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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미래다]〈156〉국내 최초 상향식 범부처 'G7 프로젝트' 추진…반도체·AI컴퓨터·전기자동차 등 14개 품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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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노태우 대통령이 1990년 1월 10일 연두기자회견에서 “2001년까지 선진 7개국 수준 진입을 목표로 과학기술 투자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국가기록원 제공


연구개발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불볕더위가 한풀 꺾인 1991년 8월 19일 오후 3시 정부는 국무총리 대접견실에서 제7회 종합과학기술심의회를 개최했다.

회의에는 위원장인 정원식 국무총리와 경제기획원 장관, 내무부 장관, 재무부 장관, 과학기술처 장관, 체신부 장관, 상공부 장관, 농수산부 장관, 국방부 장관, 교육부 장관, 동력자원부 장관, 건설부 장관, 보건사회부 장관, 노동부 장관, 교통부 장관, 환경처 장관 등 15개 부처 장관이 참석했다.

정원식 국무총리가 개회를 선언했다.

“지금부터 제7회 종합과학기술심의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김진현 과학기술처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92년도 과학기술정책 종합조정결과'와 '2000년대 과학기술 선진 7개국 수준 진입을 위한 선도기술개발사업(G7 프로젝트) 추진계획(안)'을 보고했다.

G7 프로젝트는 비과학자 출신 김진현 장관의 야심작이었다. 이 사업은 기존 연구개발 방식과 완전히 달랐다. 우선 기간이 단기가 아닌 10년이었다. 기획 방식도 연구자 또는 정책부처 중심의 하향식이 아닌 상향식이었다. 특히 단일 부처가 아니라 범부처가 사업을 함께 추진했다. 기존 틀에서 벗어난 과학기술 사업의 첫 출발점이고, 연구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김진현 장관은 회고록 '대한민국 성찰의 기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학기술을 산업 경제성장을 위한 하위 종속변수로 여기던 개념을 바꿔 강국과 겨루고 어울리며 살아야 하는 한국의 목표를 분명히 하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최초 국가연구개발정책, 구체적으로 2000년대 선진 7개국 진입이라는 목표 아래 △범정부, 범관민(기업) 연구계(연구소, 대학) 참여 △프로젝트 계획 구상과 추진체 구성, 선정 과정과 심사 등에 범다원적 주체 참여, 공개 추진 등 기존 특정 연구사업 틀을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차원을 고도화한 것이다.”

김 장관이 보고한 후보 과제는 7개 제품기술사업과 7개 기반기술사업 등 14개였다.

이 과제는 과학기술처가 단독으로 결정한 게 아니라 관계부처와 기획 단계에서부터 협의해서 선정했다.

과학기술처 관계자의 말.

“2000년대 주력산업이자 국제경쟁 가능성이 높은 첨단 제품을 선정해서 그 핵심 요소 기술을 개발하는 게 제품 기술개발 사업이고, 2001년까지 첨단제품 개발은 기대할 수 없지만 반드시 우리가 확보해야 할 원천기술을 개발키로 한 것이 원천 기반기술 개발 사업이었습니다.”

산업화 선행 주기, 제품 수명 주기, 경쟁력 확보 가능성, 개발 능력, 차세대 제품 여부를 기준으로 선정한 기술개발 과제는 △초고집적 반도체 기술 △전기 자동차 △인공지능(AI) 컴퓨터△광·대역 ISDN(종합정보통신망) 기술 △고선명(HD)TV △신의약, 신농약 △첨단생산시스템 등이다.

초고집적 반도체 기술의 경우 1996년까지 256MD급 반도체를 개발·생산하고 2000년까지 1기가 디램급 반도체를 개발하기로 했다.

AI컴퓨터는 1997년까지 지식추론형 뉴로망 컴퓨터와 2000년까지 동시통역컴퓨터를 개발한다는 계획이었다. 전기자동차는 1996년까지 4인승 실용전기자동차를 개발키로 했다.

광대역 ISDN 기술 부문은 1996년까지 비동기교환기(ATM) 이용 ISDM을 개발한 데 이어 2000년까지 광대역 ISDN망을 완성하고 고선명 TV 기술은 1994년까지 HDTV 수상기 기술을 확보, 1997년까지 평판 디스플레이를 개발키로 했다.

기반기술 개발 과제는 △신소재기술 △기계 기술 △생명공학기술 △환경기술 △에너지 기술 △원자력기술 △인간공학기술 등이다.

김 장관은 심의회에서 거듭 강조했다.

