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과 이어진 부실한 통신망은 이미 붕괴했다. 간간이 사선을 뚫고 흙먼지 뒤집어쓰고 돌아온 장군들은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절망적인 보고만 늘어놓는다. 그럼에도 모두들 막연히 무언가 극적인 반전反轉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그들 자신도 모르는 눈치다. 우주의 기운이 모여 미국, 영국, 소련에 한날한시에 회복불능의 대재앙이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나치 수뇌부는 판단력을 잃은 히틀러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
마침내 히틀러가 지하총통실에서 회의를 소집한다. 수뇌부들은 그들이 메시아(Messiah)라고 떠받들어온 히틀러가 '어떻게 좀 해주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안고 히틀러만 바라본다. 그들은 메시아의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다.
1950년대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빌프리트 다임(Wilfried Daim)은 히틀러와 나치 수뇌부가 히틀러를 '진짜 메시아'로 설정한 새로운 종교로 기독교를 대체하려는 계획을 수립했다고 폭로한다.
'뉴 메시아' 히틀러는 지하총통실에 소집한 나치 수뇌부에 유럽 전선 지도를 펼쳐놓고 자신이 예비해 둔 '기적'을 전한다. 그들의 메시아는 이미 궤멸돼 사라진 지 오래인 독일의 정예 전차부대와 사단 병력을 동원해 연합군을 일거에 궤멸하는 '기적의 작전'에 혼자 가슴이 웅장해진다.
수뇌부는 절망한다. 그러나 수뇌부 아무도 불경하게 메시아의 '망상'을 깨우쳐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렇게 지하총통실을 물러나온 수뇌부들은 다시 삼삼오오 몰려 절망감에 빠진다. 그러면서도 다시 무언가를 기다린다. 여전히 자신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장 간절하면서도 가장 절망적인 기다림이다. 참으로 난해한 장면들이다. 1945년 4월 히틀러의 마지막 14일간의 장면들에서 문득 2025년 봄 대한민국 대통령실 모습이 겹쳐 보여 안타깝다. 어느 쪽이든 충성을 빙자한 광신도들의 모습이다.
히틀러가 '가짜 메시아'였다는 것을 눈치 챈 히틀러의 최측근이자 친위대 총사령관인 하인리히 힘러(Himmler) 장군과 친위대 중장 페겔라인(Fegelein)이 히틀러를 패싱하고 미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 장군을 만나 항복이 아닌 강화조약을 맺을 밀담을 나눈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아무나 메시아라고 믿어버리기도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황당하지만 자기들끼리만 진지하다. "페겔라인, 그런데 말이야… 아이젠하워를 만나면 나치 경례를 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그들 식으로 악수를 하는 게 좋을까?" 참으로 난해한 대화다. 이미 몇몇 나치 수뇌부의 마음속에는 히틀러가 아닌 루스벨트나 아이젠하워만이 그들을 지옥에서 구원해줄 새로운 메시아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들은 히틀러라는 가짜 메시아를 버리고, 이제 그 이름만 알 뿐,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아이젠하워라는 새로운 메시아를 기다리기 시작한다. 역시 간절하지만 막막하기 짝이 없는 기다림이기는 마찬가지다.
영화 다운폴은 마치 새뮤얼 베케트(Sam uel Beckett)의 비극적 코미디이자 부조리극不條理劇인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대책 없이 난해한 그 부조리극 속에서 남루한 차림의 뜨내기 '디디(Didi)'와 '고고(Gogo)'라는 인물들이 어느 한적한 길가의 나무 옆에서 '고도(Godot)'라는 이름을 가진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런데 디디와 고고 누구도 고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고도가 실존인물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심지어 자신들이 왜 그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딱히 고도가 올 것이라고 믿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일편단심 기다린다. 오지도 않고 딱히 믿지도 않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피곤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길옆 한 그루 나무 아래에서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디디와 고고 앞에 '포조(Pozzo)'라는 짐꾼이 나타난다. 디디와 고고는 포조가 나타나자 대뜸 그를 고도라고 지레짐작해 버린다. 그들이 그곳에서 그렇게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는 말을 들은 포조가 묻는다.
그들은 정말 느닷없이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을 메시아로 여기는 걸까.[사진|뉴시스] |
포조: "그런데 '고도(Godot)'라는 사람이 대체 누구요?"
디디: "그가 누구냐 하면… 그냥 좀… 아는 사람이오."
고고: "뭐… 좀 안다기보다는… 잘 알지는 못하는 사람이오."
고고: "난 사실 그 사람이 와도 못 알아볼 것 같기도 하고…."
포조: "그런데 당신들은 왜 나를 고도라고 생각한 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아무나 메시아라고 믿어버리기도 한다. 믿는다기보다 믿고 싶어 한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1930년대 혼란 속에서 그들을 구해 줄 메시아를 갈구했던 많은 독일인들은 고고의 말처럼 오지 않는 메시아를 기다리다 지쳐서 유럽에서 4700만명의 사망자, 그리고 독일에서만 57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히틀러를 메시아로 받아들였다.
메시아라고 믿어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혼란의 시대에는 어김없이 자칭 메시아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아무나 메시아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우리의 지금 상황이 그렇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황당한 비상계엄령을 발동했다가 탄핵심판을 받고 있는 대통령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구국의 메시아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모두가 부글부글 끓었던 1934년 독일의 상황이나 느닷없이 계엄을 선포해버리는 대통령이 메시아로 보이게 만드는 2025년 대한민국 상황이나 많이 닮은 듯해서 못내 불안하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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