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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탄핵심판소’ 된 헌법재판소… 국민기본권 침해 판단에 2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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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野 줄탄핵 이후 대폭 지연
조선일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김현국


국회는 2023~2024년 고위 공직자에 대한 탄핵소추안 13건을 통과시켜 헌법재판소로 보냈다. 이 기간은 헌재의 평균 재판 처리 기간이 큰 폭으로 늘어난 시점과 대체로 일치한다. “단기간에 탄핵 심판 사건이 쏟아지면서 국민 기본권 수호와 직결된 헌법소원·위헌법률심판 결론이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헌재의 재판 지연은 고질적인 문제로 꼽혀왔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연쇄 탄핵 여파로 재판 ‘동맥경화’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실이 18일 국회예산정책처 등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헌재의 평균 사건(재판) 처리 기간은 2019년 480.4일, 2020년 589.4일, 2021년 611.7일, 2022년 732.6일, 2023년 809.2일, 2024년 724.7일이었다. 헌재의 근무 인원이 2019년 54명에서 2023년 57명으로 소폭 늘어났음에도, 평균 재판 기간은 오히려 크게 늘었다. 구자근 의원은 “헌재에 기본권 침해 사건을 접수시키면 통상 2년쯤은 기다려야 그 결과가 나온다는 얘기”라면서 “‘묻지 마 탄핵’의 여파가 국민의 기본권 재판에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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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성재 법무부 장관의 탄핵심판 첫 변론에 입장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이로 인해 ‘사건이 접수된 날부터 180일 이내에 선고가 이뤄져야 한다’는 헌법재판소법 38조는 사실상 사문화(死文化)되고 있다. 헌재가 180일 이내에 처리한 재판의 비율은 2019년 23.6%였던 것이 2020년 17%, 2021년 15%, 2022년 12.4%, 2023년 10.4%, 지난해 9.8%로 줄어들었다. 반대로 헌재 결정이 나오는 데까지 180일을 초과한 재판은 2019년 76.4%, 2020년 83%, 2021년 85%, 2022년 87.6%, 2023년 89.6%, 지난해 90.1%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접수된 해에 처리하지 못한 사건이 이듬해로 넘어가면서 재판 지연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선 “헌재가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탄핵 심판 사건부터 처리하는 경향성을 보이면서, 국민 기본권과 관련된 나머지 사건의 처리가 느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 기본권 구제는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기본 원칙이 퇴색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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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국


실제 탄핵심판 사건보다 다른 기본권 사건 처리가 상대적으로 지연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헌재에서 처리한 사건 790건을 재판 유형별로 보면, 탄핵 심판의 경우 결론이 내려지기까지 260일(9개월) 걸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법률이 헌법에 맞는지 판단하는 위헌법률심판의 경우 899.3일(2년 6개월)이 걸린다. 개인이 헌법적 침해를 당했을 때 다투는 헌법소원심판은 715일(2년),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권한을 따지는 권한쟁의심판도 595일(1년 8개월)이 걸렸다. 국민 기본권을 다투는 헌법소원·위헌법률심판은 탄핵 심판에 비해 결론이 내려지기까지 훨씬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는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사건부터 처리한다는 내부적인 기준이 있다”면서 “그런 점에서 탄핵 심판 사건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상겸 동국대 명예교수도 “탄핵 심판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헌재로서도 여기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며 “결국 탄핵 심판이 많아지면 헌법소원·위헌법률심판도 덩달아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헌법학계에선 이 같은 헌재의 재판 지연이 국민 기본권 침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인호 중앙대 교수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며 “헌재는 국민들이 기본권을 호소하면서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곳인데, 입법권 남용으로 헌재(사법부)의 기능이 사실상 일부 마비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헌재로 넘어온 고위 공직자 탄핵소추안 13건 중 8건은 헌재가 ‘기각’으로 종결했고, 나머지 5건은 여전히 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이호선 국민대 법과대학장은 “입법부가 ‘탄핵 남발’로 행정부를 마비시키고, 나아가 사법부의 본질적인 기능마저 침해하고 있다”면서 “민주주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김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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