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던 여성 군무원을 살해한 뒤 주검을 훼손하고 북한강에 유기한 양씨가 지난해 11월5일 오전 춘천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이 끝난 뒤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직장 동료이자 내연관계인 여성 군무원을 살해하고 주검을 훼손한 뒤 북한강에 유기한 육군 장교 양광준(39)이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돼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춘천지법 형사2부(재판장 김성래)는 20일 살인, 사체손괴, 사체은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양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를 살해한 뒤 피해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생활 반응을 조작하고, 피해자를 사칭해 모친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는 등 범행 후 정황이 매우 좋지 않다. 주검을 손괴하고 은닉한 전후 과정을 살펴보면 그 방법이 매우 잔혹해 피해자 인격에 관한 최소한의 존중도 찾아볼 수 없다”고 질타했다.
양씨는 피해자의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언행과 욕설, 협박으로 인해 극도의 스트레스와 공포를 느끼고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계획 범행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입을 맞추면서 주의를 분산시킨 뒤 살해했다. 범행 방법에 비춰보면 피해자를 살해하겠다는 확정적 고의를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는 이 사건 이전에도 몇 차례 피고인과의 관계를 밝히겠단 말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사건 당일 재차 같은 취지의 말을 들은 피고인이 종전에 없던 살인의 확정적인 고의를 가지게 될 정도의 충분한 동기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범행 직후 치밀하게 이뤄진 증거인멸 정황도 우발 범행한 사람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다. 구체적인 범행 일시와 장소까지 특정해서 계획한 것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피해자를 살해할 경우에 대비해서 증거인멸을 계획하는 등 사전에 계획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잘못을 후회하면서 반성문을 냈지만, 한편으로는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부담감과 괴로움을 토로하면서 우발 범행임을 변소하고 있다. 본인이 저지른 범행의 심각성과 중대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양씨는 지난해 10월25일 오후 3시께 경기도 과천의 한 주차장에 주차된 차 안에서 여성 군무원 ㄱ(33)씨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양씨는 ㄱ씨를 살해한 뒤 옷으로 주검을 덮어놓고 퇴근 후 철거가 진행 중인 인근 공사장에서 주검을 훼손했다. 다음날 강원도 화천군에 있는 북한강으로 이동해 주검을 유기했다.
양씨의 범행은 지난해 11월2일 오후 2시36분께 화천군 화천읍 화천체육관 앞 북한강에서 주검 일부가 수면 위로 떠올라 이를 본 주민이 신고하면서 꼬리가 잡혔다. 주검에서 확보한 지문과 디엔에이(DNA) 등을 통해 ㄱ씨의 신원을 확인한 경찰은 휴대전화 통화기록과 폐회로텔레비전(CCTV) 분석, 피해자 가족 탐문 등을 통해 양씨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했으며, 지난달 3일 저녁 7시12분께 서울시 강남구 일원역 지하도에서 모자와 마스크를 쓴 채 걸어가던 양씨를 긴급체포했다.
조사 결과 양씨는 범행 당일 아침 출근길에 연인 관계이던 ㄱ씨와 카풀을 하며 이동하던 중 말다툼을 했고 더는 관계를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살해를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사건 당시 중령 진급 예정자인 양씨는 군무원 신분인 ㄱ씨와 경기도 과천의 한 부대에서 함께 근무하는 사이였다. 이미 결혼해서 가정이 있는 양광준과 달리 ㄱ씨는 미혼이었다. 양씨는 이 부대에 근무하다가 범행 사흘 후인 지난 10월28일 서울의 한 부대로 자리를 옮겼고, 임기제 군무원인 ㄱ씨는 10월 말 임기가 끝날 예정이었다.
범행 은폐와 증거 인멸 시도도 확인됐다. 살해를 결심한 양씨는 범행 은폐를 위해 사건 당일 ‘위조 차량번호판’을 휴대전화로 검색했으며, 실제 주검을 유기하러 이동할 때 차량번호판을 위조해 경찰 추적을 피하려 했다. 또 범행 이후 주검이 떠오르지 않도록 주검을 담은 봉투에 돌덩이를 넣었으며, 피해자 휴대전화를 이용해 피해자 가족과 지인, 직장 등으로 문자를 보내 피해자가 살해당한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
사건 이후 양씨는 군 당국으로부터 ‘파면’ 징계처분을 받았다. 앞선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양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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