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위스컨신 주의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컨스텔레이션급 호위함의 최종 모습 그림 |
이 신문은 각국의 방산(防産) 자료와 군사 컨설팅 업계의 분석을 토대로, 또 전세계 주요 국가들의 전함 건조 기간을 조사했다. 그 결과, 2007~2025년 10개국이 건조한 호위함 20척 중에서 한 척만 빼고 모두 미국이 디자인에서 준공까지 9년 예상하는 컨스텔레이션급(級) 호위함보다 짧았다.
한국과 일본은 3년 안에 건조했고, 미국은 7년, 중국은 5년 걸렸다. 호위함은 중형 전함으로, 대잠(對潛) 작전을 수행하고 대형 군함을 호위하는 역할을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14~2023년 기간에 중국 해군이 157척을 진수하는 동안에, 미국 해군은 67척에 그쳤다며, 이는 미국 해군의 과도한 설계 변경, 숙련된 미 조선업계 노동력의 부족, 노후한 조선소와 장비, 철강 가격ㆍ인건비 상승의 요인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중국 전함 수는 370척 이상, 미 해군은 295척이다.
미 해군의 목표는 2054년까지 전함 수를 390척까지 늘린다는 것이지만, 중국은 2030년까지 435척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미 해군은 질적(質的)인 면에서 중국보다 미 전함이 훨씬 우수하다고 주장한다.
◇완공까지 9년 걸리는 미 최신 프리깃함
미 컨스텔리이션급 구축함은 건조 기간을 단축하려고, 유럽 최대 조선사인 핀칸티에리(Fincantieri)의 검증된 설계 도면을 기본으로 했다. 이 도면으로 이탈리아ㆍ프랑스 구축함이 이미 진수됐다. 미 구축함이 건조되는 위스컨신 주 매리네트의 조선소도 핀칸티에리가 모기업이다.
애초 진수 목표 시점은 2026년. 그러나 건조 2년 반이 지난 지금도 겨우 10% 공정만 진행됐다. 준공까지 예상되는 9년은 핀칸티에리 조선사가 같은 디자인의 전함을 걸리는 시간의 두 배에 달한다. 한 척 건조 비용은 처음의 13억 달러에서 이제 19억 달러(약 2조7844억 원) 이상일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가 미국 철강ㆍ알루미늄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수입산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서, 미 조선업체들이 사용하는 미국산 금속 가격도 더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미 해군은 이런 컨스텔레이션급 호위함을 모두 20척 건조해 취역한다는 계획이다.
◇미 해군의 잦은 변경 요구로, 최초 설계 도면과 15%만 유사
건조 기간을 줄이려고 ‘검증된’ 설계도면을 이용했지만, 미 해군은 이후 컨스텔레이션급에 대해 수시로 변경을 요구했다. 미 의회예산국(CBO) 조사에 따르면 “애초 계획은 이탈리아 조선사의 원본 설계와 85% 유사한 함정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15%만이 유사하다”고 밝혔다.
더 큰 발전기를 수용하기 위해 선체 길이는 7.3m 더 길어졌고, 추진기 소음을 줄이기기 위해 프로펠러도 변경됐다. 건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컴퓨터 시스템과 무기, 다른 기능을 위한 냉각ㆍ환기 장치 공간이 추가됐다. 결국 애초 도면에 기초한 프랑스ㆍ이탈리아의 컨스텔레이션급 전함보다 중량이 10% 이상 늘었고 그만큼 속도는 줄었다.
미 해군의 컨스텔레이션급 호위함 디자인. 파란 부분이 원래 설계도면의 디자인이지만, 건조 중에도 계속 요구 사항이 추가되면서 최종 완공될 호위함은 원래 도면과 15%만이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
미 해군의 조선사령부는 WSJ에 “미 해군은 외국 해군과 다른 표준을 갖고 있고, 종종 무기나 악천후로 타격을 받아도 전함이 더 ‘생존 가능할 수 있도록’ 더 정밀한 사항을 요구한다. 이런 차이로 무기 시스템이나 세부적인 변형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는 상당히 타당한 주장이긴 하다. 그러나 미 의회예산국은 “항공모함을 건조하는 국가 중에서도 미국의 무기와 군사기술, 핵 추진력이 가장 강력한 것도 여전히 사실”이라면서도 “2000년 초 6년 걸리던 공격 잠수함은 이제 9년 걸리고, 항모 건조는 8년 걸리던 것이 이제는 11년 걸린다”고 밝혔다.
◇상업 선박을 짓는 조선업이 부재하다 보니…
미국 조선업계가 직면한 고민은 기본적으로 상업용 조선업이 부재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전함과 민간 선박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부품들에 대해 공급 체인을 공유할 수가 없고, 민군(民軍) 양쪽에서 쓸 수 있는 숙련된 노동력과 관련 원자재의 공급이 원활한 다른 조선 선진국들에 비해 전함 생산 능력이 딸린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
예를 들어, 핀칸티에리의 미국 조선소는 직원의 1/3이 50세 이상이지만, 이탈리아 조선에선 그 비율이 40%에 가깝다. 그만큼 숙련된 인력이 많다는 뜻이다.
또 맥킨지 사가 작년 6월에 발표한 미국 조선소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수십년 된 금속 주조 기계ㆍ크레인ㆍ운반 시스템 등 수십 년 된 장비들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고, 일부는 2차 세계대전 이전의 것들이다. 장비가 고장 나면 계약 이행이 지연되고, 일부는 더 이상 부품이 공급되지 않아서 교체 부품을 직접 새로 제작해야 하기도 한다.
트럼프의 철강 관세 전쟁이 지속되면, 미국 전함 건조에 들어가는 미국산 및 수입산 철강 가격은 또 오르게 된다.
미국은 2010~2021년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26억 달러가 들었지만, 제조 비용이 똑같이 높은 영국은 비슷한 잠수함 건조에 20억 달러를 썼다.
영국은 단일 조선소에서 만들 수 있었지만, 조선소의 규모와 수가 부족한 미국에선 900㎞ 떨어진 두 곳의 조선소에서 만든 잠수함 파트를 바지(barge)선으로 끌어와서 조립해야 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
F-35 전투기와 패트리어트 미사일 방어시스템 등 미국 무기는 매년 전세계에서 주문이 쏟아지지만, 미국 전함이 유럽과 한국의 경쟁 전함들을 제치고 판매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영국 해군의 전 부제독 제러미 키드는 “미 전함은 강력한 전쟁 무기이긴 하지만, 건조ㆍ운영 비용이 매우 높다”고 WSJ에 말했다.
20년 전만 해도 중국의 해군력은 미국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보다 2배 이상 빠른 속도로 군함을 건조하면서 상황을 급격히 변화시켰다.
◇미 해군, 30년간 매년 한국 국방예산만큼 전함 건조 써야
미 해군이 목표대로 2054년까지 전함 수를 390척으로 늘리려면, 미국 조선소들이 지난 10년 간 건조한 전함 수보다 훨씬 더 많은 함선을 건조해야 한다고, 2023년 1월 의회예산국 보고서는 밝혔다. 또 앞으로 30년 간 전함 건조 비용에만 매년 약 400억 달러(약 58조 원)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 해군이 애초 예상한 것보다 17% 더 많은 비용이다. 400억 달러는 우리나라의 전체 국방예산과 비슷한 액수다.
WSJ는 미 해군이 건조 속도를 높이기 위해, 설계 변경을 최소화하고 이미 검증된 설계를 활용하는 방식을 적극 검토하며, 미국의 조선소 설비 업그레이드와 숙련공 양성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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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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