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각) 미국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꽈 미할 마틴 아일랜드 총리 공동 기자간담회. 트럼프 대통령이 한 기자에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추방하라고 한 적 없다"며 반박한 뒤 "어디 소속?"이라고 반문하는 모습./로이터=뉴스1 |
△12일 백악관 오벌오피스(집무실)
-기자 = Expel Palestinians out of Gaza. Are you discussing that with him(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가자 지구에서 추방하는 것. 그 문제를 논의했는지)
-기자 = Voice of America, sir(미국의 소리입니다)
▶트럼프 = Oh, no wonder. Okay, voice it out. (놀랍지도 않네. 시끄러운 소리)
이날 트럼프는 미할 마틴 아일랜드 총리와 회담을 갖고 오벌오피스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먼저 아일랜드 총리는 기자들을 향해 "(가자지구에서) 인질을 구출해야 한다. 휴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인도적 지원 필요하다"며 "우리는 두 국가 해법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렵고 힘들어졌다. 하지만 우리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는 소신을 밝혔다.
이에 취재기자가 두 정상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추방하는 방안도 논의했냐는 질문을 던졌는데, 트럼프가 즉각 불쾌감을 나타낸 것. 그는 '추방(Expel)'이라는 단어에 미간을 찌푸렸고, 기자의 말을 중간에 끊은 뒤 반박한 것.
트럼프는 한 발 나아가 어디 소속이냐고까지 물어보면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기자가 VOA라는 답을 듣자마자 오른손으로 별 거 아니라는 듯 손을 까딱였고,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다음 질문을 받겠다는 취지로 시선을 돌렸다. 즉각 다른 기자들이 질문권을 얻기 위해 "여기 여기(please, please)"라고 외치며 손을 들면서 그렇게 VOA 기자의 백악관 '마지막' 질문이 끝났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14일 트럼프는 연방 정부 조직 축소에 관한 추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번 대상에는 글로벌미디어국(USAGM)을 비롯해 5개 기관이 추가됐다.
특히 USAGM은 해외 대상 매체인 VOA를 비롯해 자유아시아방송(RFA), 자유유럽방송(RFE) 등 주요 공영방송을 산하에 둔 독립 정부 기관이다. 이들 매체는 주로 북한·러시아·이란·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등 자유 언론이 위협받는 국가에 뉴스를 제공해 민주주의 가치를 알리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약 2억7000만달러(3900억원)의 연 예산으로 2000여명의 직원을 채용, 한국어를 포함해 49개 언어로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VOA와 RFA는 북한 내부 소식을 자주 보도해 한국에서도 친숙한 매체다.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 직후 VOA에 근무하던 1300명이 휴직처리됐다. 여기엔 백악관에서 질문을 했던 그 기자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 때부터 VOA에 대한 불만을 표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VOA가 친중국·러시아 행보를 보였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VOA는 중국 정부의 압력을 받고 기자를 해고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 기자는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반체제 인사를 인터뷰 한 경력이 있었다. 중국 정부가 해고 압력을 넣었는데 VOA가 이를 수용했다는 내용이다. 또 같은 해 VOA는 러시아 출신 기자를 채용했는데, 과거 그의 반미 선전 영상을 제작한 이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한편 트럼프의 행보가 '언론 통제'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워싱턴DC에 있는 전국기자협회(NPC)의 마이크 발사모 회장은 성명에서 "VOA는 수십년간 전 세계 독자에게 사실에 기반을 둔 독립 저널리즘을 제공했으며 이런 활동은 언론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서 종종 이뤄졌다"고 밝혔다. 국경없는기자회도 이번 조치가 "전 세계 언론 자유를 위협하고,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지지해온 80여년의 미국 역사를 부정한다"고 지적했다.
김하늬 기자 hone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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