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찾은 삼양에코테크 시화공장 내 폐페트병을 선별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모습. [고은결 기자] |
[헤럴드경제(시흥)=고은결 기자] “휘이잉~”, “쉬이익~”
지난 18일 찾은 경기 시흥시 삼양에코테크 시화공장. 사람 키 두 배 높이로 쌓인 압축 페트병 묶음(베일)들이 쌓인 적재장을 지나 들어선 공장에선 쌀쌀한 바람이 불고, 다양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너무 놀라지 말라”는 이건호 삼양에코테크 대표의 당부처럼, 현장은 폐페트병의 이물질과 라벨을 걸러내기 위한 선별기의 강풍, 분쇄기의 소음이 섞여 요란했지만 활력이 가득했다.
삼양에코테크 이건호 대표. [삼양에코테크 제공] |
이곳에선 폐페트병을 깨끗한 페트 조각으로 환골탈태 시키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대지면적 5350평 규모의 이 공장에는 매년 4만5000톤 규모의 폐페트병을 처리해 연간 3만2000톤의 재활용 플레이크를 만든다. 이 중 재활용 칩에 쓰이는 플레이크가 2만2000톤이다. 단일 공장에서 페트 플레이크와 페트칩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은 국내에서 이곳뿐이다.
삼양에코테크에서 생산하는 페트 플레이크. [삼양에코테크 제공] |
폐페트병은 선별과 분쇄, 세척, 건조로 이어지는 약 20단계의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폐트 플레이크가 된다. 우선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려진 폐페트병은 진동을 줘 해체해 비중과 크기별로 선별한다. 또한 라벨과 금속을 분리한 뒤, 6회의 자동 광학 시스템 선별 과정을 거쳐 투명 페트병과 유색 폐트병으로 분류된다. 따로 골라진 투명 페트병은 잘게 분쇄해 손톱보다 작은 플레이크 형태로 만든다.
이후 약품 세척 2회, 헹굼 4회, 건조 및 플레이크 광학 선별 4회를 거쳐 드디어 ‘고순도 페트플레이크’가 된다. 물리실험실과 유기실험실에선 매일 시료를 채집해 자체 품질평가도 진행한다. 이렇게 탄생된 정결한 페트플레이크는 산업자재나 부직포 제조 등으로 쓰인다. 여기에 추가 9단계를 거치면 작은 알갱이 형태의 페트칩으로 만들어져, 식품 용기용·섬유용 등으로 쓰인다. 재활용 페트칩 생산공정에서는 압출과 성형, 결정화, 고상 중합 등 고난이도의 공정이 진행된다.
삼양에코테크의 재활용 페트칩 생산공장. [삼양에코테크 제공] |
플라스틱 규제 강화에 미소…“4분기부터 시장 개화”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드는 재활용 페트칩은 플라스틱 규제가 강화하며 쓰임이 늘어날 전망이다. 환경부는 최근 플라스틱 재생원료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하위법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은 플라스틱 재생원료 의무사용 대상자를 ‘페트 원료 생산자’에서 음료 제조사와 같은 ‘원료 수요자’로 변경한 게 골자다. ‘버진 칩’이 재활용 칩보다 싸고 품질도 좋지만, 이를 만들 때 발생하는 환경적 폐해 등을 고려한 조치다. 버진 칩은 1kg당 1300원, 재활용칩은 1kg당 2200원 수준이다.
아울러 환경부는‘재활용지정사업자의 재활용 지침 고시’도 개정, 재생원료 사용 의무 이용목표율을 기존 3%에서 10%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2030년까지는 재생원료 사용 의무 이용목표율을 단계적으로 30%까지 늘리고, 의무사용 대상자를 연간 1000톤 이상 최종 제품 생산자로 확대한단 계획이다.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을 발표하며 페트병 생수 및 음료를 제조하는 10여개사가 연간 약 2만톤의 재생원료를 사용할 것으로 추산된다. 삼양에코테크의 시설용량은 이를 전량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인 셈이다. 이건호 대표는 “내년 1월부터는 (재활용 칩 10% 사용이) 의무사항이 되기 때문에 하반기부터 재활용 칩을 사용하기 위해 음료회사들이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에 따라 식용용기 재활용 칩 시장은 올해 4분기부터 개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삼양에코테크 시화공장 전경. [삼양에코테크] |
‘혼합 수거 폐페트병’ 사용한 재활용 페트칩도 인증
이런 가운데 삼양에코테크는 지난달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재활용 페트칩을 식품 용기용 재생원료로 인증받았다. 앞서 삼양에코테크는 해당 소재들의 용도를 식품 용기로 확대하기 위해 인증 절차에 돌입, 작년 11월 환경부로부터 페트플레이크의 적합성을 인증 받았다. 이번에 식약처에서 재활용 페트칩까지 인증을 획득하며 자체 생산하는 재생원료를 식품 용기에 사용하기 위한 모든 인증을 갖추게 된 셈이다.
특히 국내 최초로 투명·유색이 섞여 수거된 폐페트병으로 만든 페트칩이 ‘식품 용기용’으로 인증받았단 점에서 주목됐다. 기존에는 페트병 중에 별도 수거된 투명 폐페트병만 재활용 소재로 생산할 수 있었다. 국내 전체 페트병 베일 중 투명병만 모은 베일은 지난해 기준 고작 7%에 그쳤다. 이에 93%의 혼합 베일도 재활용할 수 있어야 한단 인식이 늘었고, 환경부는 지난해 식품 용기용 재생원료의 기준을 투명 폐페트병에서 혼합 폐페트병까지 넓혔다.
다만 인증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이건호 대표는 이런 성과를 이뤄내기까지 1년반의 연구개발 기간이 소요됐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이 기간 품질 향상 노력도 상당히 했고, 정부기관을 설득하는 작업도 오랜 기간 걸렸다”며 “우리 제품 외에 중소기업에서 만든 제품 품질까지 주도적으로 분석해 환경부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재활용 시장 커지려면 인센티브도 필요”
페트칩 같은 재활용 소재는 전 세계적으로도 사용 의무가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EU)은 식품용 페트병을 제조할 때 재생원료 사용 비율을 2025년까지 25%, 2030년까지 30%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건호 대표는 국내에서도 재활용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패널티 외에 인센티브 또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럽은 재활용 시장 활성화를 위해 의무 제도 도입, 플라스틱 소비세, 각종 조세를 통해 패널티를 엄격히 부과한다”며 “국내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도 패널티와 함께 원가 부담이 있는 음료생산업체 등에 인센티브를 함께 주는 방안이 도입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일부 국가에서 이른바 ‘그린워싱’ 제품이 들어올 수 있는만큼, 외국산 재활용 페트가 국내에 공급되지 않도록 규제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해외에서 나오는 쓰레기로 만든 제품을 우리가 소비하는 건 맞이 않다”며 “(외국에서) 화학적 재활용 제품이 들어오더라도 덤핑 가격으로 유통돼 물리적 재활용 시장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삼양에코테크는 지난 2022년 말 삼양패키징의 페트 재활용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설립됐지만, 삼양그룹의 재활용 페트병 사업은 30여년간 이어져왔다. 이건호 대표는 “ 사회공헌 차원에서 수익을 바라보지 않고 재활용 사업을 영위해야 한단 (선대 명예회장의) 지침으로 지금의 재활용 사업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삼양에코테크는 지난 2022년 ‘대중소기업 폐플라스틱 재활용 상생협약’ 체결에 따라 플레이크 생산 설비 확대가 불가능해, 향후 중소기업의 제품을 구매해 칩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