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참고용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성폭행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혔다면 단순 강간죄가 아닌 ‘강간치상(강간 결과 상해에 이름)’으로 가중 처벌된다. 그런데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혔으나 정작 성폭행은 미수에 그쳤다면 강간치상죄가 성립할까. 대법원은 “강간치상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대법원장 조희대, 주심 대법관 권영준)는 20일 “특수강간의 실행에 착수해 미수에 그친 경우라도 피해자가 상해를 입었다면 특수강간치상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판례 변경이 필요하거나 대법관 간 의견이 갈리는 사건 등을 판결한다.
이어 “특수강간치상죄의 기수범이 아닌 미수범으로 처벌하는 것은 균형에 맞지 않다”며 “피고인에게 유리하다는 사정을 들어 처벌의 불균형을 만드는 것은 형사사법의 정의에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수강간치상죄가 처음 도입된 성폭력처벌법의 제정 과정을 고려했을 때 미수 감경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입법자의 실질적인 의사에 반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대법정 앞 로비. [대법원 제공] |
사건은 2020년 3월께 서울 서초구의 한 주점에서 발생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 몰래 수면제인 졸피뎀을 숙취해소 음료에 넣어 마시게 했다. 이어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피해자의 배우자와 지인이 지속적으로 “어디냐”, “숙소 몇 호에 데려다줬냐” 등 연락하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1심은 강간치상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가해자들에게 각각 징역 6년, 징역 7년 실형을 선고했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26민사부(부장 정진아)는 2023년 1월, 위와같이 선고했다.
1심 판결에 대해 가해자들은 불복했다. 2심 과정에서 가해자 중 한 명은 10대 대형로펌 변호사를 새로 선임했으나 2심도 강간치상 혐의가 성립한다고 봤다.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12-1형사부(부장 김길량)도 2023년 7월께 가해자들에게 각각 징역 5년, 징역 6년 실형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2심에 이르러 자신들의 범행을 인정하며 잘못을 후회하고 있다”며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며 양형에서 다소 감형을 택했다.
대법원도 원심(2심) 판결이 정당하다며 강간치상죄가 성립한다고 봤다.
대법원 관계자는 “그동안 학계를 중심으로 해당 쟁점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며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특수강간치상죄의 미수범 성립을 부정하는 법리가 여전히 타당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별도의 입법이 없는 한 특수강간치상죄의 미수범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