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홈플러스에 파견된 농심 직원 B씨는 하루 종일 뉴스를 확인한다. 지난 4일 홈플러스 기업회생신청 이후 식품사들이 차례로 납품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농심은 다행히 하루 만에 납품 협약을 마무리 지으며 대규모 납품 중단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 또 철수해야 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살고 있다.
서울시내 한 홈플러스 매장. [연합] |
지난 21일 홈플러스는 직영직원 2만명의 월급을 정상 지급했다. 홈플러스 구성원 사이에서는 회생절차 돌입으로 급여 정산이 늦어지고, 최악의 경우 퇴직금을 받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 월급이 지급되면서 일각의 우려는 해소됐다.
홈플러스는 영세업자와 소상공인을 우선으로 협력사 납품대금과 입점업체(테넌트) 정산금 등 상거래채권을 먼저 변제할 계획이다. 오는 6월까지는 대기업 협력업체 관련 채권을 상환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경쟁사보다 긴 대금 주기 탓에 일부 제조사들과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실제 서울우유는 납품협상에서 대금 정산 주기를 단축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홈플러스와 접점을 찾지 못했다.
업계에 따르면 식품을 비롯해 휴지, 세제 등 생활용품을 납품하는 기업들도 비슷한 요구를 하고 있다. 생활용품 업체 관계자는 “아직 납품 중단을 결정한 건 아니지만, 홈플러스 정산 기한에 대한 문제의식이 업계 전반에 퍼졌다”며 “식품업체들이 선제적으로 나서고 있어 업계 동향을 파악한 후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간 홈플러스가 할인행사를 이어가며 정상화를 위해 애쓰는 가운데 일부 식품업체의 납품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20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지난 19일 서울우유는 홈플러스에 납품하지 않았다. 사진은 20일 서울시내 한 홈플러스 매장의 우유판매대. [연합] |
기업간 신경전에 낀 건 노동자들이다.
서울우유 대리점주 A씨는 우유, 생크림 등 유제품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대리점 앞이 텅 비었다며 “20년 넘게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 근처라는 입지를 활용해 그간 안정적 수입을 유지하던 A씨 입장에서 홈플러스 납품 중단은 매출 감소로 직결된다. A씨는 “회사 차원에서는 대금지급이 고민될 수 있지만, 대리점을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장 이번 달 매출이 확 줄어드는 것”이라며 “언제까지 납품을 중단할지, 언제 납품을 재개할지 정해지지도 않아 어느 부분에서 지출을 줄여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홈플러스 강서점에서 근무하는 C씨는 “당장 임금 지불도 문제지만 향후 구조조정이 이뤄질까 두렵다”며 “그나마 강서점은 본사가 자리 잡고 있어 다른 지점에 비해 구조조정 가능성이 적지만 고용불안은 여전하다”고 했다.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에서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조합원들이 기업 회생을 신청한 홈플러스 정상화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
홈플러스 노조도 회사가 회생신청을 신청하게 된 배경으로 ‘오프라인 시장의 어려움’을 꼽은 것을 비판하며 추가 구조조정을 반대했다.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서울회생법원에 제출한 회생신청서에서 단기간 대폭 상승한 최저임금과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감소, 이커머스 확산 등 유통산업의 온라인 전환에 따른 영업이익 감소를 회생신청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는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후 단행한 매장 구조조정이 실적 악화의 최대 요인이라고 반박했다. 노조 측은 입장문에서 “MBK 인수 이후 자가 매장 수는 89개에서 56개로 감소했고 임대 매장 수는 53개에서 70개로 증가했다”며 “임대료 지출이 늘면서 수익성이 악화한 것이 영업이익 감소의 원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