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를 이용해 제작한 이미지] |
[헤럴드경제=한영대·박혜원·김민지 기자] 방위산업에서도 제품의 두뇌 역할을 하는 핵심 반도체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 반도체의 국산화율이 0%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곧 전량 해외에서 수입해 탑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데에는 방산 반도체로 주로 쓰이는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전장에서 무인화 기술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방산 반도체에 대한 높은 해외 의존도는 K-방산의 본원적 경쟁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해외 반도체 없으면 韓 무기 ‘머리 없는 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무인전략인 아리온스멧(왼쪽)과 그룬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
디지털 IC는 이진수(0과 1) 형태로 표현되는 이산 신호를 처리, 복잡한 논리 연산을 수행하는 시스템 반도체이다. 54개 무기체계에 적용된 반도체 품목 6945개 중 가장 높은 비중(1793개, 25.8%)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무기 체계에서 빠질 수 없는 반도체이다.
다른 방산 반도체의 해외 의존도도 90%를 훌쩍 넘는다. 대표적으로 전원반도체의 해외 의존율은 99.5%이다. 우리나라가 강점을 보이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조차 해외 의존율이 98.8%이다. 전체 방산 반도체 해외 의존율은 98.9%이다.
방산 반도체 대부분 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수입국 비중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85.7%이다. 유럽, 일본 비중은 각각 8.4%, 2.6%이다.
“韓에선 방산 반도체 제조 수요 無”
KAI가 개발한 군단무인기 RQ-101. [KAI 제공] |
같은 종류의 반도체라고 하더라도 방산 반도체는 일반 제품과 비교했을 때 내구성이 높다. 심한 진동과 충격에 노출되는 전장에서 제 성능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철저한 보안이 요구되는 만큼 성능 측면에서도 방산 반도체가 더욱 뛰어나다. 무기 1개에 적용되는 반도체는 최대 1000여개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산 반도체는 무기 성능을 좌우하는 중요한 부품이다. 대표적으로 전투기 눈 역할을 하는 AESA 레이더에 있는 송수신 모듈 모두 반도체와 연결돼야 한다. 반도체 기술에 따라 레이더 성능이 달라질 수 있다.
무기 성능을 좌지우지하는 방산 반도체의 해외 의존율이 높은 이유는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 구조와 연관 있다. 전략 자산에 적용되는 반도체 대부분이 시스템 반도체이지만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주력 제품은 메모리 반도체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 강화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글로벌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뒤처저있다고 업계는 평가하고 있다.
높은 기술적 장벽도 낮은 국산화율의 원인 중 하나이다. 방산 반도체는 일반 제품보다 성능 및 내구성이 뛰어난 만큼 생산 과정에서의 기술적 난도도 매우 높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방산 반도체는 생산 조건이 까다로운데 수율이 낮다”며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메모리 반도체 위주의 한국 시장에선 제조 니즈가 없다”고 말했다.
“반도체 확보 기간 2년으로 늦어져”
방산 반도체의 높은 해외 의존도는 K-방산 성장에 타격을 줄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최근 전쟁이 무인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방산 반도체를 해외에만 의존하면 신기술 개발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는 것이다.
국내 방산기업들은 미래 먹거리로 AI·무인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항공우주산업(이하 KAI)은 AI 파일럿을 개발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은 다목적 무인차량의 성능 고도화를 진행하고 있다. AI·무인 기술이 적용된 전력자산은 기존 무기보다 더욱 많은 반도체가 요구된다. 그런데 미국, 유럽 등에서 방산 반도체 수출을 제한하면 신기술 개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장원준 전북대 방위산업융합과정 교수는 “AI 흐름으로 방산 반도체 수요가 증가한 결과 국내 방산 기업들의 반도체 확보 기간(Lead Time)이 과거 6개월에서 현재 1~2년까지 지연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방산의 대표적인 장점이 납기 준수인데 반도체 수급 문제가 발생하면 가장 큰 경쟁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산 반도체의 중요성을 인지한 미국은 제품 경쟁력 강화에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2023년에는 방산 반도체 등의 기술력을 높이기 위해 20억달러(3조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방사청은 지난해 방산 반도체 전담 연구 기관인 국방 반도체 사업단을 개소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국방 반도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을 대표 발의했다. 다만 해외 의존도가 100%에 육박하는 만큼 방산 반도체 국산화를 이루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유용원 의원은 “전 세계가 반도체 전쟁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정부와 정치권에서 규제 완화 등 총력 대응에 나서고 있다”며 “K-방산이 르네상스를 맞이한 만큼 방산 반도체의 해외 의존율을 낮추기 위한 노력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