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제 2의 엔비디아'로 불리는 브로드컴에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인 HBM3E를 공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해 기술 부진으로 HBM3E 시장에서 SK하이닉스(000660)·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경쟁사에 밀렸던 삼성전자는 이재용 회장이 강조한 ‘사즉생’의 각오로 경쟁력 복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브로드컴의 HBM3E 8단 퀄 테스트에서 상당히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 브로드컴이 요구하는 이상적인 HBM3E 속도를 만족하면서 공급망 진입이 임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브로드컴과 삼성전자의 HBM3E 협력이 크게 진전됐다고 알려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쌓아 만든 반도체로 AI 칩에 탑재되는 필수 메모리다. 브로드컴은 HBM3E 이전까지 삼성전자 제품을 주력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HBM3E에서는 SK하이닉스의 제품 공급을 먼저 승인하면서 공급망에 변화를 준 바 있다. 엔비디아에도 HBM3E를 독점 공급하다시피 하는 SK하이닉스는 브로드컴 주문량 증가에 따라 올 해 HBM용 D램 생산 능력을 크게 늘리는 계획까지 잡았다.
하지만 브로드컴과 SK하이닉스의 협력 관계를 뚫고 삼성전자가 HBM 공급망에 다시 진입한다면 또 새로운 변곡점이 생길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세계 D램 업계 1위다. 그러나 최근 HBM 분야에서 큰 부진을 겪고 있다. 특히 엔비디아 공급망에서는 지난해 초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경쟁사가 일찌감치 퀄(승인) 테스트를 통과한 HBM3E 8단 제품에서 지지부진한 결과로 자존심을 구기고 있다.
최근 삼성은 엔비디아에 HBM3E ‘개선 제품’ 샘플을 공급하며 퀄 통과를 노리고 있다.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19일 수원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 엔비디아에 대한 HBM3E 공급 현황에 관해 “현재 고객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제품 경쟁력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도 삼성 HBM에 대한 기대감을 피력했다. 19일(현지 시간) 엔비디아 연례 개발자회의(GTC 2025)가 열린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가진 글로벌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삼성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며 “삼성은 베이스다이에서 맞춤형 칩(ASIC)과 메모리를 결합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브로드컴 이외 다른 빅테크들의 HBM 공급망에도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리고 있다. 최근 삼성은 엔비디아와 함께 AMD의 HBM 관련 실사를 받았고 아마존 역시 삼성 HBM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삼성전자는 HBM4와 커스텀 HBM에서 기술 승부수를 걸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메모리인 10㎚(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6세대(1c) D램을 HBM4에 적용하기 위해 기존 설계보다 칩 사이즈를 키우고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구조를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부회장은 차세대 제품에 대해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차질 없이 준비 중”이라고 강조했다.
증권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DS부문이 HBM3E 시장 진입과 시황 개선에 힘입어 올해부터 회사의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보고서를 통해 올해 DS부문의 영업이익이 19조 1250억 원, 내년과 내후년 영업이익이 각각 36조 300억 원, 41조 6770억 원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모건스탠리 측은 “D램 시장이 빠르게 ‘계곡(침체 상황)’ 너머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해령 기자 hr@sedaily.com실리콘밸리=윤민혁 특파원 beheren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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