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대구시, 반월당 지하상가 ‘재계약 조례’ 상인·임대인 갈등 부추겨

0
댓글0
이달부터 시가 운영주체 맡으며 새 조례로 양측에 합의 요구
상인 “합의금 과도, 못 내면 쫓겨나”…임대인 “비싼 수준 아냐”
시, 미합의 땐 강제퇴거…시민단체 “조례 위법, 공익감사 청구”
경향신문

지난 13일 대구 중구 반월당 지하상가의 한 상점에 영업종료를 앞두고 ‘점포 정리’ 등 할인을 알리는 팻말이 붙어 있다.


지난 13일 찾은 대구 중구 반월당 지하상가. 신발·양말 가게나 반려동물 용품점, 네일아트, 건강식품점 등의 간판을 내건 점포 상당수가 비어 있었다. 점포 두세 곳 중 하나가 빈 구역도 있었다.

영업 중인 점포에도 ‘점포정리’ ‘전 품목 세일’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등이 적힌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가게에는 손님이 몰려 물건을 이리저리 살피는 광경이 연출됐다. 상인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한 상인은 “임대인과 합의하지 못하고 가게를 비워야 할 처지에 놓인 상인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할인에 나선 것”이라면서 “언제 쫓겨날지 모르기 때문에 절박한 마음으로 물건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반월당 지하상가 운영 주체가 최근 민간에서 공공으로 바뀌면서 과거 점포를 분양받은 임대인(수분양자)과 임차 상인 사이의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갈등을 중재하겠다며 대구시가 마련한 조례안은 오히려 양측 간 싸움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월당 지하상가는 대구도시철도 2호선과 맞닿아 있다. 소규모 점포 403곳이 밀집한 지역 최대 규모의 지하상가다. 도시철도 건설사업자가 2005년 조성해 대구시에 기부채납했고, 시는 민간사업자에 20년간 사용수익권을 주고 운영해왔다.

현재 영업 중인 상인 대부분은 민간사업자로부터 사용수익권을 넘겨받은 수분양자들과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사실상 ‘전대(재임대)’ 형태다.

문제는 민간사업자의 사용수익권이 지난달 만료되면서 불거졌다. 이달 1일부터 대구시가 사용수익권을 넘겨받으면서 재계약이 필요해진 것이다.

시가 직접 상가를 운영할 때는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공유재산법)을 적용받는다. 이 경우 20년간 유지돼온 수의계약 형태의 계약이 불가능하다. 공유재산법에 따라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새 계약자를 선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기존 상인들은 사실상 영업을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권리금을 주고 영업을 해온 상인의 불만이 특히 커졌다. 수분양자들도 권리금 등의 회수 없이 사용수익권을 잃게 될 수 있다며 반발했다.

논란 끝에 시는 지난해 12월 ‘지하도상가 관리 조례안’을 마련했다. 관련법에 따라 일반경쟁입찰을 통해 새 계약자를 선정하되, 향후 5년간 기존의 수의계약을 허용하는 것으로 유예하는 게 골자다.

조례에도 불구하고 상인들은 “수분양자에게 유리하게 규정이 짜였다”며 반발하는 중이다. 조례에서 5년 후 수분양자와 임차 상인이 계약권 합의를 하지 못하면 수분양자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박병현 상인 생존권 비상대책위원장은 “상인들은 권리금과 시설 보수 등에 많은 돈을 들였음에도 입찰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게 됐고, 과도한 합의금을 내지 못하면 생업을 잃고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19일 대구시의회 앞에서 조례 개정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 예정이다.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대구시 조례가 위법하다며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기로 했다. 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은 “무상 사용·수익 허가 기간이 끝나 점포에 대한 권리가 소멸된 수분양자에게는 과한 특혜를 주고, 실제 영업해 온 상인 대다수는 지하상가에서 쫓겨나게 했다”고 밝혔다.

수분양자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퇴직금이나 대출금 등으로 상가의 사용수익권을 매입했는데, 이를 감안하면 권리금 등이 비싼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연옥 메트로센터 수분양자협의회 부위원장은 “그동안 점포를 사고팔 수 있도록 매매분양을 허용하고, 이를 묵인하고 방치한 시의 잘못이 더 크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임대인과 합의하지 못하고 가게를 ‘무단점유’한 상인들을 강제퇴거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허주영 대구시 도시주택국장은 “상인 및 임대인의 입장과 다른 지역 사례 등을 참고해 조례를 만든 것”이라며 “양측 간 마찰이 없도록 계속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계엄, 시작과 끝은? 윤석열 ‘내란 사건’ 일지 완벽 정리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주요뉴스

해당 언론사로 연결

이 기사를 본 사람들이 선택한 뉴스

  • 아이뉴스24"남편의 폭행" vs "결혼 사실 몰랐다"…'김수현-故김새론 의혹' 폭로전 계속
  • 헤럴드경제이진호 “김새론 사망 원인은 남편 폭행·협박”…절친 녹취록 공개
  • 중앙일보시민들 "가동하라"는데…30억 들여 수리한 세종보, 멈춘 이유는
  • 노컷뉴스[탐정 손수호] "故 최진실부터 김새론까지…악플 잔혹사"
  • 연합뉴스화장실 두고 와 분실된 휴대전화…의심받은 다음 이용자에 무죄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