는 작품으로 상을 받았는데, 그해에 다시 내란이 벌어졌으니 정말 기가 막히는 노릇이죠. 그런데 이런 일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고 전세계적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문학의 고민과 상상력이 요구된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국경을 넘는 문학적·사회적 연대가 필요해요. 또 하나는, 이번 계엄 사태에서도 보았다시피 남북 분단 체제를 넘어설 필요가 절실합니다. 남북의 문학 교류를 축으로 해서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 조성에 작가회의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겠습니다. 문학이 개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기층의 사회적 고통에 동참하고 연대함으로써 다수 시민의 사랑을 받는 문학으로 다시 발돋움하는 것 역시 절실합니다.”



송 시인은 마지막으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즉각 퇴진을 힘주어 요구했다.



“불법 내란 국무회의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동료 문화예술인들에게 백배 사죄하고 책임지며 물러나는 게 마땅하겠는데, 유 장관은 더구나 지난 정권에서 동료 문화예술인들을 사찰하고 검열한 블랙리스트 사태의 몸통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습니다. 더 이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이 오욕에 휩싸이지 않도록, 문화예술 책임자로서 즉각 사퇴하기 바랍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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