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교회의 목사 성민찬(류준열·왼쪽)은 아이가 실종되자, 교회를 찾아왔던 전과자 권양래(신민재·가운데)를 의심한다. 실종 사건 담당 형사인 이연희(신현빈)도 유력한 용의자인 권양래를 쫓기 시작한다./넷플릭스 |
이번엔 믿음이 만든 지옥이 펼쳐진다.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으로 글로벌 차트 1위에 올랐던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가 영화 ‘계시록’(21일 넷플릭스 공개)으로 돌아왔다. 신실한 목사와 집요한 형사가 실종 사건의 범인을 쫓는 심리 스릴러. 개척 교회 목사인 민찬(류준열)은 범인을 단죄하는 것이 신의 계시라 믿고, 형사 연희(신현빈)는 동생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 믿고 죄책감에 짓눌려 범인을 쫓는다. 18일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연상호 감독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인물들의 파멸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그래비티’ ‘로마’ 등을 연출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로 참여해 눈길을 끈다. 칸 국제영화제 초청작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부터 연 감독을 눈여겨본 쿠아론 감독이 먼저 러브콜을 보냈다. 쿠아론 감독은 “‘사이비’를 포함해 연 감독의 작품을 쭉 챙겨봤고, 특히 감명 깊었던 것은 영화 ‘부산행’이었다”면서 “그의 작품 세계가 흥미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장르 영화를 통해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방식 때문”이라고 했다.
연 감독은 쿠아론 감독과 지극히 한국적인 영화를 어떻게 글로벌 관객에게 소구할 수 있을지 논의했다. “쿠아론 감독은 감독의 비전(vision·방향성)을 굉장히 중요시했다. 촬영, 편집, 마케팅, 마지막 예고편까지도 감독의 의도를 잘 반영하고 있는지, 최초의 비전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대화를 많이 나눴다.”
'계시록' /넷플릭스 |
목사와 형사, 전과자까지 세 사람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치밀하게 설정했다. 세 배우의 심리 묘사가 중요했다. 류준열과 신현빈의 연기도 안정적이지만, 전과자 권양래 역을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 신민재에게 맡긴 게 신의 한 수였다. 갓 출소한 전과자 같은 외양으로 첫 장면부터 관객에게 믿음을 심어준다. 누가 봐도 범인 같지만, 자세히 보면 무고한 것 같기도 한 입체적인 연기로 끝까지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좀비나 괴물이 창궐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전작들과 달리, 이번엔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현실적인 이야기다. 연출할 때도 컴퓨터 그래픽(CG)을 최소화하고, 세트보다는 야외 촬영을 하고 자연광을 활용하는 등 사실적인 구현에 노력을 기울였다.
예측 불허한 전개로 잘 쌓아 올린 이야기가 다소 허무하게 마무리되는 점은 아쉽다. 전작인 ‘지옥’에서도 그랬듯, 초반의 강렬한 전개에 비해 결말은 휴머니즘으로 황급하게 봉합된다. 이번에도 맹목적인 믿음, 나약한 인간에 관한 탐구로 감독의 색깔은 뚜렷하게 드러나지만 기시감이 들기도 한다. 연 감독은 “제가 만든 작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분이라면, ‘계시록’ 한 편만 보시면 된다. 저만의 색깔을 응축해 담았다”고 했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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