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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조선·해운 기술 선점 ‘골든타임’ 놓칠라...기술 경쟁 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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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해운 주요 업체들 英 방문
EU 탈탄소 고삐에 기술 경쟁 치열한데
아직까지 기술 표준 독식 기업은 없어
“춘추전국시대...먼저 개발한 기업 승자”

유럽 자금 지원받을 기회 마침 열렸지만
제대로 알지 못해 혜택 못 받는 경우 많아
“‘호라이즌 유럽’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직접 투자 없이 기술 확보 가능해 유리“


매일경제

영국 선박 설계 기업 아네모이(ANEMOI)가 개발한 로터세일(Rotor Sail)을 장착한 선박. 로터세일은 선박 갑판에 설치하는 원기둥 모양의 구조물로, 선박을 운항할 때 불어오는 바람과 회전하는 원기둥에서 발생하는 매그너스 효과(Magnus effect)를 활용해 선박이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을 더 얻을 수 있도록 해준다. 아네모이


친환경 조선·해운 기술을 선점해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 열렸지만, 정작 한국 기업들은 눈앞에 놓인 절호의 기회를 놓쳐 뒤처질 수도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중심부에 위치한 영국왕립공학원 건물에서 열린 ‘제2회 한영 해양 네트워킹 워크숍’에서는 친환경 조선·해운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각축전이 펼쳐졌다.

런던에 있는 UN 산하기관 국제해사기구(IMO)가 해운 분야 탄소 배출을 2030년까지 최소 20%, 2040년까지 최소 70% 감축해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기 위해 내놓은 ‘2050 탄소중립 실현 목표’를 만족시키려면 전 세계 조선·해운 기업들이 새로운 친환경 기술을 도입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기술 표준을 선점한 기업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 8~14일 영국을 방문한 한국해양산업 사절단(HD현대중공업, HD현대삼호,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HMM, 현대글로비스, 팬오션)의 한 관계자는 “친환경 조선·해운 기술은 대부분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라며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기 때문에, 기술 표준을 선점한 기업은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워크숍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선박 자동운항 기술, 암모니아 등 차세대 친환경 연료와 엔진 기술 등을 보유한 영국의 여러 기업들이 고객이자 경쟁사인 한국 조선·해운 기업들을 상대로 자사 기술을 자랑하며 세일즈에 나섰다. 항해 중인 선박이 추진력을 얻게 해주는 로터세일(Rotor Sail), 선박에 가해지는 공기와 물의 저항을 줄여주는 장치 등 다양한 기술들도 선을 보였다. 한국 사절단 관계자들은 자사가 보유한 기술과 비교하며 탐색전을 벌였다.

워크숍에 참석한 영국 노동당 부대표이자 상원의원 출신의 한국 담당 무역특사 톰 왓슨경은 “한국은 가스 운반선과 같은 복합 대형 선박 건조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 있다”라며 “이를 기반으로 해양 분야에서 청정 기술 채택을 선도할 수 있으며, 강력한 혁신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국과 한국은 해양 탄소배출을 줄이고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고품질 엔지니어링 솔루션 구축을 주도할 수 있는 공동의 기회를 얻었다”라며 “영국의 강점인 법률과 보험 분야에 한국의 조선 해양 역량을 결합하면 향후 협력을 위한 강력한 기반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국 조선·해운 기업들이 골든타임에서 글로벌 경쟁업체들을 앞서기 위한 좋은 기회가 유럽에서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지 못해 눈 뜨고 놓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일경제

영국과 유럽의 조선·해운 분야 연구개발 인재들이 몰려있는 스코틀랜드 글라스고에 위치한 스트라스클라이드 대학교 조선·해양·엔지니어링학과의 연구시설. 스트라스클라이드 대학


