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17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대검찰청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왼쪽은 이원석 대검 기획조정부장(나중에 검찰총장 지냄), 오른쪽 서 있는 이는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
임은정 대전지검 부장검사는 최근 대검 감찰부에 동료 검사들에 대한 감찰을 요청했다. 문재인 정권 당시 검찰 과거사 조사 기구(검찰과거사진상조사단)에 파견됐던 한 검사를 처벌하려고 검사들이 사건을 조작한 의혹을 밝혀달라는 취지다. ‘사건 조작’의 피해자는 지난 2월26일 ‘청와대 기획 사정’ 사건 1심 재판에서 선고유예(벌금 50만원) 판결을 받은 이규원 전 검사(현 조국혁신당 전략위원장)다. 선고유예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선고의 효력이 없어지는 사실상 무죄 판결이다. ‘청와대 기획 사정’ 수사는 문재인 정권 청와대가 김학의 사건을 이용해 윤석열 제거 공작을 꾸몄다는 허무맹랑한 망상을 근거로 삼았다. 판결문에는 검사들이 당시 김학의 사건을 조사하던 이규원을 손보려고 사건을 조작한 정황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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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19일 ‘김학의 사건’에 연루된 윤중천씨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
“최○○(검사)은 자신의 초안이 발견된 이후 수사기관(검찰)에서 처음에는 초안을 자신이 작성한 것으로 윤석열 부분도 윤중천의 진술에 따라 기재한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다가, 그 이후 진술을 번복하여 ‘윤중천이 윤석열을 모른다고 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최○○은 수사기관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을 당시 자신의 초안 내용이 정확하다고 진술하다 자신을 피의자로 입건할 것처럼 위협적이고 불리하게 수사가 진행되어, 초안의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는 취지로 진술을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다.”(2021고합1234 판결문 16쪽 각주6)
최 검사가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관련 진술을 애초 자신이 들은 것과 다르게 진술했는데, 그 이유가 검찰의 강압 수사 때문이라는 취지다. 다시 말해, 검사들이 최 검사에게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진술하지 않으면 피의자로 입건하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검사들은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다. 사건을 조작하려고 참고인에게 허위 진술을 강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임은정은 ‘수사로 전환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엄정한 감찰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도대체 윤중천의 윤석열 관련 진술이 어떤 내용이길래 검사들은 최 검사를 위협했던 걸까.
이규원 보고서 속 윤석열 관련 윤중천 발언
2018년 12월26일 당시 검찰과거사진상조사단에 파견된 이규원은 김학의의 스폰서였던 윤중천을 면담했다. 함께 조사단에 파견된 최 검사와 수사관도 동행했다. 조사단은 박근혜 정권에서 검찰이 김학의를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한 과정을 조사하고 있었다. 이 면담에서 윤중천은 김학의 말고도 몇몇 검찰 간부들과 함께 윤석열을 거명했다. 면담을 마친 최 검사는 사무실로 돌아와 윤중천이 말한 것을 기록해 이규원과 수사관에게 공유했고, 이규원은 이 초안을 토대로 면담보고서를 작성해 조사기록에 첨부했다. 윤석열 관련 내용은 “윤석열 검사장은 ○○○ 소개로 알고 지냈는데, 원주 별장에 온 적 있는 것도 같다”라는 것이었다. 이규원은 이 한 문장으로 윤석열의 역린을 건드린 ‘대역죄인’ 취급을 받게 된다. 무려 6년이 넘도록 검찰로부터 집단 린치를 당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2019년 10월11일 한겨레신문은 윤중천의 윤석열 관련 진술 내용을 보도했다.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을 겨냥한 수사로 문재인 정권과 대립하던 윤석열은 이 보도가 자신을 제거하려는 청와대의 ‘언론 공작’이라는 터무니없는 망상에 빠졌다. 윤석열은 서울서부지검에 한겨레신문을 고소했다. 이 사건을 배당받은 서부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변필건 현 법무부 기조실장)는 최 검사를 불러 윤중천의 진술이 맞는지 캐물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 검사는 윤중천의 진술을 부인했다. 자신이 작성한 ‘초안’의 존재를 잊었는지, 아니면 일부러 거짓말을 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최 검사는 ‘윤중천은 윤석열을 모른다고 했다’라며 자기가 직접 들은 것과 전혀 다른 진술을 했다.
이규원 전 검사가 2024년 3월11일 조국혁신당 입당 환영식에서 조국 대표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
윤석열 사단, ‘청와대의 윤석열 제거 공작’ 프레임으로 수사 착수
최 검사는 2021년 2월 서울중앙지검에서 다시 조사를 받는다. 여기엔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과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이 이규원을 고소한 사건이 배당돼 있었다. 이들은 ‘윤중천 리스트’에 올라 검찰 과거사위원회로부터 수사 권고 대상으로 지목됐었다. 곽상도 등은 “윤중천 리스트는 사실무근”이라며 이규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공교롭게도 앞서 서부지검에서 한겨레신문 고소 사건을 지휘하던 변필건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으로 인사 이동해 이 수사를 지휘하고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이규원과 이광철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개인적 친분을 근거로 정권 차원의 공작으로 몰아갔다. 청와대가 조국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저지하기 위해 윤석열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민 것으로 수사 프레임을 짰다.
