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 30일 오후 서울 웨스틴조선서울에서 열린 제24-2차 한미 동맹 콘퍼런스에 참석한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
국내 증시가 오랜 부진에서 벗어나 최근 상승세를 타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삼성SDI 등 대기업 상장사들이 잇따라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한 데 대해 투자자들의 반발이 거셉니다.
기습적인 유상증자로 기존 주주의 피해가 커지는 등 증시 밸류업에 역행하는 대기업들의 경영 행태가 끊이지 않는 데다, 감시·규제권을 가진 금융당국도 이를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는 불만입니다.
신규로 자사 주식을 발행하는 유상증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자본 조달을 위한 손쉬운 방식이 될 수 있으나,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지분 희석에 따른 피해가 불가피해 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무분별하고 일방적인 유상증자는 다수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고질적 폐해 중 하나로 지목돼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국내 증시에서는 논란의 유상증자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14일에는 삼성SDI가 시설투자 자금 확충을 위해 2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습니다.
당일 삼성SDI 주가는 6.18% 급락하며 52주 신저가를 기록하는 등 투자 심리가 급격히 냉각됐습니다.
정경희 LS증권 연구원은 당시 유상증자에 대해 "매각 가능한 자산이 있음에도 자기자본 펀딩 방식을 취한 점은 투자자 관점에서 아쉬운 부분"이라며 "당분간 주가에 다운사이드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습니다.
지난해 10월 30일에는 영풍·MBK파트너스와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이 2조 5천억 원 규모에 달하는 유상증자를 기습적으로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고려아연 주가는 관련 공시 직후 하한가로 급락했고, 금융감독원이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한 끝에 유상증자 계획이 철회되는 등 시장의 혼란이 초래됐습니다.
이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를 두고도 회사 측은 어려운 업황 속 지속적 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밝혔으나, 증권가에서는 투자 방향의 타당성과 별개로 유상증자 외에 방법이 없었느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올해 예상되는 연결 영업이익만 3조5천억 원으로 이번 유상증자 규모에 맞먹고, 이후로도 꾸준한 이익 개선세가 기대되는 현재 상황에서 투자금 조달 방식으로 유상증자를 택한 것이 의아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가 지난 18일 장중 78만 원을 넘기며 역대 최고가를 쓴 시점이어서 주주들에게 신주인수권을 주는 주주 배정 유상증자의 부담이 더욱 커지게 됐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삼성SDI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를 중점 심사 대상으로 선정하고는 결론도 나기 전에 긍정적 입장을 밝힌 금감원의 행보도 입길에 오르고 있습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전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공시 직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점 심사 대상으로 심사하겠다고 밝히는 한편 "엄청나게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원장은 지난 19일에도 "삼성SDI의 투자 건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며 "최대한 신속히 투자 자금 조달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심사를 처리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금감원이 지난달 유상증자 집중 심사 제도 도입을 결정하면서 '주식 가치 희석화 우려', '일반 주주 권익 훼손 우려' 등을 배경으로 밝혔음을 고려하면, 긍정적 결론을 예고한 이 원장의 발언은 제도 도입의 취지를 무색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투자자들 역시 대기업 상장사와 금융 당국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한 투자자는 온라인 토론방에서 "주가가 최고가에 달한 시점에서 유상증자를 한다는 것은 기업 마인드 자체가 글렀다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또 다른 투자자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일반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상법 개정 이전에 기어이 한탕을 하고 마는구나"라고 비난했습니다.
실제로 삼성SDI의 유상증자 결정은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튿날 이뤄졌습니다.
이에 "이복현 원장이 상법 개정에 반대한다며 소액 주주를 대변하는 척하더니 결국은 기득권 편이었다. 개미만 피해를 볼 것"이라는 원성도 나왔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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