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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론과 오가노이드, 한의학과 현대 생명과학 융합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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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채성욱 한국한의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장부론(臟腑論)은 한의학에서 인체의 생리 및 병리적 상태를 설명하는 핵심 이론으로, 장부 간의 상호 작용과 전신 건강의 균형을 강조한다. 간, 심장, 비장, 폐, 신장을 가리키는 오장(五臟)과 담, 소장, 위, 대장, 방광, 삼초를 뜻하는 육부(六腑)의 기능적 관계를 설명한다. 장부는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신 균형, 즉 음양오행의 조화를 유지한다는 것이 요체다.

현대 생명과학 연구에서도 인체 내의 장기들이 서로 연결되며 소통한다고 보는, 이른바 ‘축(axis)’ 이론이 대두되고 있다. 하나의 질환이 다른 장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연구 방법이다. 최근 ‘장-간 축(Gut-Liver Axis)’과 ‘장-피부 축(Gut-Skin Axis)’ 등 장부 간의 연계성을 중심으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를 효능 평가 시스템으로 확장하면 다양한 질병에 대한 통합적 평가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예를 들면 한의학에서는 피부 질환을 치료할 때 ‘환자의 속이 편해야 피부가 건강하다’는 점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조상들의 지혜, 즉 장부론이 현재의 과학이론(장-피부 축)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장은 음식물 소화와 흡수뿐만 아니라 노폐물을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장 기능이 저하되면 노폐물이 쌓이고, 독소가 피부로 배출되어 트러블을 유발한다.

질환에 대한 연구 방법은 현재 특정 병인에 의한 단일 질환 모델이 이용되고 있으나 만성 질환은 복합적인 병인에 의해 나타나기 때문에 하나의 유전자와 하나의 질환을 매칭한 약물 개발에는 한계가 있다. 이처럼 인체 내 장기들은 서로 연결되고 소통한다. 그래서 단일 질환 모델보다는 장기 사이의 소통을 평가하는 것으로 약물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장기들의 기능적 연결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오가노이드’를 연결하는 ‘멀티-오가노이드 시스템’이 필요하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이용해 체외에서 특정 장기의 3차원 구조를 배양한 것이다. 인체 장기와 유사한 기능과 구조를 가지므로 질병 연구와 약물 테스트, 재생의학 등에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장부론에서 각 장기는 단순한 해부학적 기관이 아니라 기능적 조절 체계로 작동한다고 본다. 오가노이드 연구 역시 단순한 세포 덩어리가 아니라 실제 장기의 기능적 모델을 모사하려 한다. 예를 들어 한의학에서 폐(肺)는 기(氣)의 순환과 면역 조절을 담당하는 것으로 보며, 폐 오가노이드 연구는 실제로 면역 기능과 호흡기 질환 연구에 활용된다. 현대 생명과학에서도 장기 간 상호작용을 연구하기 위해 여러 오가노이드를 연결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한의학의 장부론과 현대 생명과학에서 주목받는 오가노이드는 서로 다른 학문 체계에 속하지만, 장기 기능의 조화와 균형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오가노이드를 활용한다면 인체 장기 사이의 상호작용을 모사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발전시켜 효과적인 약물 개발이 가능할 것이다.

인체를 모사하는 오가노이드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한약, 침, 뜸 등 한의학적 치료법의 과학적 작동 원리를 연구하는 데에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한의학과 현대 생명과학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개인 맞춤형 치료와 미래 통합의학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한의학적 연구 방법론에 기반한 인체 모사 시스템은 기존 약물들의 단일표적 한계성을 극복하고 만성 질환 치료에 대한 해결점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엔비디아 칩으로 챗GPT가 탄생한 것처럼 오가노이드의 기술로 장부론을 모사하는 한의학적 평가 모델이 구현될 날이 그리 머지않아 보인다.

채성욱 한국한의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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