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방송 듣고 탈출… 北김정은 파티하고 있을 것”
◇ 지한파 허먼 VOA 국장 “독립성 보장 필요”
스티븐 허먼 VOA 국장 |
30년 가까이 VOA에서 일한 베테랑으로 트럼프 1기(2017~2021년) 때 백악관을 출입했던 스티븐 허먼 국장은 2010~2013년 서울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외신기자클럽 회장을 지낸 지한파(知韓派)다. 그는 앞서 트럼프가 미국 대외 원조 기관 국제개발처 폐쇄에 나서자 이를 비판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직무 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는 “북한 군인들도 듣는다는 VOA가 문을 닫는다니 김정은이 지금 파티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 갑작스러운 휴직·해고 통보 이후 동료들의 반응은.
“새 일자리를 찾는 이도 있고, VOA가 어떤 형태로든 살아나리라고 희망을 품는 사람들도 있다. 일관성 있게 (권위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도한 VOA는 오랜 기간 평양·베이징·모스크바의 골칫거리였다. 그런데 (2차 대전 시기 개국한) 1942년 이후 어둠 속에서 빛났던 등대를 (트럼프가) 다서 어둡게 만들려 한다.”
-VOA와 북한의 관계는.
“VOA의 뉴스는 대부분 TV로 방송된다. 다만 북한은 다르다. 여전히 중파·단파 라디오에 의존한다. 북한 주민 대다수는 인터넷은커녕 TV조차 제대로 시청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3년 북한에 열흘간 머문 적이 있는데 당시 북한 군인들로부터 ‘매일 VOA를 듣는다’는 말을 듣고 보람을 느꼈다. 서울에서 만난 탈북민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VOA를 접했을 때 처음에는 미 CIA(중앙정보국)의 선전·선동이라고 생각했지만 계속 들으니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얼마나 억압적인지 종교적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더라. 청취자 중 몇몇은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탈출을 결심했다.”
-VOA와 다른 많은 언론사의 차이점은.
“우리는 미국 정부로부터 100% 예산을 지원받으며 미국을 위해 일하지만 정부로부터 간섭받지 않는다. 1976년 제럴드 포드 당시 대통령이 ‘편집의 독립성은 법으로 보장되며, 기자들은 정부 관리나 정치인들의 영향이나 압박, 보복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내용의 VOA 헌장에 서명했고 이는 의회에서도 통과됐다. VOA는 공정성·균형성이 법적으로 의무화된,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기관이다.”
-한국에서의 경험이 당신에겐 어떤 의미인가.
“한국엔 5·18 민주화 운동이 벌어진 다음 해인 1981년에 처음 갔다. 그때 민주화에 관여한 많은 이들을 만났고, 그들의 용기에 감명받았다.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인 북한 김정은은 항상 (VOA의) 기삿거리가 됐다. 한반도는 세계에서 속도가 가장 빠른 곳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참, 나는 소주보다 막걸리파다, 하하.”
- 트럼프 1기 때 4년 내내 백악관에 출입했다. 그는 왜 이번 결정을 내렸을까.
“전용기에 수백 번 탑승했고, 트럼프에도 백번 넘게 질문을 던졌다. 그의 마음을 내가 읽을 수는 없다.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그가 나를 다른 백악관 출입 기자들보다 더 좋게도, 나쁘게도 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VOA에 대해 공개 언급한 적은 있지만 나를 콕 집어 칭찬한 적도 비판한 적도 있다. 가끔 질문을 비꼬거나 ‘좋은 질문이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말했을 뿐이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다면.
“지금은 (정직 처분으로) 보도를 할 수 없지만 내 직업은 여전히 기자다. 다만 내가 VOA로 돌아가서 일하기는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상황이 나아지면 (VOA가 아니더라도) 계속 누군가를 위해 보도를 하고 싶다. 아울러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정학에 대한 학술 연구도 많이 하려 한다. 내가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폴란드 민주화는 美방송 덕분… 北주민에게 희망 줘”
◇ 리피엔 前 RFE 대표 “언론의 위기”
테드 리피엔 전 RFE 대표 |
테드 리피엔 전 자유유럽방송(RFE) 대표는 공산주의 치하의 폴란드에서 태어나 1970년 미국으로 이민 왔다. 1973년부터 VOA에서 30년을 넘게 일했고, 폴란드어 서비스를 담당하며 1980년대 말 모국에서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민주화의 봄’이 오는 과정을 목격했다. 트럼프 정부 1기 때 RFE 대표를 지낸 뒤 지금은 자유 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19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VOA·RFE 같은 미 관영 매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동유럽이 민주화될 수 있었다”라고 했다.
−이번 일을 어떻게 보고 있나.
“매우 불행한 상황이다. 기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큰 혼란에 빠졌고, 독재자들은 기뻐하고 있다. 거의 모든 이에게 비극이지만 북한 같은 권위주의 국가 국민들에겐 더 비극이다. VOA나 RFE는 이들이 자국에 대해 검열되지 않은 뉴스를 접하는 몇 안 되는 출처이기 때문이다.”
−당신도 공산국가 폴란드 시절 RFE를 들었나.
“공산주의 치하에서 10대를 보내면서 즐겨 들었다. 그래서 공산국가 국민이 차단된 정보를 접할 때 어떤 기분이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폴란드는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고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의 일원이다. 폴란드가 자유를 얻기까지 VOA와 RFE의 역할이 분명 있었다."
−북한 주민들에게도 VOA·RFA가 영향을 끼쳤을까.
“북한에 민주주의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일, 혹은 5년 후, 또는 그 이상 걸릴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방송들이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방송을 듣고 ‘미국 사람들이 우리가 자유롭기를 바라는구나’ ‘언젠가 우리를 도울지도 모르겠네’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내가 폴란드에서 미 방송을 들으며 했던 생각이기도 하다. 또 대규모 봉기 등 소요 사태가 발생했을 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주는 VOA·RFE 같은 방송이 있다면 유혈 사태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들 방송에서 일한 경험 중 무엇이 기억에 남나.
“로널드 레이건 정부 때 VOA 폴란드어 서비스를 담당했다. 폴란드에선 반체제 운동이 상당하던 시절이었다. 폴란드 민주화를 주도하고 훗날 대통령까지 된 레흐 바웬사, 폴란드 추기경이었을 당시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등을 인터뷰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인물들의 생각을 방송으로 알림으로써 공산주의 정권을 유혈 사태 없이 몰락시키는 데 기여했다.”
−유럽 대부분 나라가 민주화됐는데 아직 RFE의 역할이 남았나.
“RFE는 중부 유럽에는 더 이상 방송을 송출하지 않는다. 하지만 러시아에 대한 방송은 여전히 필요하다. 중앙아시아 국가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에도 방송을 한다. (VOA·RFE를 총괄하는) 미 글로벌미디어국(USAGM)의 관료주의에 문제가 있다 해도 이런 대규모 해고엔 동의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인다면 이를 중국·러시아·이란·쿠바·북한 등 권위주의 국가 주민을 위한 뉴스에 투입해야 한다.”
-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39
국제퀴즈 풀고 선물도 받으세요! ☞ https://www.chosun.com/members-event/?mec=n_quiz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