런던 워크숍 전날 방문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영국은 물론 유럽의 주요 조선·해운 기업들의 연구 인력이 집중돼 있는 이곳에서도 특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스트라스클라이드 대학교의 정병국 조선·해양·엔지니어링학과 교수는 유럽연합(EU)의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 프로그램에 한국 기업들의 참여가 거의 없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호라이즌 유럽’은 EU 집행위원회가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2021년 시작돼 2027년까지 운영될 예정인 이 프로그램에는 935억유로(약 148조)원의 자금이 투입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국의 조선·해운 기업은 ‘호라이즌 유럽’에서 진행하는 친환경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자기 자본을 투자해야 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한국이 ‘호라이즌 유럽’의 준파트너가 됨에 따라 한국 기업들은 순전히 EU 자금으로 친환경 기술 선점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정 교수는 “투자금 없이 기술을 개발할 수 있고, 개발한 기술의 소유권도 한국 기업이 가져갈 수 있다”라며 “더욱이 기존에는 기술을 반드시 공개해야 해 중국 기업들에게 기술이 유출될 위험이 있었지만, 이제는 원하지 않을 경우 개발 기술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조선업체의 경우 전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선박을 보유하고 있는 유럽 선주들은 물론 유럽 현지 투자자, 개발업체 등과 기술 개발 초창기부터 한 팀을 이룸으로써 자연스럽게 신뢰를 다지고 홍보를 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을 수 있다.

정 교수는 “유럽 선주와 투자사들은 보수적이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채택할 때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기업들과 협력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한국 조선업체의 경우 경쟁력 있는 신기술 개발에 더 중점을 두고 있지만, 유럽 선주들이 내놓는 수주를 따내려면 친환경 기술 개발 초기부터 협력하기 위한 밑 작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해운업체의 경우에도 AI 자동운항을 도입해 사람이 운항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비효율적인 비용 낭비를 절약하려 하고 있는데, 해운 규제를 주도하고 있는 유럽의 기업들과 ‘호라이즌 유럽’ 프로젝트를 통해 협조함으로써 기술 표준에 대한 합의를 이뤄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전망된다.

매일경제

해상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 분야의 연구개발을 하고 있는 영국 정부 혁신기관(Innovate UK) 산하 ORE 캐터펄트에서 연구팀이 장비 실험을 하고 있다. ORE 캐터펄트 FLOWIC


한국 조선·해운 기업의 경우 자금 문제 말고도 또 다른 걱정거리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기후협약 재탈퇴를 선언하는 등 친환경 정책에서 발을 빼는 것이 유럽 주도의 친환경 조선·해운 정책 동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업계에서 커지고 있다.

그러나 IMO가 제시한 목표 기간이 상대적으로 더 길고, 유럽의 친환경 정책 기조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친환경 조선·해운 전환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해상풍력 등 해양 친환경 에너지 분야의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영국 정부 혁신기관(Innovate UK) 산하 ORE 캐터펄트의 휴 리틀 파트너는 “미국 민주당이 장악한 캘리포니아의 경우 당장 이번 달 친환경 기술개발 협력을 위해 방문하기로 했다”라며 “당장은 트럼프 악재를 피할 수 없지만, IMO가 제시한 목표는 2050년까지 장기간이기 때문에 결국 조선·해운 분야의 친환경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압박이 한국에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조선·해운 전문 조사기관 클락슨리서치의 스티브 고든 전무이사는 “지난 2월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선박에는 150만달러(약 22억원), 중국 기업이 운영하는 선박에는 100만달러(약 15억원)의 입항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라며 “다만, 단기간에 한국 기업들이 수혜를 입을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지난해 조선 분야에서 중국의 시장점유율은 53%로 한국(28%)에 비해 크게 앞섰다.

실제로 중국 조선소에 선박 제조를 맡겼던 선주들이 USTR의 결정 이후 주문을 취소하고 한국 조선소에 주문을 맡기는 경우도 있었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탄소 저감을 위한 새로운 기술 도입이 필요한 가운데, 현재 운영 중인 선박들 중 상당수는 노후화돼 교체 타이밍이 왔다는 것도 한국 조선업계에는 희소식이다. 중국 조선소보다 기술력에서 앞선 한국 조선소에 일을 맡기는 선주들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클락슨리서치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운항 중인 선박의 평균 연령은 12.9년이다. 이 중 3분의 1가량의 선박 평균 연령은 15년에 달한다.

신규 선박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호재다. 조선소에 신규 선박 주문이 몰려 선박 수주부터 인도까지의 리드타임은 2020년 2.5년 이상에서 지난해 3.5년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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