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이념 갈등과 법치 훼손, 시민사회 분열로 민주주의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사회 통합을 위해 2030세대와 전문가·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법원의 윤석열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 이후 첫 주말인 지난 8일 서울 도심 곳곳에서 윤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열렸다. 뉴스1 |
18일 스웨덴 예테보리대학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의 ‘민주주의 보고서 2025(Democracy Report 2025)’에 따르면,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은 기존의 ‘자유민주주의’보다 한 단계 떨어진 ‘선거민주주의’로 분류됐다.
이 연구소는 1년 전만 해도 한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봤지만, 올해는 한 단계 아래로 강등시켰다. 더 충격적인 것은 한국이 2년째 독재화가 진행 중인 나라라고 평가했다.
종합 순위에서는 41위를 기록했다. 세부 지표 가운데 공공 논의의 포용성, 정부의 야당 존중, 사실 기반 논쟁 등이 잘 이뤄지는지를 측정한 지표인 ‘심의적 지수’는 2023년 36위에서 48위로 추락했다.
이달 1일 발표된 미국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의 ‘2025 세계 자유 지수’에서도 한국은 지난해 61위에서 올해 67위로 내려갔다. 영국 경제조사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4’에서는 22위에서 32위로 열 계단 하락했다. 한국은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 범주에서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재분류됐다.
지난 1월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 서부지법에 지지자들이 진입해 난동을 부리고 있다. 뉴스1 |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인해 제도적 민주주의가 약화된 점이 민주주의 지수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15일(현지시간)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격앙된 찬반 집회 분위기를 보도하며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국가 정치와 외교, 경제뿐 아니라 민주주의에 큰 충격을 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극우 성향 집단을 중심으로 사법 체계를 부정하며 법과 제도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황인정 성균관대 좋은민주주의연구센터 전임연구원이 지난 2023년 1월 전국 만 18세 이상 208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약 13%가 스스로를 극우 성향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들은 강력한 한·미동맹 지지,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 지지,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적 태도 등을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황 연구원은 “민주주의는 모든 정치적 절차에 대한 존중이지 내가 존중하고 싶은 절차와 법만 취사선택해서 존중하고 나머지는 파괴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그런 생각은 극우에서 주장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직접적 훼손”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극우와 보수가 혼재되면서 민주주의의 퇴보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민의힘이 극우 집단을 옹호하며 보수 지지층으로 흡수하고 있는 것도 보수 정치 지형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태동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보수는 법치주의와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것을 중시하는 집단인 데 비해 극우는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강한 행정력이나 폭력을 통한 해결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문제는 보수가 극우에 편승하는 것이다. 극우화가 심화되면 민주주의가 훨씬 더 퇴보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 입구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 이후에도 정치적 긴장과 사회 갈등이 여전히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한규섭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과)는 “대외적인 측면뿐 아니라 경제사회적으로도 앞으로 갈등과 분열이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며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정치적 대립이 지속되는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여 문제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렇듯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국민 통합을 위한 정치권의 자성이 필수적인 가운데, 2030세대 유권자의 인식 변화는 향후 정치 갈등을 완화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 교수는 “2030세대는 윤 대통령 탄핵에는 찬성하지만 이재명 대표도 지지하지 않거나 경제적으로는 진보적이면서도 외교안보적으로는 보수적인 경향을 보이는 등 기존 세대와는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다”며 “이들은 정당이나 이념보다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 균형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민주주의의 핵심인 숙의 과정이 충분히 이뤄지도록 전문가와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이 교수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조사 사례를 예로 들며 “조사에서 전문가들이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한다고 믿을수록 시민들은 자신과 다른 의견도 존중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며 “사회적 논쟁에서 전문적이고 검증된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전문가와 언론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윤진 기자 soup@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