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봉 2만원 차이에 세액공제는 30만원이나 차이가 나요. 이게 맞나요?” 직장인 김형준(35) 씨는 올해 수당이 소폭 올랐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연봉이 아슬아슬하게 5500만원을 넘어가면서 세액공제율이 줄어들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김 씨는 “수당은 10만원도 안 되게 오르지만 연말정산에서 포기해야 할 연금 세액공제는 무려 30만원에 달한다”며 “정부가 연금을 장려한다면서 왜 이런 차등을 두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정부가 퇴직연금을 장려하면서도 소득에 따라 세액공제율을 차등 적용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회에서도 연봉과 관계없이 세액공제율을 16.5%로 통일하자는 법안이 발의돼 논의가 본격화될지 주목된다.
▶단돈 2만원에 환급액은 30만원 차이=1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382조4000억원으로 전년(335조9000억원) 대비 46조5000억원(13.8%) 증가했다. 2018년(190조원)과 비교하면 5년 사이 2배 규모로 성장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작년 말 기준으로 적립금이 43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직장인들이 절세 계좌로 연금저축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을 애용하면서 더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연금저축만 있다면 최대 600만원까지, IRP는 단독 또는 연금저축를 합산한다면 최대 900만원까지도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기금 고갈 한계를 보완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사적 연금을 준비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취지인 것이다. 그러나 물가 상승률을 반영하지 못한 채로 연봉 5500만원을 기준으로 세액공제 혜택을 차등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연간 급여 5500만원(종합소득 4500만원) 이하일 경우 16.5%, 5500만원 초과 시 13.2%의 세액공제를 받는다. 900만원을 꽉 채워 넣었다면 각각 148만5000원, 118만8000원을 연말정산에서 돌려받는다. 연봉이 5499만원과 5501만원은 단 2만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연말정산에서 돌려받는 금액은 30만원 가량 차이가 나는 ‘역진적 모순’이 발생하는 셈이다.
▶중도 해지하면 손해…연금보험으로 대체도=심지어 연봉 5500만원을 초과한 직장인이 연금을 중도 해지하면 더 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기존에 세액공제 혜택을 받았던 납부액과 운용 수익에 대해 16.5%의 기타소득세가 일률적으로 부과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금까지 공제 혜택을 받은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토해낼 수 있다는 얘기다.
은퇴설계 전문가인 조재영 웰스에듀 부사장은 “연봉 5500만원 이상인 직장인은 환급받을 땐 13.2%를 적용받지만 중도해지로 반납해야 할 땐 16.5%로 더 많이 세금으로 반납해야 한다”면서 “일단 가입한 경우라면 해지하지 않은 게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이렇다 보니 고액 자산가들은 연금보험을 대안으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차라리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염두에 두고 세액공제 대신 비과세 혜택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조재영 부사장은 “특히 변액연금은 펀드를 골라서 운용을 할 수 있다”며 “높아진 관심에 지난해 보험업계도 연 7~8%대 최저보증 변액연금보험을 잇따라 출시했다”고 설명했다.
▶“소득 관계없이 16.5%로 일원화해야” 지적도=전문가들은 연금을 활성화하려면 세액공제율을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2050년대로 고갈될 국민연금을 대신해서 연금 저축을 장려하는데, 고소득자가 덜 돌려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에서다.
또 하방경직성이 강한 연봉 특성을 고려하면 ‘5500만원 기준’도 합리적이지 않다는 진단도 제기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300인 이상 기업에 취직한 대졸 정규직 사원의 초임(初賃)이 2023년 처음으로 연간 5000만원(5001만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김동엽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상무는 “세액공제율을 16.5%로 통일하면 고소득자의 연금 가입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반면 저소득층은 저축 여력이 부족해 세액공제 혜택이 있어도 받기 어려운 만큼, 연금 수령 시 비과세 혜택을 부여하는 등 보강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서도 연금 세액공제율을 16.5%로 일원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지난달 박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퇴직연금 계좌 납입액의 세액공제율을 16.5%로 통일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은 “국민이 스스로 노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제도적 지원을 강화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유혜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