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려를 끼쳐 송구"…고개 숙인 오세훈 서울시장
일관성 없는 정책에 시장 혼란 가중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발표를 위해 브리핑실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
[더팩트|이중삼 기자] 섣부른 부동산 정책 발표가 시장에 화를 키웠다. 서울시가 최근 '토지거래허가구역' 관련 이랬다가 저랬다가 입장을 번복해서다. 시는 지난달 시민 재산권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 일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해제했다. 그러나 단기간 급등한 강남권 집값에 놀란 시는 35일 만에 입장을 뒤집었다. 규제 지역 범위도 용산구까지 확대했다. 집값 상승세가 두드러지고 있는 지역을 아예 묶었다. 일관성 없는 정책에 시장 혼란만 부추겼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국토교통부·시는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관계기관 회의'를 열고,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 모든 아파트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지정 기간은 이달 24일부터 오는 9월 30일까지다. 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2년간 실거주 목적 매매만 허용된다. 기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돼 있는 압구정동·여의도동·목동·성수동 등은 시장 과열 우려가 완전히 해소되기 전까지 묶어두기로 했다.
거래량도 크게 늘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거래량이 가장 많은 곳은 송파구(497건)다. 강남·강동·성동·마포구는 각각 482건·380건·360건·319건을 기록했다. 그 외 지역은 거래량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시는 줄곧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가 강남권 집값 상승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했다. 그러나 관련 지역에서 집값이 폭등하는 현상이 지속되자, 상승을 부추긴 원인이라고 인정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강남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의 변동성이 커졌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번 재지정에 대해 "서울과 수도권 지역 주택가격이 이례적으로 빠르게 오르고 있다"며 "이런 움직임이 주변으로 확산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시장 안정화를 위한 선제 대응이 시급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지난달 강남권 내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한 지 35일 만에 다시 재지정하기로 했다. 집값 상승세가 심상치 않아서다. /더팩트 DB |
◆ "단기적 거래 억제 효과 있지만…장기적은 의문"
정책 발표 35일 만에 입장을 번복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때문에 정책 마련 과정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지영 신한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 수석은 "부동산 정책은 규제든 완화든 단기적으로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지정 기간 동안 투자 수요가 사실상 차단되면서 시장이 왜곡된 상태였다"며 "해제 이후 가격 급등 현상이 나타난 것은 규제 완화 후 시장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이를 곧바로 다시 규제하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과 시장 자율 조정 기능을 감안할 때 아쉬운 부분이다"고 꼬집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단기간 내 번복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강남권의 단기적 거래 억제 효과는 있을 수 있다. 다만 언제까지 효과가 유지될 수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정책의 일관성이 부족하면 시장이 오히려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락가락 정책에 신뢰도가 무너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남의 한 공인중개사는 "한 달 만에 손바닥 뒤집은 정책에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시장도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며 "발표 직후 집주인들이 호가를 1억원 내려서라도 빨리 팔아달라는 전화가 오고 있다"고 했다.
한편 부동산 정책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에 대한 일부 비판도 나온다. 잠·삼·대·청 일대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적극 반대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시장 과열을 방치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실제 박 장관은 지난 13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주택시장에 대한 규제 장치가 아니다. 토지에 대한 투기를 막기 위한 건데, 시장까지 적용해 무리한 면이 있다"며 "서울시장의 권한 범위 내에서 (규제 해제를) 행사한 것이고, 국토교통부도 지자체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적극 반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js@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