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가 19일 확정 공고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8년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30테라와트시(TWh)에 달할 전망이다. 2025년 예상 소비량(8.2TWh)보다 265% 늘어난 수치다. 30TWh는 2023년 국내 전체 전력 소비량(546TWh)의 5.5%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만큼 전기 수요는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폭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비할 최우선순위 과제로 전력망 확충을 꼽았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균형있게 보급하면서 기업에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데이터센터의 지역 분산을 유도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또 ‘브리지’ 발전원으로 가스화력발전소가 일정 부분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제언도 내놨다.
"전국적 전력망 구축이 최우선"
국내 전기 수요 증가분의 상당 부분은 AI 데이터센터가 차지한다. 2023년 8월까지 한국전력에 전기 사용을 신청한 데이터센터(누적 기준)는 2027년 117건에 달했다. 계약 전력을 기준으로 보면 7343메가와트(㎿)다. 이 중 한전이 실제 공급 가능한 건수는 76건(4718㎿)으로 파악하고 있다. 2023년 데이터센터 계약 용량은 776㎿였다. 이 계획대로라면 4년 새 데이터센터 소비가 6배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제11차 전기본에서는 이 같은 전망에 근거해 2038년 데이터센터 최대 전력 수요를 6.2기가와트(GW)로 예측했다.
데이터센터의 안정적인 가동은 전력망 확충에 달렸다. 전국에서 생산한 전기를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일이 앞으로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전력 수요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반면 생산은 영호남, 충청, 강원 등 지방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기를 생산하고도 필요한 곳에 제때 공급하지 못하는가 하면 발전소를 설립하고도 놀리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호남지역 태양광과 강원 화력발전소가 단적인 예다. 다행히 2월 국회에서 전력망확충법, 해상풍력특별법, 고준위방폐장법 등 에너지 3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전력망 확충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봤다.
전력망 확충을 위한 재원 확보 방안도 시급하다. 정동욱 중앙대 시스템공학부 교수는 "2023년 한국전력이 세운 10차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에 따르면 2036년까지 56조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전-재생에너지 균형 갖춰야"
전문가들은 AI 확산에 따라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선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균형적인 발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탄소중립이 국제적인 과제이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를 접을 수는 없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좋은 기술은 원전"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원전이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선 재생에너지와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정동욱 교수는 "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조화롭게 끌고 가야 한다. 현재로서는 이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려면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국내에선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높기 때문이다.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2023년 하반기 기준 한국 태양광 균등화 발전비용(LCOE)은 ㎿h당 111달러로 인도(47달러), 중국(57달러), 호주(88달러)보다 크게 높았다. 육상풍력의 LCOE는 ㎿h당 120달러로 조사국 중 두 번째로 높았다.
이 비용은 한국전력에 전가되고 결국은 국민이 부담할 수밖에 없다. 값싼 전기요금의 혜택을 누리면서 재생에너지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정동욱 교수는 "재생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설비 용량의 50% 육박하는 백업 전원이 필요하다"며 "그만큼 비용이 비싸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LNG 발전 ‘브리지’ 역할
수도권의 부족한 전력 공급을 위한 대안으로 액화천연가스(LNG) 열병합 발전소의 역할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소형모듈원자로(SMR)가 차세대 AI 데이터센터 발전원으로 조명받고 있지만 실제 상용화는 2030년대 중반께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SMR 도입 초기에는 대형 원전에 비해 발전단가도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대형 원전에 비해 SMR이 안정성이 강화됐다고 하지만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기에는 또 상당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그 간극을 LNG 발전소가 채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기업들은 수도권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싶어하지만 전력망 부족, 전력계통영향평가 등 정부 규제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수도권에 LNG 열병합 발전소를 지어 데이터센터와 연계해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먼 곳에서 전력을 끌어오기 위해 송전선로를 새로 깔지 않아도 되는 점이 장점이다.
LNG 열병합은 LNG를 연로로 전기를 생산하고, 이때 발생하는 열을 난방 및 온수에 이용하는 방식이다. 기존 석탄 화력에 비해 탄소배출이 절반에 불과하고 지역에 열과 온수를 공급하기 때문에 주민들의 반대도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손양훈 교수도 “수도권 등 데이터센터가 필요한 지역에 가스발전소를 지을 수 있게 하면 전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석탄발전소에 비해 친환경적이기 때문에 ‘브릿지 연료’로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센터 지역 분산 ‘인센티브’
AI 전기 수요의 지방 분산을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친환경 에너지 비중을 늘리고 수도권 전력 과밀화를 막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을 시행 중이다. 분산에너지란 대규모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별로 분산해 독립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체계를 뜻한다. 그 지역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 원칙을 적용한다.
그 일환으로 오는 6월부터 분산에너지특화지역(분산특구)을 지정할 계획이다. 분산특구로 지정되면 태양광, 풍력, 수소연료전지 등 분산에너지 사업자가 전력 시장을 거치지 않고 데이터센터 등 전기 사용자에게 직접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10㎿ 규모 이상 전기를 사용하는 사업자에 대해 전력계통영향평가에서 우대한다.
전문가들은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대규모 전력 소비 시설의 지방 이전을 촉진하려면 기업에 더 많은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IT기업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데이터센터를 지역으로 가게 하려면 확실한 유인책이 필요하다"며 "저렴한 전기 요금, 세금 혜택, 정주 여건 제공과 같은 유인책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무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석좌교수는 "정부가 데이터센터에 대한 주민 반대, 토지 비용과 같은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사회적 갈등 비용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단순히 데이터센터의 지역 분산, 균형 발전 측면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에 대한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국가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에너지 정책을 시장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동욱 교수는 "지금은 전기요금, 정산 단가 등을 정부가 규제하고 있는데 독립적인 권한을 가진 전기위원회에 맡겨야 한다"며 "자율 경쟁 체제를 도입하고 발전원 간 경쟁 시장을 확대해야 에너지 시장이 균형있게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손양훈 교수는 “현재는 정치가 에너지 정책을 압도하면서 전체 전력 비용이 크게 상승했다”며 “정치가 아닌 과학적 사실, 경제적 효율에 따라 에너지 시장이 작동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희종 에너지 스페셜리스트 mindle@asiae.co.kr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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