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한화오션 시흥R&D캠퍼스를 방문해 임직원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한화 제공] |
한화그룹의 핵심 방산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국내 역대 최대 규모인 3조6000억원의 유상증자 단행 계획을 발표했다. 넉넉한 투자 실탄으로 대형 투자에 나서며 그룹 핵심 사업의 체질 개선이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수장으로 있는 만큼, 방산업에서 ‘글로벌 톱티어’로 도약하는 한편 재계 내 입지를 굳히기 위한 오너의 강력한 의지로도 풀이된다. ▶관련기사 9면
유상증자는 기업이 추가로 주식을 발행해 자본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 사업 확장과 신성장 동력 확보로 이어진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방산·조선·우주항공 등 분야에 실탄을 투입해 글로벌 톱티어로 도약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최근 각국에서 방위비 증액 및 자주국방 강화 움직임이 일고, 미국이 해양방산 및 조선산업 기반 강화를 꾀하는 등 시장 확대 기회가 온다고 판단해 선제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번 유상증자는 오너 일가의 ‘전략적 결단이 반영된 승부수’로도 읽힌다. 김동관 부회장의 진두지휘로 우주·방산 전문기업 정체성 확립에 주력해온 데 이어, 국내 5대 그룹으로 올라서기 위해 본격적인 체급 올리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도 이번 유상증자가 한화의 그룹 위상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화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대기업집단 지정 현황’에서 재계 순위 7위로, 그룹사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HD현대와 5위 자리를 놓고 다툼 중이다.
이번 유상증자를 자금조달 목적별로 살펴보면 1조원은 해외 방산 생산능력 구축, 6000억원은 해외 방산 합작법인(JV) 투자에 6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글로벌 방산 경쟁 속에 계속 늘 것으로 보이는 대공, 포병, 장갑차 등 지상무기체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유럽과 중동 국가들은 현지 생산 투자를 통한 협력을 선호하는 만큼 현지 생산 거점 확보를 위한 선제 투자를 적극 검토한다. K-9 자주포의 뒤를 잇는 천무 다연장 로켓, 레드백 장갑차, 대공방어시스템, 탄약(추진 장약) 등 차세대 핵심 제품군을 육성하기 위한 현지화 전략도 강화한다.
아울러 국내 추진장약(MCS) 스마트팩토리 구축에 6000억원, 사업장 설비·운영 자금에 3000억원을 투입한다. 추가로 3000억원은 무인기 엔진 개발 및 양산시설 구축에 쓰인다. 항공엔진 및 엔진부품 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무인기용 엔진을 개발하고, 글로벌 무인기 업체들과 협력을 확대하며 항공엔진 기술 자립도를 높일 계획이다.
해외 조선소 확보를 위한 지분 투자에도 8000억원이 들어갈 예정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와 싱가포르 다이나맥 조선소를 연계한 ‘멀티 야드’ 전략을 펴고 있다. 18일에는 미국과 호주 등에 조선소를 보유한 오스탈에 대한 전략적 지분 투자를 단행한 바 있다. 트럼프 신정부 들어 미국이 한국 조선업을 최우선 파트너로 꼽는 가운데 현지 시설·지분 투자를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또한 미 해군 함정 조달 및 MRO(유지보수) 시장의 성장이 예상되며 관련 시장에도 적극 진출할 방침이다.
한편, 이번 유상증자는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 공모 방식으로 진행된다. 신주 배정일은 4월 24일, 구주주 청약은 6월 3일부터 이틀간 진행된다. 실권주 일반 공모 청약 기간은 6월 9∼10일이다. 고은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