“이 같은 14개 후보과제에 대해 정부는 9월까지 관계부처별 추진계획을 수립·확정하고, 1992년 1월부터 총괄부처 중심으로 연구기획을 완료해 4월부터 연구에 착수할 계획입니다. 정부가 국내 과학기술 수준을 선진 7개국 수준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오는 2001년까지 과학기술 투자를 국민총생산(GNP)의 5%로 높여야 합니다. 당장 내년에는 GNP의 2.63%를 과학기술 분야에 투자해야 합니다.”

심의회는 이 같은 G7 프로젝트 추진을 승인하고 후속 조치를 하도록 했다. 과학기술 도약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노태우 대통령도 그동안 과학기술 도약에 각별한 관심을 표시했다.

1990년 1월 10일 노태우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10년 안에 우리 과학기술을 선진 7개국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해 7월 10일 대덕연구단지 내 한국과학재단 회의실에서 열린 제1회 과학기술진흥회의에서도 거듭 “10년 후 과학기술 선진국을 만드는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 발언은 당시 과학기술계에 큰 기대를 하게 했지만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연구개발을 해야 한다는 과학기술 후위 논리였다.

김진현 장관은 G7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과학기술이 경쟁력 핵심 요소로 상위 개념임을 분명히 했다.

김 장관의 증언.

“과학기술은 산업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객체 하위가 아니라 앞으로 국가적 필요성이 커지는 환경과 복지, 안보(에너지 먹거리 포함)의 핵심요소 상위이며 목표와 접근 방식에서 △선진국 따라잡기에 그치지 말고 이를 뛰어넘어 1등하기 △이를 위해 한국연구 풍토를 개발연구자 취향, 개별연구소 편의주의를 뛰어넘어 범연구진, 범과학계, 범시민 관점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장관은 1991년 4월 11일 과학기술처 상황실에서 노재봉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6회 종합과학심의회에서 과학기술처가 마련한 '2000년대 과학기술 선진국 7개국 추진 기본방향'을 보고했다. 김 장관은 이 자리에서 “장기적으로 선진 7개국 진입을 위해서는 기술 개발 전반에 걸쳐 부처 간 종합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과학기술처 내부에서는 G7 프로젝트를 어느 부서가 담당하느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서정욱 과학기술처 차관이 연구조정실에서 이 업무를 담당키로 정리했다. 내부 인력과 기획 능력 등을 감안한 결정이었다.

서정욱 전 차관의 생전 증언.

“과학기술은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응, 환경보호, 교육, 복지 개선 등에서 기여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필수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과학기술 목표는 인류 안전과 지구 생명을 지키고 인간성을 회복하는 데 기여해야 합니다.”

그해 5월 20일 과학기술처는 산·학·연 전문가 7명으로 G7전문가기획단을 발족하고 G7 프로젝트 종합 조정과 기술동향 분석 등 업무를 맡겼다.

기획단은 심상철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맹일영 삼성고문(종합), 한동철 서울대 교수(기계), 강인구 금성연구소 소장(전자와 기술개발), 윤창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화공), 한민구 서울대 교수(자동차와 원자력), 박원훈 한국과학기술원 실장(생물해양) 등으로 구성했다.

기획단 산하에는 13개 분야별 연구회의 위원을 선임했다. 기계 서상기(기계연구소), 항공 안태영(삼성전자), 정보통신 박찬모(포항공대), 반도체 김정덕(한국전자통신연구소), 전자기술 이주형(삼성전자), 광통신 강민호(한국통신), 소프트웨어 최병항(쌍용컴퓨터), 신소재 이동녕(서울대), 고분자 여종기(럭키중앙연구소), 정밀화학 김창규(태평양 화학연구소), 에너지 안명훈(한국과학기술원), 원자력 강창순(서울대), 생명공학 김충섭 (제일제당연구소) 등이었다.

이종원 당시 과학기술처 연구개발조정실장의 말.

“국가 과학기술정책 수립 단계부터 기업, 연구소, 학계 등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대폭 반영하는 것이 기본 목표였습니다.”

기획단은 경기 과천 정부종합청사 2동 607호에 사무실을 두고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꼽고 있는 첨단산업 분야의 전략 과제들과 그동안 기업체연구소나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에서 5년 이상 중장기 과제로 추진되고 있던 과제들을 취합해 이를 14개로 압축하는 작업을 했다.

심의회 승인을 받은 G7 프로젝트는 1991년 말까지 주관 부처 주도로 연구기획을 완료하고 과제별 주관연구기관과 총괄연구 책임자를 선정해 구체적인 연구개발계획을 수립키로 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연구개발 추진이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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