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경북 칠곡군 지천면사무소에서 할매래퍼그룹 '수니와칠공주' 새 멤버를 뽑는 오디션이 진행됐다. 오디션에 참가한 할머니들이 막춤을 선보이고 있다. 김정석 기자 |
18일 오전 경북 칠곡군 지천면사무소 3층 강당.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혼자 중얼거리며 뭔가를 외우는 모습의 할머니도 있었고, 모자와 액세서리를 매만지며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할머니도 있었다.
이들 할머니는 멀리서도 한눈에 확 띌 정도로 옷차림이 화려했다. 형형색색의 선글라스와 커다란 알파벳이 새겨진 모자, 번쩍이는 금목걸이 등 누가 봐도 평범한 할머니들은 아니었다.
━
서무석 할머니 마이크 이어받아
이곳에서는 칠곡 할매들로 구성된 ‘수니와칠공주’ 새 멤버를 뽑는 오디션이 열렸다. 지난해 원년 멤버였던 서무석 할머니가 별세하며 그의 마이크를 이어받게 될 한 명을 뽑는 오디션이었다. 수니와칠공주는 2023년 8월 창단식을 열고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래퍼 그룹이다.
18일 오전 경북 칠곡군 지천면사무소에서 할매래퍼그룹 '수니와칠공주' 멤버들이 새 멤버를 뽑는 오디션 현장에서 자리에 앉아 오디션을 지켜보고 있다. 김정석 기자 |
인생의 애환이 담겨있는 자작시로 랩 가사를 만든 수니와칠공주는 창단 초기부터 전국적인 관심을 받으며 회원 150명이 활동하는 팬클럽까지 결성됐다. 이들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공연을 펼치기도 했고, 대기업 광고와 국가보훈부·국무총리실 등 정부 정책 홍보 영상에도 출연했다.
또 KBS 인간극장과 아침마당 등 70회에 걸쳐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신문 지면과 인터넷 등 언론에서 1500회 이상 소개됐다. 로이터·AP·CCTV·NHK 등 외신에도 소개됐다.
수니와칠공주의 새 멤버가 되기 위해 이날 출사표를 던진 할머니는 모두 6명. 수니와칠공주의 공연을 보고 감동한 강정열(75) 할머니는 대구 수성구에서 칠곡군으로 이사까지 하겠다는 각오로 도전했고, 경쟁 그룹인 ‘텃밭왕언니’의 리더인 성추자(82) 할머니는 수니와칠공주 새 멤버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로 참가했다.
━
6개 관문 넘어야 하는 오디션
새 멤버를 뽑기 위한 관문을 모두 6개에 달했다. 개성 넘치는 자기소개와 초등학교 수준의 받아쓰기와 퀴즈, 수니와칠공주의 랩 한 소절 따라하기, 랩가사 쓰기 실력을 검증하는 글짓기, 평소 즐겨 부르는 애창곡 부르기, 마지막으로 모두 함께 무대 위에서 벌이는 막춤 한마당 등이었다.
18일 오전 경북 칠곡군 지천면사무소에서 할매래퍼그룹 '수니와칠공주' 새 멤버를 뽑는 오디션이 진행됐다. 오디션에 참가한 할머니들이 받아쓰기 과제를 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
자기소개 시간에서 수줍어하던 할머니들은 본격적인 심사가 진행되자 숨겨놨던 기량을 뽐내기 시작했다. 강영숙(77) 할머니는 무반주로 김용만의 ‘회전의자’를 열창했고, 이선화(77) 할머니는 신나는 노래 대신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과 ‘초혼’을 낭송해 박수를 받았다.
오디션 과정에서 서무석 할머니를 추모하는 시간도 이뤄졌다. 지난해 10월 혈액암 투병 끝에 별세한 서 할머니를 위해 수니와칠공주 멤버인 이옥자(80) 할머니는 추도사를 통해 “우리가 오만 데 다니며 함께 공연한 지도 반년이 다 돼가네요. 형님은 떠나고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어요. 형님은 하늘에서 그 좋아하는 랩 부르면서 즐겁게 지내고 계시지요”라고 그리움을 전했다.
치열한 오디션 끝에 수니와칠공주 새 멤버로 뽑힌 할머니는 지천면 신1리에 사는 이선화 할머니였다. 이 할머니는 랩 따라하기와 글짓기 등에서 두루 뛰어난 성적을 보여주며 최고점을 얻었다. 심사에는 임의도 대한노인회 칠곡군지회장, 수니와칠공주 리더 박점순 할머니, 수니와칠공주 매니저이자 랩 지도를 맡은 정우정 강사 등이 참여했다.
18일 오전 경북 칠곡군 지천면사무소에서 할매래퍼그룹 '수니와칠공주' 새 멤버를 뽑는 오디션이 진행됐다. 새 멤버로 뽑힌 이선화 할머니(왼쪽 세 번째)와 수니와칠공주 멤버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
이선화 할머니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새 멤버로 뽑히게 돼 감사하다. 수니와칠공주들 멤버를 형님처럼 모시고 같이 생활하면서 지내고 사회에 봉사하면서 지낼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칠곡=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