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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120쪽에 ROIC까지 담아···韓은 목차·기업소개로만 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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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밸류업 공시 비교해보니]
상장사들 PPT 꾸미기에만 집중
밸류업 관련 내용은 4~5쪽 그쳐
그나마 ESG 등 원론 설명 수준
미쓰이화학 등 日 기업은 충실
경영진 보상 기업성장과 연결도
서울경제


한국 기업들이 발표한 밸류업 공시가 일본에 비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자료 절반 이상을 표지, 목차, 기업 소개 등으로 채웠기 때문이다. 실적 발표 자료나 지속 가능 경영 보고서 등 다른 자료에 활용됐던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 붙여넣기’한 후 배당 목표치를 덧붙이는 수준이다. 대부분 15장 안팎으로 기업가치 제고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은 4~5장에 그칠 뿐만 아니라 그래프를 제외하면 장당 한두 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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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외국인 대주주를 둔 코스피 상장사는 밸류업 자료 절반을 현황 분석으로 채웠다. 배당 성향을 20% 이상으로 높이겠다고 했지만 어떤 방식으로 추진하고 어떻게 투자자와 소통하겠다는 것인지 자료만으로는 알 수 없다. 다른 코스피 상장사는 밸류업과 큰 연관이 없는 주요 연혁이나 종속기업 현황을 써놓았다. 정부의 규제를 단순 나열하고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채운 상장사도 있다.

코스닥 시장은 밸류업 참여율이 1%인 만큼 공시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의지를 평가할 수 있지만 내용은 분명 아쉽다. 코스닥의 한 상장사가 낸 밸류업 공시의 경우 프레젠테이션 9장 가운데 기업가치와 관련된 분량은 2장뿐이다. 이마저도 배당, 자사주 매입, 무상증자 등을 해왔고 앞으로 노력하겠다는 정도의 성의 없는 내용으로 구성했다.

정부는 당초 투자자들과 진정성 있게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겠다고 했으나 형식적인 공시만 반복되는 셈이다. 정부가 밸류업 가이드라인을 통해 주요 재무지표를 상세히 설명하면서 기업 스스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핵심 지표를 선정한 뒤 중장기적인 목표를 세우라고 구체적으로 제시했으나 이를 따른 곳이 거의 없다. 밸류업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CEO)의 메시지를 담은 곳도 없다. 기업·산업마다 자본 활용 방안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배당을 확대하겠다는 일률적인 대책만 반복되는 것도 문제다. 정작 투자자에게 필요한 정보는 충분하게 제공하지 않은 채 프레젠테이션 꾸미기 대회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됐다는 평가다.

반면 일본 기업들은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실질적이고 다양한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발표 자료를 꾸미는 데 힘을 쏟기보다는 충실한 내용을 담기 위해 노력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기업 대부분은 자체적으로 분석한 자본비용을 투자자에게 투명하게 공유하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투자자와의 괴리가 있을 수 있지만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 눈높이를 맞추면서 소통하는 자세다.

일본 대표 기업 중 하나인 미쓰이화학은 120장이 넘는 보고서를 작성해 CEO 메시지부터 충실하게 담았다. 투하자본수익률(ROIC)을 2022년 5.4%에서 2025년 7% 이상, 2030년 8% 이상으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ROIC 개념 설명부터 왜 높이고자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미쓰비시상사는 공시를 통해 주주들과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최고주주활동책임자(CSEO)를 임명하겠다는 내용을 담아 경영 투명성을 높였다는 극찬을 받았다. 스미토모임업은 경영진의 보상을 기업가치와 연계함으로써 주가 향상에 대한 동기를 부여했다. 인쇄 서비스 스타트업 라쿠스루(92장), 석유화학 업체 이데미쓰고산(65장), 기계 제조 업체 에바라(37장) 등 기업 규모나 산업 구분 없이 대다수가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내용을 충실하게 담았다. 영문 공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일본이 한국보다 밸류업 공시를 먼저 시작했지만 이토록 차이가 나는 것은 주가나 자본비용에 대한 기업과 경영진의 이해 부족이 크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C레벨 단계에서 자기자본이익률(ROE)이나 총주주수익률(TSR) 등 각종 재무지표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일본이 한국보다 선진 시장인 만큼 기업의 분석 능력이나 소통 능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자산운용사의 한 대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원인은 한국 기업들의 무거운 자본 구조인데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경영진이 거의 없다”며 “주주한테 배당만 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부채와 자본 비율을 적절히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다만 초기 단계인 만큼 밸류업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시간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밸류업에 진정성을 갖고 충실하게 공시를 하는 국내 기업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수연 법무법인 광장 연구위원은 “일본은 미국에 가까운 선진 시장이고 시장 참여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만큼 기업들이 적극 반응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은 시작 단계라 1년 만에 달라지기는 어렵지만 경영진이 분명 신경을 쓰고 있는 만큼 장기적인 변화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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