수사팀은 최 검사가 앞서 서부지검에서 했던 진술을 토대로 수사를 진행했다. 수사팀의 의도대로 잘 풀리는가 싶던 수사는 뜻밖의 암초를 만난다. 최 검사가 윤중천 면담 후 작성했던 ‘초안’이 발견된 것이다. 이 초안은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 수사를 하던 수원지검이 이규원의 주거지를 압수수색 했을 때 확보한 노트북에 저장돼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가 최 검사를 다시 불러 이 초안을 제시하자, 최 검사는 자기가 작성한 것이 맞다고 시인했다. 수사팀은 최 검사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이 초안은 이규원이 작성한 면담보고서의 윤석열 관련 내용이 허위로 꾸며낸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수사팀이 그동안 공들였던 수사가 말짱 도루묵이 될 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규원에게 허위공문서작성 혐의를 적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검사의 객관의무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사팀은 그대로 밀고 나갔다. 청와대를 궁지에 빠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수사팀은 최 검사를 이규원과 공모한 혐의로 긴급체포하려고 했다. ‘멘붕’에 빠진 최 검사는 (1심 판결문에 적시된 대로) ‘초안의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는 취지로 진술을 바꿨다. 수사팀은 최 검사는 쏙 빼고 이규원만 기소했다. 이규원이 기록한 ‘윤석열이 원주 별장에 온 것 같다’는 단 한 문장에 무려 7개의 혐의를 갖다 붙였다.
2019년 5월2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여성·인권단체 회원들이 ‘김학의 사건’ 등 권력층 비리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법정에서 울먹이며 ‘양심선언’ 한 검사
최 검사는 2024년 7월23일 이규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검찰에서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하게 된 경위를 털어놨다. 일종의 ‘양심선언’이었다. 법정의 검사석에는 최 검사를 위협했던 검사들이 앉아 있었다. 최 검사는 잔뜩 겁에 질린 채 울먹이는 목소리로 증언했다. 그는 이 사건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이첩됐을 때 검사들이 ‘공수처의 소환에 응하지 말라’고 종용했다는 진술도 했다. 최 검사가 공수처에서 사실대로 진술할지도 몰라 아예 공수처 출석을 막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윤석열의 역린을 건드린 이규원에게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김학의 불법 출금’이라는 황당한 혐의로 기소했다가 1, 2심 모두 무죄가 났는데도 법무부는 지난해 11월29일 그를 해임했다. 앞서 이규원이 두 차례나 사표를 냈을 때는 재판 중이라는 이유로 수리하지 않았다. 이규원이 제 발로 나가겠다고 했을 때는 붙잡더니, 막상 무죄가 선고되자 최고 수위의 징계를 때린 것이다.
반면, 윤석열의 핵심 참모였던 손준성은 ‘고발사주’로 기소된 뒤 오히려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을 때도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검찰엔 윤석열의 배신자가 곧 조직의 배신자요, 윤석열에 충성한 검사는 조직의 영원한 보호를 받는다.
검찰이 이규원을 집요하게 괴롭힌 것은 문재인 정권 청와대를 겨냥한 일종의 ‘빌드업’이었다. 이규원에게 유죄가 선고된다면 검찰은 곧바로 이광철을 청와대 기획 사정 공모 혐의로 기소할 태세였다. 이광철은 문재인 정권의 국정과제인 검찰개혁 작업의 실무를 총괄했다. 검찰에 이광철은 조국과 함께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이들과 함께 일했던 검사들은 ‘부역자’ 취급을 받았다. 윤석열 사단은 이들에게 검찰개혁을 추진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다는 복수심에 불타 있었다. 복수심에 눈이 먼 나머지 동료 검사까지 겁박해 사건을 조작하려고 했던 걸까. ‘청와대 기획 사정’ 수사는 ‘김학의 불법 출금’ 수사와 함께 윤석열 사단의 무모함과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그들에게 검찰권은 윤석열을 지키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장받는 수단에 불과했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이춘재의 ‘검찰 수사의 재구성’은?
법치’를 강조하던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과 민주주의를 짓밟는 내란을 일으켰습니다. 시민과 국회에 의해 155분 만에 제압돼 탄핵과 형사처벌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반성은커녕 온갖 궤변으로 법치를 조롱합니다. “법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지지자들에게 궐기를 촉구합니다. 나라가 어찌 되든 말든 저만 살면 된다는 식입니다. 어떻게 이런 후안무치한 대통령이 나왔을까요. ‘윤석열 부부의 친위대’를 자처한 검찰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요. 윤석열 내란의 뿌리를 추적해 봤습니다.
논설위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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